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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1 중국-대륙의 극과 극:산동, 청해성(完102

곡부에서 태안으로 이림문(二林門)을 나섰다. 이제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지성림 앞의 너른 광장을 지나간다. 시내로 들어온 우리들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성벽 바깥쪽에 탕(湯)과 찜 전문 음식점이 보였다. 탕과 찜 전문 음식점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동한 우리들은 안으로 들어가 보.. 2011. 12. 22.
공림 - 공자가 묻힌 곳 3 기국술성공(沂國述聖公)의 묘가 공자의 손자인 공급(孔伋)의 무덤이라는 사실은 저번 글에서 밝혀두었다. 지금 보는 공자의 손자인 공급, 즉 자사(子思)의 무덤 뒤에 공자의 무덤이 있다고 보면 된다. 무옹중의 인상은 무시무시하다. 문옹중은 인자하고 자애롭다고나 할까? 공급에.. 2011. 12. 21.
공림 - 공자가 묻힌 곳 2 만고장춘석방(萬古長春石坊)을 지나서 안으로 쭉 곧은 길을 따라가면 공림의 입구가 나온다. 만고장춘석방 좌우로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문선(文宣)이라는 말은 나중에 공자의 무덤앞에 서있는 묘비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손으로 만든 전병을 팔고 있었는데 제법 인기.. 2011. 12. 19.
공림 - 공자가 묻힌 곳 1 단사표음(簞食瓢飮)! 한그릇의 밥과 표주막에 담은 물한잔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고고한 선비의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이 말이 생기게 된 연원은 공자가 지극히 사랑했던 제자였던 안회의 생활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단사라고 할때의 두번째 글자인 식(食)은 먹는다는.. 2011. 12. 17.
공자님 집은 이렇다 2 공부는 공자의 자손들이 살았던 저택이다. 공자 당시의 주택은 남아서 전해질 수가 없다. 너무 오래전 사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명(明)나라와 청나라 시대의 건물들이라고 한다. 공자의 13대 후손이 공패(孔覇)라는 사람인데 당시의 한(漢)나라 황제였.. 2011. 12. 15.
공자님 집은 이렇다 1 공묘를 둘러본 우리들은 동쪽으로 난 옆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공부(孔府)를 보기 위해서이다. 공묘가 사당이라면 공부는 개인집이다. 공자 후손들의 살림집이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나가는 문 부근에 기념품 가게가 있었지만 우린 거뜰어보지도 않았다. 나같은 사람은 .. 2011. 12. 14.
이번에는 공묘(孔廟)를 본다 6 - 공택고정 대성전 뒤에는 침전(寢殿)이 자리잡고 있다. 두 건물은 거의 붙을듯 말듯 가까운 거리를 두고 자리잡고 있었다. 침전이라면 자는 방이 있는 건물을 말한다. 침전의 크기도 만만치 않았다. 건물 주위를 둘러싼 돌기둥이나 난간의 아름다움도 예사로운 정도가 아니었다. 공자의 초상.. 2011. 12. 12.
이번에는 공묘(孔廟)를 본다 5 - 대성전 행단 구경을 마친 우리들은 공묘의 핵심건물인 대성전(大成殿)으로 나아갔다. 인(仁)과 덕(德)을 통치의 근간으로 해서 덕치국가(德治國家)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공자는 자기가 꿈꾸는 국가를 찾기위해 천하를 주유하게 된다. 공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나라는 주(周)나라였지.. 2011. 12. 10.
이번에는 공묘(孔廟)를 본다 4 - 행단 공자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주로 어떤 공부를 하였을까? 공자는 지금부터 2500여년전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중국 역사기록을 가지고 짐작을 해보면 공자도 처음에는 아마 역사를 위주로 공부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상들로부터 전해져온 경전이나 문학작품들과 예악(禮.. 2011. 12. 8.
이번에는 공묘(孔廟)를 본다 3 규문각(奎文閣)은 오늘날의 도서관과 비슷한 기능을 했던 건물이라고 보면 된다. 한눈에 척봐도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원에 가득 심겨진 나무들이 오랜 세월을 버티면서 보아온 역사를 증명해주는듯 하다. 이 건물은 서기 1018년에 창건되었다. 1018년이라면 송나라.. 2011. 12. 7.
이번에는 공묘(孔廟)를 본다 2 공묘(孔廟)는 공자의 사당을 의미한다. 무덤이 아니다. 중국인들이 쓰는 간자로 나타내면 孔庙라고 쓴다. 중국어는 성조가 있으므로 소리를 나타내기가 힘들지만 굳이 우리 발음으로 옮기면 콩미아오 혹은 콩마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몇장의 사진을 보면 단번에 짐작하겠지.. 2011. 12. 5.
이번에는 공묘(孔廟)를 본다 1 맹부를 나온 우리들은 다시 택시를 타고 추성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이제는 곡부로 돌아가야만 했다. 추성 시가지의 중심도로는 넓기만 했다. 추성 시외버스 정류장도 새로 단장해서 그런지 깨끗했다. 곡부까지의 요금은 7원이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올때 타고왔던 그 버스를.. 2011. 12. 2.
맹자의 집안을 살펴보다 3 - 맹부감은당 맹부감은당(孟府感恩堂)이라.... 감은당이라면 은혜를 느껴보는 집이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안으로 들어서자말자 나는 언젠가 어디에서 이곳의 사진들을 보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사진들이 여기에 다 있었던 것이다. 감은모친(感恩母親)! 모친을 .. 2011. 12. 1.
맹자의 집안을 살펴보다 2 맹부 안은 단정했다. 나는 이런 단아함과 단정함을 한없이 사랑한다. 인자무적(忍者無敵)! 맹자가 한 말이라고 전한다. 어떤 사람은 옛부터 전해내려온 말을 맹자가 다시 인용한 것이라고도 한다. 사실이 어쨌든 간에 맹자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낱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 .. 2011. 11. 30.
맹자의 집안을 살펴보다 1 맹묘(孟廟)가 맹자의 사당이라면 맹부는 맹자 집안의 생활공간으로 쓰이던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맹자가 현재의 맹부(孟府)가 있는 그곳에 살았는지의 여부는 정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맹자후손들의 거처가 되었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한 것 같다. 맹묘에서 옆문을 통해 거리로 .. 2011.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