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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영상수필과 시 1 Photo Essay & Poem

추억을 찾아서 1

by 깜쌤 2006. 10. 28.

기차를 탔습니다. 이동수단이 대중교통밖에 없는 사람이니 어디 멀리 갈땐 기차를 타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 정도의 기차 시설이면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느낍니다.

 

 

아내에겐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배낭에 사진기만 넣고 그냥 떠납니다. 형산강 철교를 지나기전의 경주 모습입니다. 얼마전에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아이가 이 부근에 삽니다. 마음이 짠해옵니다.

 

 

 

형산강 가에 자리잡은 아파트 촌입니다. 아파트 그림자가 강물에 빠져있습니다.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팔공산입니다. 예전 초등학교가 이젠 다른 용도로 쓰이나 봅니다.

 

 

 

군데군데 추수를 한 곳이 많습니다. 올해는 가을걷이가 조금 늦은 것 같습니다.

 

 

 시골역은 언제 봐도 정겹습니다.

 

 

 

의성군 금성면 탑리에 있는 금성산입니다. 화산이라고 그럽디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너른 모래밭(?)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탑리에는 국보로 지정된 탑도 있고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공룡골짜기가 있습니다. 

 

 

 

 기차에서 내려다본 시골 마을이 정겹기만 합니다.

 

 

 

 안동 낙동강 철교를 지납니다.

 

 

 

 가을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이 보였습니다. 기차의 종착역이므로 내릴 준비를 합니다.

 

 

 

 학창 시절 멋모르고 많이도 밟았던 플랫폼입니다.

 

 

 

 안동역 대합실엔 국화향이 그득했습니다. 양반도시다운 기품이 서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다시 버스를 타고 갑니다. 제비원 옆을 지나네요. 커다란 자연 암석을 이용해서 조각을 한 것 같습니다.

 

 

 

 드디어 목적지에 내렸습니다. 직행버스도 하루에 몇번만 스쳐 지나가는 한적한 곳입니다. 사진엔 들판이 크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그만합니다. 강변에 펼쳐진 논쪼가리 몇개가 고작인 곳이죠.

 

 

 

나는 초등학교를 여기서 다녔습니다. 기름 먹인 송판조각으로 만든 학교 건물은 사라지고 새로 잘 지었습니다. 여기서 6년을 다녔습니다. 6학년 마지막 겨울 방학때 이사를 가는 바람에 2월에는 학교에 가지도 못했습니다.

 

 

  

졸업은 했지만 떠나 버렸던 곳이기에 친구들 얼굴을 거의 다 잊어버렸습니다. 잊어버린 정도가 아니고 아주 잃어버렸습니다. 여학생들은 못 본 사람들이 너무 숱하게 많습니다.

 

졸업생의 반 정도만 중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던 가난했던 시절이었죠.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애띤 소녀가 머리카락을 모조리 가위로 짤라서 팔아버리고는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등교하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소녀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후배들이 노는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그땐 한반에 60명이 기본이었는데 지금은 전교생을 다 합쳐도 60명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졸업할 때만 해도 졸업생이 120명이 넘었습니다.

 

 

 

 동무들의 정겨운 소리가 귓전을 맴돌지만 얼굴들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많이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신작로를 달려오던 버스 꽁무니를 뒤쫒던 날들이 바로 어제 일 같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여름날 저녁 동네를 소독하는 모기차 뒤를 그렇게 따라다니더군요.

 

 

 

담임선생님이 사셨던 사택 자리엔 낯선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젠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우리집을 그런 식으로 기억하겠지요.

 

 

 

 내가 늙은 만큼 나무가 훌쩍 자란 모양입니다. 세월이 그만큼 많이 흘렀다는 증거지 싶습니다. 

 

 

 친구가 살았던 집터도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강건너편 골짜기에도 동무들이 살았습니다.

 

 

 나는 이 고개를 넘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내가 살았던 동네는 마을 전체가 이사를 갔습니다. 자갈 채취 때문에 이젠 사람이 살지 못하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정말 너무 아쉽습니다. 기억을 떠올릴만한 건덕지 하나도 없어져 버렸으니까요. 

 

 

 

 공사장의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억새로 가려보았습니다. 이렇게만 찍어보니 낭만이 가득한 가을날 같습니다.

 

 

 

 동네에 변변한 공터가 없는 산골이어서 기차역을 놀이터로 썼습니다. 이젠 발자국들도 다 티끌이 되었겠습니다.

 

 

 

 기차역앞으로는 내성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강은 철길 너머 바로 앞쪽 밑에 있습니다.

 

 

 시골역에는 목화열매가 달렸습니다. 참 오랫만에 봅니다. 마음씨 좋은 직원분들이 따뜻한 커피를 한잔 대접해 주더군요. 너무 고마웠습니다.

 

"역장님, 그리고 오승환님! 감사합니다. 일부러 기차역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만 아는 분들은 다 알지 싶습니다." 

 

 

 

 정갈하게 손질해둔 시골 역이 주는 감흥이 남다릅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으므로 다시 일어서서 걸었습니다.

 

 

 

 철길 바로 밑으로 내성천이 흐릅니다. 몇년전 가뭄에 물길이 완전히 말랐었다고 그럽니다. 그래도 그 다음해엔 다시 물고기들이 돌아왔습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여름을 여기서  다 보냈습니다.

 

  

 그렇게 많았던 금모래들이 이젠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마구잡이식으로 퍼내간 뒤끝은 이렇게 흉물스럽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물이 맑다는 것입니다. 상류쪽에 오염원이 적다는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 어드메쯤엔가 댐이 건설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자세한 위치는 모르지만 댐이 들어서면 또 물속에 묻혀야만 하는가 봅니다.

 

 

 

 인생살이라는게 참  묘한 것이더군요. 허무한 것도 사실이지만 한세상 잘 살다 간다는 느낌도 듭니다. 인생이나 강이나 흘러간다는 것은 같습니다.

 

 

 

 기적을 울리며 철마가 달려갑니다. 세상살이가 모두들 그렇게 가는 것 같습니다.

 

 

어리

버리

 

 

 

Foster & 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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