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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다랑논의 슬픔 - 1

by 깜쌤 2005. 7. 5.


"용승"이란 곳은 계림에서 북서쪽으로 한 100킬로 정도 떨어져 위치한 산간 오지 도시이다.
우리로 치자면 강원도 영월이나 정선 정도가 될 것이다. 용승 부근의 용배제전이라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장족(壯族 . 티베트 장족이 아님)이라는 소수민족이고 이들이 그 동네의 주류를 이룬다.


 전란을 피해서, 혹은 한족(우리가 아는 중국사람들)의 압박을 피해서 깊은 산골로 쫓겨 들어간 장족들은 험한 산비탈을 계단식 논(梯田 티티엔, 제전. 산골짜기 다락 논)으로 개간해서 인간의 깊은 생존 본능을 유감 없이 발휘함으로써 지금은 계림 부근의 뛰어난 관광지로 변모시켰다.

 


                                             <용배제전의 장족 마을 전경 >

 

 이 곳은 외국인들과 사진작가들에게 에게 특히 인기가 있어서 봄가을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곳이 되었다. 사실 그런 계단식 논은 우리나라 강원도에도 있고 지리산 피아골에도 있으며, 남해안 해변이나 섬에도 상당수 존재한다.


 배낭여행자들에 전설적인 낙원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의 발리섬에도 있으며 필리핀에도 있다. 동남아시아 산간지대엔 어지간하면 다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는 남부의 운남성과 귀주성에도 있는데 그런 소문을 들은 우리들은 이번에 거기를 먼저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용배제전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용승이라는 도시를 거쳐야 한다. 지리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용승을 거치지 않고도 갈 수 있겠지만 우리 같은 외국인 배낭여행자들은 아무래도 용승을 거쳐가는 것이 편하다. 계림에서 바로 용배제전 가는 버스가 없으므로 일단 용승행 버스를 탔다.

 


                                                      <용승 시내 모습 >

 

 첫 버스가 아침 7시에 있어서 아침 일찍 여관을 나선 우리들은 아침도 거르고 버스를 타야했다. 약 한시간 반정도 달리면 버스는 깊은 산골짜기 사이의 좁은 평지에 자리잡은 용승에 도착한다.

 

 배낭을 매고 내렸더니 소형 미니버스가 용배제전이라는 글을 붙인 채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출발까지는 한시간 가량의 여유가 있었으므로 터미널 버스 대기장 부근의 작은 국수집에서 국수를 사먹기로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작은 소녀가 엄마와 함께 국수를 말고 있었는데 여기 국수는 국물이 걸쭉해서 맛이 별미였다. 국수 한 그릇은 우리 돈으로 300원 정도였다. 용승 터미널에서 용배제전까지는 미니 버스로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깊은 강원도 산골짜기로 가는 길을 생각하면 틀림없다. 굽이굽이 산굽이를 감돌아 뻗어나간 구겨진 도로 옆으로 맑은 물이 흘렀다. 중국에서 모처럼 깨끗한 물을 보는 것이다.

 


                                     <용배제전 가는길에 버스 안에서 만난 장족 아줌마>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드디어 나무로 만들어진 2층 가옥들이 도로 옆에 묻어있는 깊은 산골에서 가파른 산비탈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버스가 멈추어 섰을 때 무릎 정도까지 오는 검은 치마를 입고 빨간 윗도리를 걸친 아줌마가 탔는데 한눈에 소수민족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긴 머리를 칭칭 감아 올려 단정하게 정리를 하였는데 머리를 다 풀면 엄청 길 것 같았다. 귀에는 무거운 은 귀고리를 해서 귀 볼이 밑으로 늘어져 있었고......


 지금까지 내가 만나 본 보통의 소수민족 여자들은 눈을 다소곳이 밑으로 깔아서 사람들과 눈길이 마주치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이 아주머니는 그런 것 같지가 않아서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이유는 이삼십분 뒤에 저절로 알게 되었다. 이 깊은 산골 도로 가에 제재소가 많이 있는 것도 수상하게 여겼는데 거기에도 다 깊은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