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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1 중국-대륙의 극과 극:산동, 청해성(完

공림 - 공자가 묻힌 곳 1

by 깜쌤 2011. 12. 17.

 

단사표음(簞食瓢飮)! 한그릇의 밥과 표주막에 담은 물한잔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고고한 선비의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이 말이 생기게 된 연원은 공자가 지극히 사랑했던 제자였던 안회의 생활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단사라고 할때의 두번째 글자인 식(食)은 먹는다는 의미를 가질때는 식으로 발음하지만 밥이라는 것으로 쓸때는 사(食)자로 소리낸다. 이럴 때는 대나무 그릇에 담은 밥을 의미하게 된다. 

 

  

공자가 지극히 아끼고 사랑했던 제자 안회는 다른 말로 안연이라고도 한다. 자연(子淵)은 그의 자(字)이다. 그를 높여서 부를때는 안자(安子)라고 부른다.

 

 

안회는 나중에 연국복성공(兗國復聖公)에 추증되었기에 그의 묘 입구에 복성묘(復聖廟)라는 글씨가 크게 새겨져있다. 나는 처음에 '복'자를 '원'자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지닌 한자 실력이 워낙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여기 입장료는 50원이었기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방금 질리도록 사당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물러서면 너무 억울하다. 그래서 입구까지 살짝 다가가서 안을 살펴보았다.

 

 

속으로 보이는 건물색은 빨간색이었다. 자주빛이 아닌 빨간색이어서 눈에 확 들어왔던 모양이다.

 

 

중국 사당의 구조가 이제는 눈에 익었다. 맹자와 공자 사당을 둘러본 결과이리라.

 

 

공자가 가장 사랑했던 제자답게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는데 열심이었다고 한다. 너무 가난했고 너무 열심으로 배웠으며 너무 열심히 살았기에 그런 현상이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안회는 나이 스물아홉에 이미 백발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아끼던 제자가 공자보다 먼저 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으니 스승의 입장으로서는 정말로 안타까운 일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안묘를 바깥에서만 구경하고 우리는 공림을 향해 걸어가기로 했다. 차를 타고 되었지만 시간도 넉넉하니 일부러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곡부성의 북쪽 성벽에 난 성문을 향해 걸었다. 마차들이 우리 곁을 스쳐갔지만 우리는 그냥 걷기로 했다.

 

 

 

우리는 성안의 가운데 길을 따라 위에 보이는 빨간점, 즉 공림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다.

 

 

우리는 북문으로 나갔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공묘와 공부는 사방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안에 자리잡고 있다.  

 

 

성밖에는 해자가 둘러쳐져 있다.

 

 

경치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해자의 물은 흐리기만 했다. 우리는 성밖에서 과일행상을 하는 아주머니로부터 사과를 샀다. 바가지를 쓰지 않기 위해 현지인 할머니가 사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가 할머니가 지불한 가격인 7.9원에 산 것인데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우지 못한 아주머니는 괜스레 짜중이 났던 모양이다.

 

우리가 부근 의자에 앉아서 사과를 깎아먹으려고 하자 비켜달라는 시늉을 했다. 마치 자기가 전세낸 자리라도 되는것 처럼 말이다. 괜히 우습고 그녀가 안스러워졌다. 심보가 그러면 복을 못받는 법이다. 하기사 생존의 문제가 딸린 장사니까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법은 아니다. 

 

 

북문밖에서 공자의 무덤이 있는 공림까지는 직선대로다. 그냥 걸어가도 그리 심심하지는 않았다.

 

 

비석을 보관한 듯한 건물을 지나서 조금만 더 걸어올라가면 입구가 나타난다.

 

 

부근에는 인력거도 많았다. 도로 양쪽은 기념품가게와 자잘한 음식점들로 채워져 있었다.

 

 

구경을 하며 슬금슬금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공림으로 드나드는 차량에게 통행세를 받는 것일까?

 

 

두개의 건물 사이로 보이는 석조대문의 모습이 제법 호화롭게 보였다.

 

 

분위기가 제법 그럴듯하지 않은가? 배경하늘색이 흐린 것은 날이 흐리기 때문이 아니라 매연 때문이다.

 

 

만고장춘(萬古長春)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석문 옆을 지났다. 여기서부터 북쪽으로 똑바로 난 길을 따라가면 공림이 나온다. 그리 먼길은 아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