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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1 중국-대륙의 극과 극:산동, 청해성(完

공림 - 공자가 묻힌 곳 2

by 깜쌤 2011. 12. 19.

 

 만고장춘석방(萬古長春石坊)을 지나서 안으로 쭉 곧은 길을 따라가면 공림의 입구가 나온다.

 

 

만고장춘석방 좌우로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문선(文宣)이라는 말은 나중에 공자의 무덤앞에 서있는 묘비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손으로 만든 전병을 팔고 있었는데 제법 인기가 있었다. 

 

 

아주머니의 솜씨가 좋은듯 했다.

 

 

공림으로 연결되는 이 도로를 임도로(林道路)라고 한단다. 제법 오래된듯한 나무가 좌우로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이 제법 많이 걸어가고 있었다.

 

 

이제 공림의 출입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출입문 앞에는 널찍한 광장이 있고 좌우로는 기념품 가게들이 보였다.

 

 

지성림(至聖林)이라는 글자가 뚜렸했다.

 

 

돌사자 한쌍의 모습이 제법 늠름했다.

 

 

지성림이라고 쓰여진 현판이 있는 문 안으로 들어갔더니 손님을 기다리는 전동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탈 일이 없다. 걷기 선수들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곡부는 공자라는 위인 한사람으로 벌어먹고 사는 도시 같았다. 

 

 

참배를 마치고 돌아나오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얼마나 질서를 잘 지키는지 몰랐다. 우리나라 아이들과 은근히 비교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질서를 잘 지키는 모습이고 어떻게 보면 규율에 매여있는 모습이다. 나는 무엇이 옳은 일인지 요즘 잘 구별하질 못한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규범이 오늘에는 수구보수꼴통들의 가치로 지탄받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구 벌어지기 때문이다. 아노미(Anomie) 현상 속을 헤매고 다닌다고나 해야 하나?

 

 

그 다음에 등장하는 문이 이림문(二林門)이다. 이 문은 노(魯)나라 고성(古城)의 북문터라는 주장도 있는 모양이다.

 

 

공림으로 들어서서 안내판을 살폈다. 워낙 넓기 때문에 무작정 걸어다닌다면 공자의 무덤을 구경조차 못하는 비극이 벌어질 수 있겠다.

 

 

안내판을 보고 위치를 확인했다. 

 

 

이 공림 속에 묻혀있는 무덤의 수가 10여만기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곳을 세계 최대의 씨족묘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지 싶다.

 

 

우리가 가는 곳은 공자의 무덤이다.

 

 

다른 곳은 우리에게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다.

 

 

공림 속에 또다시 담을 쌓아 특별구역을 만들어둔 곳이 나온다.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좌우로 늘어선 측백나무들이 세월의 무상함과, 공자라는 위인의 무덤이 존재한다는 특별 공간의 엄숙성을 자랑하는 것 같다.

 

 

분위기가 사뭇 숙연했다.

 

 

길이 끝날 때 쯤되는 곳에 해치같은 모양을 새긴 돌조각상이 나타났다. 

 

 

아무래도 우리가 해태라고 부르는 바로 그 녀석 같다. 하지만 진순신이라는 분이 쓴 책 "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기행"이라는 책 속에는 이 짐승을 문표(文豹)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문표 정도로 알아들어야 할 처지다.

 

 

당연히 이 녀석은 상상속의 괴물이다.

 

 

조각 솜씨가 보통이 넘는다.

 

 

여기는 뭐하는 곳일까? 나중에 인터넷으로 조사를 해보았더니 향전이라는 곳이었다. 두사람의 석인은 옹중(翁仲)이라는 사람의 상이라고 한다. 홀을 들고 있는 사람이 (文)옹중이고 칼을 품은 석인은 (武)옹중이다.

 

네이버 지식사전에서는 옹중을 "중국, 진 ∙ 한시대에 궁전문에 세워두었던 북방 야만인을 모방한 청동제 거상"정도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어떤 글에 의하면 옹중은 진시황때의 무장으로서 성은 완이며 키가 엄청나게 컸던 거구의 장수였다고 한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있었다. 우리는 차근차근 살펴보기로 했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몰려있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안으로 걸어 들어가보았다.  

 

 

문 속에 또 문이 나오는 식이다.

 

 

마침내 저 앞에 무엇인가가 보이는 듯 했다.

 

 

아무곳에서나 배를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국인들의 저 버릇은 언제 고쳐질지 모르겠다.

 

 

 앞쪽에 그럴듯한 무덤 한 기가 보였다.

 

 

기국술성공(沂國述聖公)의 묘이면 공자의 손자인 공급(孔伋)의 무덤이라는 말이 된다. 우리가 흔히 자사(子思)라고 아는 사람인데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 중용(中庸)이라는 책이 있다. 나는 처음에 이곳을 공자의 묘로 착각을 했었다. 참으로 무식한 깜쌤이다.

 

 

중국인들의 묘는 우리나라처럼 깨끗하게 벌초를 하지 않는 모양이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묘는 공자의 무덤에서 볼 때 앞쪽으로 자리잡고 있다.

 

 

공자님의 무덤을 만나보기가 이리도 어렵다. 대강 훑어본 우리는 다시 안으로 들어서야만 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