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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다랑논의 슬픔 - 4

by 깜쌤 2005. 7. 9.


이 마을은 골짜기를 중심으로 하여 양쪽 산등성이에 동네가 자리잡고 있는데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좁은 산골짜기와 등성이에 자리잡은 동네여서 자그마하지만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다. 초등학교가 있는가하면 어지간한 집들은 모두 여관이고 호텔이고 빈관이며, 음식점까지 수두룩하니 마을이 꽤 윤택해 보였다.


 하지만 그건 최근의 일이고 예전엔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았을 것인지는 말 안 해도 다 짐작이 된다. 나 같은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의 뼈저린 가난부터 조금의 풍요와 여유를 가지게 된 오늘날의 경제개발의 혜택을 누리는 세대이므로 그 정도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경운기라는 문명의 이기가 시골에 들어오기 전에 우리 아버지 이상의 세대는 모두 사람의 힘으로 농사를 지었다. 지게를 지고 산길을 오르내려 본 사람들은 그 고통이 얼마나 처절한지 이해를 한다.

 


                                <산꼭대기엔 숲들이 있다>

 

 이 험한 산골에서 산비탈을 개간하여 논을 만드는 것은 절대로 한 세대만에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수 세대에 걸쳐 사람의 힘으로 산을 깎고 땅을 고르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물길을 만들었으리라. 저수지를 만들 수 있는 골짜기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자연적으로 흐르는 골짜기 물을 이용해야 하니 물길을 내는 것이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이다.


 논을 만들 때 나온 돌들은 함부로 버리지 아니하고 일일이 져 나르거나 손으로 운반하거나 가축의 힘을 의지하여 집을 만들 터를 닦는데 썼을 것이다. 그래도 남는 돌들은 논과 논을 연결하는 길을 포장했다. 그러므로 여기 제전이 있는 산에 거미줄처럼 연결된 모든 길들은 납작한 돌들로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논길을 걸으며 유심히 살펴본 바에 의하면 논 폭이 좁은 곳은 1미터가 안되어 보였다. 벼를 줄맞추어 심어 어떤 곳은 두 줄이나 석 줄로 심은 곳이 많았으니 논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계단식 논들이 온 산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참으로 현명하게도 마을 뒷산 꼭대기까지는 개간하지 않은 지혜를 보여 준다. 꼭대기까지 모조리 개간해 버리면 논농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을 저장할 식물들이 사라져버리게 되니 벼를 재배할 재간이 없어지는 것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집들이 모두 비탈을 의지하여 돌로 쌓은 석축이나 나무 기둥 위에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무를 베어 다듬은 뒤 집을 짓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 집들은 모두 2층 아니면 3층인데 모두 목재로 지어진 원목 집들이다.


 산들을 돌아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지방의 산에는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티크와 비슷한 나무들이 산 여기저기에 자라고 있었고 실제로 그런 나무들을 베어 말 등에 싣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지은 집들이 저 아래 도로 가에 자리잡은 제재소에서 켜 놓은 나무들로 만들었다고 해도 집 지을 집터까지 실어 나르려면 죽을 고생을 해야한다. 그렇다면 모든 일이 사람의 힘 아니면 가축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므로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는 쉽게 짐작이 될 것이다.


 그런 처지란 것을 젊은 세대들은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들이 보기엔 아름다운 경치지만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얼마나 처절한 고통의 연속인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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