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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다랑논의 슬픔 - 6

by 깜쌤 2005. 7. 12.


그리움이 가득한 산모롱이를 돌자 곱게 차려입은 원주민 아가씨들이 우리 뒤를 따라 붙기 시작했다. 물건 파는 아가씨들인데 이 길을 가는 것으로 보아 이제 집에 돌아가는 모양이다. 저수지를 끼고 난 산길을 계속 따라 걸어가자 공동묘지가 나왔다.

 

묘를 자그마하게 써두었는데 앞에 작은 비석들이 있고 거기엔 예외 없이 OO공(公) 묘라고 밝혀져 있었다. 이름 석자는 끝까지 남기고 싶은 게 우리네 인생살이인 모양이다.


 가도가도 끝없는 산길이 계속되므로 돌아서기로 했다. 돌아갈 시간을 계산해보니 더 이상 가면 문제가 될 것 같아서였다. 그렇다면 따자이 마을은 도대체 어디쯤 있는 걸까? 오는 도중에 만난 네덜란드인은 한시간 정도 걸으면 된다고 했지만 마을이 나타날 조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H선생과 돌아서 오는 길에 아까 우리 뒤를 따라왔던 아가씨들을 만났다.


 산길에서 만났으니 적의가 없다는 듯으로 인사를 해두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반갑기도 해서 인사를 했다.


 "하이!"


 그러자 아가씨들이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는 것은 좋았는데 순식간에 우릴 둘러싸더니 물건들을 펼치며 사라고 하는 것이다. 아, 놀랍다. 이 놀라운 상술과 끈질김이여! 물건 하나를 팔기 위해 30분이고 40분이고 걸어서라도 따라와서 말을 붙이는 이 지독한 생존기술은 우리도 배워야한다.


 "아가씨들, 돈 없어요...."

 "한국 사람들 돈 많은 것 알아요, 사세요. 여기 온 한국사람들 모두 돈 많았어요."

 


 참, 못 당하겠다. 어떤 한국인들이 여기에서 돈 자랑하고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긴 사진 찍으려고 왔거나 아님 배낭여행 왔을텐데.... 단체 손님이 왔다면 그건 틀림없이 사진 찍기 위해 오신 분들 밖에 없었을텐데...... 모르지, 철없는 여행객들이 여기까지 와서 돈을 펑펑 쓰고 갔었을 수도 있겠지......

 

간신히 아가씨들을 돌려보내고 다시 오던 길을 걸어왔다. 공동묘지 부근을 오자 휘파람 소리 같은 것이 산 쪽에서 들려오는데 분위기가 수상했다. H선생이 앞장서고 내가 뒤를 따라 걷는데 서로 말이 없었다.

 

온 사방은 조용하지, 장소는 공동묘지 부근이지......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H선생을 놀래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장난을 쳐보기로 했다. 그런데 너무 놀라서 심장마비라도 일으키게 하면 이 산중에서 감당이 안 된다.

 

그러니 적당하게 놀라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말없이 걷기를 한참이나 하다가 길섶이 모두 풀로 덮여져 길인지 숲인지 구별이 잘 안 되는 특별히 좁아진 부분에서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아아악!!!!"


 느닷없는 비명소리에 화들짝 놀란 H선생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본다. 그 표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내가 먼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어허허허허~~~!!"


 워낙 점잖은 분이어서 존경심이 저절로 솟아나게 만드는 H선생도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산골에서 장난을 치며 오던 길을 부지런히 걸어 여관에 돌아오자 벌써 땅거미가 온 사방을 휘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