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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1 중국-대륙의 극과 극:산동, 청해성(完

이번에는 공묘(孔廟)를 본다 1

by 깜쌤 2011. 12. 2.

 

 맹부를 나온 우리들은 다시 택시를 타고 추성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이제는 곡부로 돌아가야만 했다. 추성 시가지의 중심도로는 넓기만 했다.

 

 

추성 시외버스 정류장도 새로 단장해서 그런지 깨끗했다.

 

 

곡부까지의 요금은 7원이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올때 타고왔던 그 버스를 타고 곡부로 돌아왔다. 물론 중간에서 차장 교체가 이루어졌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곡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시내로 달렸다.

 

 

공묘(孔廟)입구 부근까지 택시를 탄 것이다.

 

 

공묘를 둘러싼 커다란 성벽의 문앞에서 내렸다. 성벽과 성문의 위용이 대단했다. 성벽은 엄청 두텁다. 남쪽 정문에서 조금 동쪽으로 자리잡은 이 성문의 출입구는 모두 세개였다.

 

 

중앙 성문으로는 자동차가 다기고 좌우로는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다녔는데 꼭 그런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정면에서 본 모습이다. 곡부에 있는 공묘의 크기는 추성에 있는 맹묘보다 규모면에서 훨씬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추성에는 성벽이 없었지만 곡부에는 성벽이 있다.

 

 

중문(中門)으로는 들어가는 차들이 다니고 좌문(左門)으로는 나오는 차들이 다니는 모양이다.

 

 

우리는 성안으로 들어가서 공묘를 보기전에 성밖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그렇다면 음식점을 찾아야했다.

 

 

성문 밖에는 해자가 있어서 일단 해자위에 걸린 다리를 건너야만 안팎으로 출입이 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해자로 둘러싸인 성벽의 둥근 돌출부가 요새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곡부(曲阜)! 중국식으로 발음하자면 취푸 정도로 소리가 날 것이다. 아래 지도를 보기로 하자.

 

 

 

위의 붉은 점은 공자의 무덤이 있는 공림(孔林)을 가리킨다. 아래의 빨간 점은 현재 우리가 있는 위치를 의미한다. 빨간 점 위에  네모난 구역이 보이는가? 성벽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가?

 

노란색 점은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위치다. 적어도 곡부에서는 숙소의 방을 구하지 못할까봐 안달을 낼 필요가 없지 싶다. 호텔 체질인 사람들은 예외다.   

   

 

이 문을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서면 공묘의 정문이 나온다.

 

 

 

아래부분 빨간색 점이 있는 곳에 현재 우리가 서있다. 위에 보이는 붉은점은 공림을 가리킨다. 공림(孔林)에는 공자와 공자의 아들 및 손자의 무덤이 있다. 공묘에서 공림까지의 거리는 한 2킬로미터 정도 될것이다.

 

 

결국 공묘와 공부와 공림은 부근에 다 몰려있는 셈이다.

 

 

만인궁장(萬仞宮牆)!  萬仞(만인)이라는 말은 사람 키에 비교해서 말하자면 만길이나 된다는 뜻이다. 길이라는 말은 '물깊이가 두이다'라고 할때의 길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것만 알면 수수께끼는 다 풀린 셈이다. 궁장은 대궐의 담장 정도가 될 것이니 만인궁장이라면 '만길 정도로 켜켜이 놓인 대궐담장' 정도가 될 것이다. 직역하면 그런 의미지만 정작 낱말 속에 숨겨진 깊은 뜻은 공자가 지닌 학문의 심도를 나타낸다고 한다. 성문 위에 붙은 글씨는 청(淸)의 건륭제(乾隆帝) 작품이라고 전한다. 논어에 '만인궁장'이라는 말이 등장한다고 한다.

 

 

우리는 만인궁장 글씨가 새겨진 성문 앞을 지나 서쪽으로 조금 더 걸어올라간 곳에서 쌀국수집을 발견했다.  

 

 

솔직히 말해서 곡부에서 쌀국수집을 찾아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맥도널드 햄버거 집처럼 겉을 꾸몄기에 그냥 한번 들어가본 것인데 의외로 괜찮은 곳이었다.

 

 

종업원과 말이 안통해서 조금 고생하려는 찰나, 부근에 앉아있던 제복입은 아가씨가 우리말로 이야기를 걸어왔다. 조선족 아가씨일 것이라고 여겼는데 알고보니 중국사람이었다. 한류붐을 타고 우리말을 공부했단다.

 

 

그녀의 도움으로 우리는 쌀국수를 시켰다 쌀국수를 중국남부에서는 미선(米線)이라고 부른다. 예전에 운남지방을 여행할때 곤명 기차역 부근에서 과교미선(過橋米線)을 먹은 적이 있다. 나는 그때의 그맛을 떠올렸는데 실패하지는 않았다. 국물맛과 면발의 감촉이 새록새록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나는 깨끗하게 비웠다. 이제 조금 힘이 솟는다. 식사를 끝낸 후 우리는 공묘를 향해 보무도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제 성문을 통과한다.

 

공묘입구에는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우리가 들어온 성문이다.

 

 

영성문이 우리를 환영했다. 맹묘에도 영성문이 있었다.

 

 

태화원기라고 쓰여진 문을 지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공묘의 영역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