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들은 술탄 아흐메드 1세(재위기간 1603-1617) 사원으로 들어간다. 여기는 이런 이름보다 그냥 블루 모스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회교사원의 내부를 장식한 푸른 색 타일때문에 그렇게 알려져 있다. 이 사원이 가지는 의미는 대단하다.
이 사원의 맞은편에 기독교를 상징하는 비잔틴 제국 양식의 아야 소피아가 자리잡고 있으므로 기독교에 대한 이슬람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한 상징으로 건설되었다는 이야기가 남아있을 정도로 회교도들에겐 대단한 사원인 것이다.
건물을 설계하고 지은 사람은 메흐메트 아아라는 사람인데 자기 스승보다도 더 나은 위대한 인물로 기억되기를 바랐고 아야 소피아를 건설한 사람들보다 더욱 더 위대한 인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가득했었기에 심혈을 기울여 이 사원 건축에 몸을 던진 모양이다.
이 건물은 아야 소피아보다 약 천년뒤인 160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616년에 완공시킨 건물이지만 결코 아야 소피아를 능가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내부 설계에 있다.
회교 사원으로 들어갈 때 주의할 일이 몇가지 있다. 먼저 여성들은 반바지 차림이나 미니 스커트 차림으로는 입장이 안되므로 긴 치마나 바지를 입어서 맨살이 드러나지 않도록 가리는 것이 좋다. 남자들도 자나친 소란 행위를 벌이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종교시설물이므로 될 수 있는 한 정숙하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아랍어는 오른족에서 왼쪽으로 써 나가는 글씨이다. 회교도들은 아랍어가 그들이 말하는 천국에서 사용되는 언어라고 믿는다. 보통 이런 곳에 씌여지는 문구로는 "알라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라든가 "마호멧이 위대한 신의 최후의 선지자"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문장을 쓴다는데 아랍어를 읽을 줄 모르니 답답하기만 하다.
하늘로 솟은 돔의 위용이 대단했다.
마침 한국 성지순례단을 만나 양해를 구하고 끼어들어 설명을 들었다. 모를땐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회교도들이 보기엔 이방인인 우리들은 저 문밖으로 나가서 이방인들을 위한 다른 문으로 입장해야 한다.
물론 신발은 벗어들고 비닐 봉지 속에 넣어야 한다. 회교 사원은 보통 카펫이 깔려 있어서 맨발로 입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속으로 들어서면 돔을 받친 거대한 기둥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벌써 이 건물은 건축 기술적인 면에서 아야 소피아에 뒤진다고 한다. 아야 소피아에는 이런 거대한 기둥들이 없다. 그런데도 어머어마한 돔을 떠받친 상태로 천년 이상을 버텨온 것이다.
블루 모스크 속에는 모두 카펫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회교와 기독교 사이의 화해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회교의 교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 확실한 것은 둘 중 하나는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독교와 회교는 경전에 등장하는 인물 부터가 비슷하다. 회교는 마호멧이 신이 선택한 최후의 선지자라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 중의 하나로만 본다는 것에서도 확실한 차이가 난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하나님의 본체라는 것이지만 회교에서는 방금 위에서 말한 대로 예수는 단순한 선지자 가운데 하나인 평범한 존재라는 것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아울러 코란에는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저주하는 부분들이 상당히 존재한다. 그러길래 회교도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기독교인들은 사탄의 앞잡이며 저주받은 자들이고 이란의 입장에서 볼 때 미국 같은 나라는 악의 축이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란 화폐 속에 미국 달러 속의 문구와 비슷한 문장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는 세계의 최강대국이고 하나는 그렇지 못하다. 참 희한한 현상이다.
내부를 장식한 푸른색의 타일들이 교교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블루 모스크라고 하는 모양이다. 이 사원을 둘러싼 첨탑은 여섯개이다.
회교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메카에 있는 대사원의 첨탑 수와 같다는 것 때문에 두 도시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벌어졌다. 할수 없이 아흐메드 1세는 메카의 대사원에 첨탑 하나를 더 만들어주어야 했었단다.
아야 소피아는 나중에 성지순례팀이 들어오면 같이 만나서 들어가보기로 했다. 아야 소피아 정문 부근에는 환전을 겸한 간이 우체국이 자리잡고 있다.
뒤에 보면 우체통이 보인다.
이제 우리들은 아야 소피아를 옆으로 돌아서 톱카피 궁전으로 들어간다. 톱카피 궁전이야말로 이스탄불 구경의 핵심지이다. 여기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통치했던 술탄들이 살았던 곳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복궁 정도이고 중국으로 치면 북경의 자금성 정도에 해당되는 건물이리라.
입구 천정의 장식이 화려하다. 입장료도 비싼 곳이다. 매표소의 위치와 개방 시간 정도만을 확인해 둔 뒤 발걸음을 돌려서 나왔다.
톱카피 궁전 입구 쪽은 숲이 아주 울창해서 시원하기 그지 없다.
입구 부근으로는 작은 기념품 가게들이 많았다.
다시 우리들은 이제 이스탄불 국제 기차역으로 가보기로 했다. 거기가서 보스포러스 해협 투어를 위해 유람선을 타보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기 때문이다. 밤빌리아 호텔쪽으로 들어가서 골목을 지나 기차역으로 나가기로 했다.
여기는 지하궁전의 입구이다. 이 궁전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 드려야겠다. 이 지하궁전은 아주 유명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진다.
골목엔 아름다운 카페들이 자리 잡았다. 이 카페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녁이 되면 앉을 자리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음식 하나는 좋았던 모양이다.
여기가 우리가 묵었던 밤빌리아 호텔이다. 외관은 근사하다. 꼭대기에 보면 전망대가 보인다. 거기서 바라보는 전망 하나는 일품이었다.
한 십분 정도 걸으면 그 유명한 이스탄불 국제 기차역인 시르케치 역까지 갈 수 있다. 여기서 출발하는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한때 전 유럽을 풍미했었다. 벽엔 케말파샤의 얼굴이 붙어 있다.
역은 개방형 구조로 되어 있어서 누구나 플랫폼까지 나가 볼 수 있다. 이런 것이 유럽형 기차역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매표구인데 여기서 표를 구하는 과정은 좀 어려웠다. 내 경험으로 그랬다는 것이다. 그렇게 친절한 것 같지도 않았고......
대합실에서 밖을 내다본 풍경이다.
시르케치 기차역에서 잠시 숨을 돌린 우리들은 다시 폭염이 사정없이 쏟아지는 거리의 혼잡함 속으로 몸을 던져넣어야 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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