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잠시 보여드리다가 대강 치워버린 것이 마음에 걸려서 사라지지가 않았다.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리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하여 올려보았다. 앞에 진한 녹색으로 둘둘 감긴 기둥은 그리스의 델피 신전에서 여기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둘둘 감긴 모습이 무슨 동물을 닮았다고 보는가? 배암? 그렇다. 뱀이다. 세마리가 감겨 올라간 이 구리기둥의 아랫 둥치는 저 밑에 보인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빠지지 않도록 가에다가 둥근 모습의 철책을 만들어 둔 것이다.
자세히 보면 이런 모습이다. 결국 예전 이스탄불의 도시 바닥은 현재 위치보다 낮았다는 말이다. 알다시피 이스탄불은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다. 이름하여 비잔티움이다.
원래 여기 이스탄불은 그리스 신화가 숨쉬던 자리이다. 기원전 657년 경 그러니까 우리나라 고조선 시대, 제사장이자 정치지도자였을지도 모르는 단군들이 부족국가를 이끌어가던 시대때 이 동네에서는 비자스라는 헬라 사람이 끈질긴 기도 끝에 델피 신전에서 신탁을 받아 새로운 도시 건설을 위해 길을 떠난다.
그는 여러지역을 답사한 끝에 여기 이땅을 찾아내었고 이미 여기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있던 사람들과의 투쟁을 벌인 끝에 도시를 건설하는데 도시건설자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랜 영화를 누리던 이 그리스 도시는 서기 196년 로마제국의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군대에게 점령당하고 마는 것으로 헬라 문화는 막을 내리는 것이다. 파괴된 도시를 보고 마음 아파했던 로마제국의 황제는 도시를 재건했고 이름까지도 아우구스타 안토니나라고 명명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가 서기 330년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뛰어난 전략적 요충지인 여기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수도를 옮겨오게 됨으로써 찬란한 로마 문명이 싹을 틔우게 된다.
그랬던 이 도시는 서기 1453년 5월 29일 저녁, 오스만 투르크 군대의 지도자였던 메흐메트 2세(일명 위대한 정복자 파티)에게 함락당함으로써 이슬람의 도시로 모습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유럽 대륙에 이슬람의 세력이 교두보를 만드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123년을 이어온 비잔틴 제국은 마침내 막을 내렸고 그 당시의 유적만이 말없이 과거의 영화를 안은채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델피 신전의 예언에 의해서 만들어진 도시 비잔티움은 지금은 이스탄불로 이름을 바꾸어 존속하고 있고, 기원전 478년부터 델피의 아폴로 신전 앞마당에 세마리의 바다뱀을 새겨서 세워 두었던 이 구리기둥은 서기 330년경에 여기로 옮기워지면서 지금까지 이 모든 역사를 낱낱히 지켜본 증인이 된 것이다.
구리 기둥 뒤에는 이집트에서 옮겨온 오벨리스크가 자리잡고 있다. 보통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오벨리스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서기 390년경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통치하던 시대에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상형문자의 내용은 기원전 1500년경 이집트를 통치했던 투트모스 3세의 전공을 기록한 것이라고 하니 오래되긴 오래된 것이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옮겨온 오벨리스크 뒤로 거칠게 쌓아올린 듯한 또하나의 오벨리스크가 보이는데 그것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든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10세기경 비잔틴 제국을 통치했던 콘스탄티누스 7세가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다니 오래 된 것임에는 틀림없다. 현재처럼 흉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제 4차 십자군 원정때 오벨리스크 가를 둘러싼 구리판을 모두 약탈당하고 나서부터라니까 예전 모습은 지금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런 유적들은 히포드롬 유적지에 있는 것들이다.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독일황제 빌헬름이 터키를 방문할때 독일과의 친선 기념으로 만들어서 선물한 황제의 우물이 히포드롬 유적지의 북쪽끝에 자리잡고 있고 제일 남쪽끝에 오벨리스크가 있는 셈이다.
히포드롬은 영화 <벤 허>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대전차(大戰車)경기장을 말한다. 나는 이 글 속에서 로마의 대전차 경기장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이제 다시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그러니까 예전 로마제국의 수도였던 비잔티움에 남아있는 거대한 대전차 경기장을 보여드린 셈이 된다.
이 경기장에서는 수많은 전차 경주가 벌어졌었고 전차경주가 원인이 되어 여러 정치적인 사건들이 발생한 빌미를 주기도 했던 모양이다. 여기에서는 녹색팀과 청색팀이 라이벌에 되어 경기를 벌인적이 많았다고 하는데 특별히 스릴이 넘치는 경기가 끝난 뒤에는 심심찮게 정치적인 소요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한다.
히포드롬의 바로 옆 동쪽, 그러니까 보스포러스 해협쪽으로 저번에 사진으로 보여드린 이 블루 모스크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가 이스탄불 관광의 핵심지대라는 것인데 이 부근에는 아직도 더 많은 유적들이 남아있다. 이게 다가 아닌 것이다. 이게 다일 것 같으면 무엇때문에 이스탄불이 유명한 관광 도시가 되었겠는가 말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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