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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141

@^@의 추억 2 서재에 있는 내 컴퓨터의 바탕화면이야. 어디 풍경인지 네가 궁금해해야 정상인데 말이지. 아이콘들을 제외하면 이렇게 보여. 내성천 상류야. 이젠 영원히 물속에 잠겨 사라져 버린 곳이지. 이런 곳을 물속에 가라앉힌다는 게 말이 되는 거야? 모래 위로 맑은 물이 얕게 흐르는 강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풍경일 거야. 서른 번이나 넘게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이런 풍경은 만나보질 못했어. 어떤 분이 '내성천의 가을'이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을 올려두었더라고. 바로 아래에 있는 화면이야. 며칠 전에도 소개를 했었어. 어딘것 같아? 영주시 평은면 평은 초등학교에서 강성과 동막으로 가는 다리에서 본 모습이지. 그러니까 송리원 휴게소 바로 옆이라고 보면 돼. www.youtube.com/watch?v=XJz0aj54L7k 나는.. 2020. 11. 14.
@^@의 추억 보고 싶다 한들 어쩌겠어? 다 부질 없는 짓인걸. 이만큼 멀리 왔는데 뭘 어쩌겠어? 서재에서 혼자 음악을 듣고 있어. 안녕~~~ www.youtube.com/watch?v=EQcnIT4wITo 난 그녀, 앤 브린의 목소리가 좋아. www.youtube.com/watch?v=xvZXeRfRuq4 이 목소리도 좋아해. www.youtube.com/watch?v=XJz0aj54L7k 여기는 반드시 생각나야하는데.... www.youtube.com/watch?v=gEOWAY18vqc 거듭 안녕! 어리 버리 2020. 11. 10.
향기 2 - 나훈아 그가 15년 만에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할 때 어떻게 변했을까 싶어 조금은 궁금했습니다. 사실 트롯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별 관심은 없었습니다만, 아내가 그리도 기다리길래 함께 조금 보았습니다. 아는 노래는 제법 있었습니다. 그의 전성기 시절이 나의 청춘시절과 겹쳤으니까요. 비대면 공연이어서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지더군요. 국민들 속을 시원케 만들어준 사이다 발언을 많이 했다는데 직접 들은 것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나중에 유투브를 보고 알았습니다. 언행을 보니 사나이답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몸가짐이나 처신이 사내대장부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무보수로 출연했다는 사실과 출연후 일체 접촉이 안된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이 들면서 몸가짐과 처신에서 향기를 뿜어내는 사람은 그리 많.. 2020. 10. 14.
타향같은 고향 5 철도관사가 있던 터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집이 네 채나 있던 터가 밭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우물도 두 군데 있었지만 다 메워지고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뒷밭에 가보았습니다. 동생 내외가 잘 가꾸어두었네요. 변해버린 풍경을 보니 너무 덧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밭둑 가에 나팔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친구도 떠나버리고 아는 어른들도 세상을 하직한 지금에 와서는, 제가 가서 살지도 않는 고향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습니까?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기록을 남겨두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지요. 사람도 왔다가 땅으로 돌아가면 끝인데 뭘 그리 더 가지겠다고 아등바등거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가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지만 저 자신도 그런 욕심에서 벗어나질 못했으니 남 탓할 게 없습니다. 들에 피는 꽃 한 송이조차 .. 2020. 10. 12.
타향같은 고향 4 이제는 이 기차역도 폐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때는 무궁화호 열차도 자주 서고 도시 출입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들 오르내리던 역이었습니다만 세월의 흐름에 밀려 이제는 폐역 신세가 되는 처지에까지 몰리고 말았습니다. 제 외가도 이 부근 어디에 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곳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내도 이 부근 어디가 고향입니다만 이상하게도 자기가 살았던 그곳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순전히 제 생각이긴 합니다만..... 나는 어린 시절을 보낸 내성천 상류가 너무나 그리워서 일 년에 한두 번은 꼭꼭 찾아가서 사진도 찍어두고, 한 번씩은 컴퓨터를 열어 찍어둔 사진 자료를 뒤져보기도 합니다만 아내는 그렇지 않더군요. 개인의 감성 차이겠지요. 타향 같은 고향이지만 그래도.. 2020. 10. 10.
타향같은 고향 3 - 시골 황토방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방에서 하루를 묵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게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던가 봅니다. 아버지께서 시멘트 블록을 이용하여 직접 수고하셔서 아래채를 본채에 붙여지으신 뒤 만들어진 방 하나를 저에게 주셨던 것이죠. 책상 하나 놓으면 누울 공간조차 넉넉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던 작은 공부방이었지만 나만의 공간이었기에 소중하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던가요? 처음으로 집에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1백 볼트 알전구를 달고 처음 켰던 날, 밤 세상이 그렇게 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여기로 이사와서 몇 년간 내가 살았던 곳의 집들은 모두 사라지고 밭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나이 스물셋 되던 해 봄에 발령이 나서 돈을 벌기 위해 객지로 .. 2020. 10. 9.
타향같은 고향 2 기왕에 와서 둘러보는 김에 더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동네 부근에 있었던 작은 철교 부근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작은 방천은 사라지고 튼실하게 새로 둑을 쌓아놓았더군요. 모든 게 다 변했습니다. 나는 면소재지 부근올 가보았습니다. 우회도로가 만들어져 있더군요. 금잔화가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날 알아볼 사람이 없으니 편하게 볼 수 있습니다. 피마자를 보았습니다. 아주까리라고도 하는 식물이지요. 철길가 소나무에는 까치집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피마자는 한자 말입니다. 한자로는 蓖麻子라고 씁니다. 아주까리 열매로는 기름을 짭니다. 대궁은 잘라서 구멍을 내고 비닐을 덧대 불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어설픈 하모니카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 옆에는 도라지 밭이었습니다. 나는 한참을 서성거렸습니다. 예배당도 보이네.. 2020. 10. 8.
타향같은 고향 1 나는 고향이 두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6년을 오롯이 보낸 곳이 그 하나이고, 또 다른 한 군데는 청소년기 10년을 보낸 곳이 각각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향이 두 곳이라는 말은 진정한 고향이 한 곳도 없을 수 있다는 말과 동의어일 것입니다. 고향을 놓고 말장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삶이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청소년기를 여기에서 보냈습니다만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고향 친구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직장을 따라 객지에 살러 간 것이 1977년의 일인데, 여기에서 인격형성이 이루어지는 청소년기 십 년간을 살았고 이곳을 떠난 뒤에도 시간 날 때마다 부모님을 찾아뵙기 위해 그 후 30여 년의 세월을 두고 출입한 곳이니 고향이라고 말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나는 작.. 2020. 10. 7.
황당무계 2 - 병원에서 철도에서 기관사로 일하는 미남 친구가 경주에 놀러 오겠다는 거야. 그게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지만 훗날을 위해 공개해 두는 것이 맞다 싶어서 꺼내 보는 거야. 요즘처럼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였기에 유선 전화로 간신히 한두 번 연락을 해서 약속 시간을 맞추고는 기차역에 마중을 하러 갔었어. 나는 대합실에서 그가 집찰구를 통해 빠져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옛날에는 부정 승차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차표 검사를 철저히 했으므로 친구가 아무리 기관사라는 직업을 가졌다고 해도 기차를 운전하지 않을 때는 그도 승객 가운데 한 명이었으니 집찰구를 통해야만 밖으로 나올 수 있었거든. 친구나 나나 모두 미혼이었던 시절의 이야기야. 한창 피가 끓는 나이였던 데다가 조심성 없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시기였으니 오랜만에.. 2020. 10. 3.
박 1 아내가 박을 얻어왔습니다. 박고지를 만들어두었다가 나중에 반찬으로 만들어먹자고 했습니다. 내 컴퓨터 속에 저장된 박 사진을 검색해보았더니 한 십여 년 전에 찍어둔 사진이 나오네요. 박도 종류가 엄청 많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3년 전에는 시내의 어떤 가정집을 지나다가 바가지를 만들어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유년 시절 어머니께서 박을 삶아 바가지를 만들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요즘은 박바가지 대신 플라스틱 바가지를 쓰지 않습니까? 이제는 바가지를 만들 목적보다는 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박을 재배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아내가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에 박 무침과 박국을 주더군요. 그건 다음에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초가지붕 위에 자라는 박이 진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제가 벌써 꼰대 세대가 되었기 .. 2020. 9. 7.
공백 2 물이 차오른 영주댐을 어떤 분이 드론으로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려두었더군요. 저는 그 화면을 캡처했습니다. 동영상을 올려주신 분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합니다. 바로 위 사진 속 다리 부근에 제 유년시절의 추억이 들어앉아 있습니다. 물속에는 커다랗게 휘어진 플랫폼이 아름다웠던 평은역과 구마이 마을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물속에 들어간 산하지만 추억은 기억속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문제는 그 기억이 자꾸만 흐릿해져 간다는 것이죠. 에스(S) 자 모습으로 마구 휘감아 흐르던 모래강은 이제 영원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하회마을이나 회룡포와 무섬 마을 정도를 물이 감아 돌아 흐르는 물돌이동으로 알고 있지만 여기도 그에 못지않은 숨은 명승지였습니다. 그걸 우리 인간들이 물속에 묻어버린 것이죠. 제 블로그의 프로.. 2020. 8. 28.
먹치 유튜브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무섬마을 화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2014년에 방영된 3일이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4킬로미터 떨어진 상류 어디메쯤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모래강 내성천에서 물고기를 잡는 모습이 나오길래 화면을 보며 셔터를 눌렀습니다. 예전 이런 곳에서는 갈겨니나 버들치, 피라미를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많이 보았던 도구입니다. 반두라고 부르는 이도 있었지만 표준말이 의미하는 반두와는 차이가 납니다. 장마가 끝난 뒤에는 내성천 상류인 봉화나 영주, 안동 부근에서도 은어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물살을 가르며 상류로 올라던 은어떼를 뒤쫓던 동네 형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 떼 뒤에 재빠른 동작으로 도구를 갖다 대.. 2020. 8. 21.
엄마생각 긴 장마가 그치고 햇살이 짱짱하던 날, 외출 나가려던 아내가 담요를 널어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지엄한 명령을 감히 거역할 수 있나요? 옥상에 가지고 가서 널었습니다. 어린 시절, 햇살 가득한 날 빨랫줄에 널어두었던 요와 이불이 생각났습니다. 빨랫줄에 걸린 이불속을 파고들면 그렇게 따뜻하고 좋았었습니다. 젊었던 엄마도 생각났습니다. 늙어버린 어머니께서 돌아가신지가 벌써 6년이나 지났습니다. 그 이불도 엄마도, 사라진지가 오래입니다. 담요를 널어놓고 나니 눈물이 나더군요. 엄마도 보고싶고 옛집도 그리워집니다. 이젠 제가 늙어버려서 죽음을 예비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게 인생인가 봅니다. 어리 버리 2020. 8. 13.
물에 묻다 3 터널을 나오면 아담한 골짜기가 등장합니다. 영주댐밑에 보이는 오토캠핑장이죠. 여기에는 놋점이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놋점 마을 부근의 예전 풍경은 아래 글상자 속에 들어있습니다. http://blog.daum.net/yessir/15869486 http://blog.daum.net/yessir/14753370 예전에 써두었던 글을 확인해보았더니 사.. 2020. 5. 7.
물에 묻다 2 행정구역 이름을 정할 때 어떤 이유로 용혈리라고 지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렸을때 이 부근 어딘가에 댐이 들어선다느니 터널이 뚫린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돌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50년도 더 전에 떠돌던 말들이 이제는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산중턱에 들어선 마을은 이.. 2020.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