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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영상수필과 시 1 Photo Essay & Poem

빈 집 1

by 깜쌤 2006. 5. 16.

 

 

굵은비 가늘어진 아침,

노리끼리한 감자는 보리밥 사이에 박히고

열무김치는 이빨 빠진 사기그릇에 담겨

찬물 한그릇 간장 한종지와 함께

개다리 소반에 아침상을 받으신 할배는

아무 말씀 없이 밥만 드셨다.

 

 

 

 

 

 

커다란 양푼에 상추 이파리 쪽쪽 찢어넣고

고추장 두숟가락 넣고

놋숟가락으로 쓰윽 쓰윽 비벼먹은 손주는

씩씩한 웃음 날리며

책보자기 옆구리에 끼고 학교로 내달렸다.

 

 

 

 

 

 

버얼건 큰물이 강둑을 할키며

지나가는 날은

산밑으로 밑으로만 난 산길을 따라가다

신작로 큰다리를 만나서야 물을 건너 학교로 갔다.

선생님은 얼굴 붉히시며 말씀하셨다.

"말라꼬 오노? 이런 날은 안와도 된데이.

어여 점심 먹고 돌아가그라."

 

 

 

 

 

 

집으로 돌아갈 길이 까마득해도

동무가 있어 즐겁기만 했다.

단발머리 여학생은 꺄르륵거리며

저희끼리 앞장섰다.

동네 이발소에서 아무렇게나 밀어버린

빡빡머리 남학생은 뒤따라 갔다.

 

 

 

 

 

장죽대 입에물고 강가에 나와

손주를 기다리던 할배 얼굴엔

근심이 묻어났다.

 

 

 

 

 

 

마당 한켠 감나무에 매미가 흐드러지게 울어도

구성진줄 모르고

봉숭아 꽃잎 발그랗게 물들어도

고운줄 모르던 할매는

학교간 손주들이 돌아오면 얼굴이 밝아왔다.

 

 

 

 

 

 

봐주는이 없어도 저 혼자서 예쁘기만 한 들꽃이

제 삶을 안고 살고 있었다.

산모롱이에.....

 

 

 

 

 

손주 기다리던 할매

떠난 툇마루엔

세월의 더깨가 조용히 졸고 있었고........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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