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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1 My Way (完)

책걸이

by 깜쌤 2006. 7. 21.



20일 목요일에는 거의 모든 과목을 끝냈습니다. 나는 철저하게 진도를 맞춰나가는 성격이라 방학 하루전이나 졸업 하루전에 교과서를 끝내는 식입니다. 사실 교과서는 교육과정을 가르치기 위한 하나의 참고도서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교과서를 끝까지 다루어주어야만 다 배우고 다 가르친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아이들과 즉석 책걸이(?)를 했습니다. 우리반 아이들은 제 성격을 아는 터라

처음부터 그런 것을 하자는 말조차 꺼내지도 않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책걸이를 하고나자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진짜 책걸이는 밤에 있었습니다. 지난 3주일간 영어 연극 연습을 해왔습니다. 6월말에 평가를 끝내고 나서 성적 입력 작업을 하는 동안 연습을 시켜 왔었던 겁니다.

 

 

 



37명의 학급아이들이 한명도 빠짐없이 모조리 연극에 출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아이들을 4모둠으로 나누었습니다. 물론 모둠장 역할을 자원한 아이가 자기와 함께 일하고 연극하고 싶은 친구들을 데려가는 식으로 정했습니다.

 

교사가 나서서 강제로 정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나중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쓸 생각입니다. 대본만 제가 알아서 구해주면 되죠.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잘 해주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연기지도만 조금해주고 나머지 일들 - 이를테면 분장 소품, 역할분담, 대사 추가, 번역 등의 일 -은 철저히 아이들에게 맡겨줍니다.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스크린에 투사할 장면들까지 우리반 아이들이 다 만들었습니다. 인터넷 자료를 활용하여 효과음을 다운로드 시키고 그것을 시디로 굽는 것 까지 척척해냅니다.

 

방학전날 무대가 있는 공간에서 학부모님들과 친구들을 모셔두고 공연을 했습니다. 당연히 마이크 없이 목소리로만 합니다. 실전에 강한 아이들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끼를 마음껏 펼쳐보여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방학이 오는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21일 오후부터 실제적인 방학시작이니까 정신없이 산 셈이 됩니다. 2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거의 다 채웠더군요. 책걸이 하나는 확실하게 한것 같습니다.

 

최근 몇년동안 느낀 점인데요, 도대체 아이들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입니다. 사실 좀 더 큰 대도시 학교나 여건 좋은 사립학교에 근무를 할 수 있었다면 해보고 싶은 교육적인 일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만 이렇게라도 하고 사는 것에 대해 만족하기도 합니다.

 

 




맹자님 말씀이던가요? 좋은 아이들을 만나 가르치는 것은 인생삼락 가운데 하나라고 하던데 그 세가지 즐거움 가운데 하나를 만끽하고 사는 저는 너무 행복한 선생인 것 같습니다.

 

내 타고난 그릇의 크기와 부족한 자질을 가만히 생각해 볼때 이런 아이들을 가르치며 사는 것만 해도 저에게 주어진 복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은 더 큰 무대에서 강의를 하며 사는 것이지만 그건 제게 과분한 일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아직 아침식사 전입니다)에 주인공 역할을 한 아이로부터 메세지가 하나 날아왔습니다. 정말 행복해지게 만들어주는 글입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오늘이 방학이라니 믿겨지지 않아요.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알찬 학기를 보낸것 같아요. 선생님 감사해요!!!!!"

 

 

 


 

부족하고 모자라는 어설픈 선생이 하는 일이지만 잘 이해하며 도와주시는 멋진 학부모님들께도 인사한번 드려야겠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학부모님들이 아마 다 그렇지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책걸이가 끝났습니다. 밤 10시 가까이 되어 집에 오니 20여년전에 가르쳤던 제자로부터 전화가 와 있었습니다. 제가 밥 한끼를 사기로 하고 시간 약속을 해두었습니다. 어리버리한 시골 선생은 이렇게 삽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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