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배들이 주로 보스포러스 해협 투어를 떠난다. 보통은 시르케치 역 부근 갈라타 브릿지가 있는 부근의 부두에서 출발하여 두번째 대교가 있는 곳을 보고 돌아오는 모양이다. 물론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수상 버스를 타고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가는 곳 까지 갔다가 돌아와도 된다.
우리앞에 나타난 삐끼는 인상이 좋았다. 하지만 인상 좋은 삐끼가 우리에게는 독이 된 것이었다. 하기사 사기꾼치고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
"아자씨들~ 해협투어 가유? 끝내주게 좋아유. 지금 막 당장 배가 막 떠날려구 하거든유. 어서 속히 급히 빨랑 빨리 타세유. 한 두시간 걸리는디유 가격도 좋아유. 20리라만 하면 덮어쓴당께유. 어서어서 타셔유~~"
할아버지 삐끼는 우릴 안내하여 이 흰모자를 쓴 백전노장 역전의 용사(돈에 관한 한) 용감무쌍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굳게 무장한 장사치 할배들 앞으로 인도했고 그 중에 한 인간이 20리라를 불렀으며 우리는 엉겁결에, 정말 순식간에 화들짝 놀란 철없는 노루마냥 깡총 뛰어 배를 타고 만 것이었다.
배표 영주증? "기딴것은 키우지 않는다"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들이다. 타고 난 뒤에 가만히 생각하니 우리가 서두르느라고 가격흥정을 하지 않았다. 내가 경솔했던 것이다. 가격을 알아보고 남들이 지불하는 가격을 알아보고 배를 타야했었는데 어리버리한 내가 등신같이 그만 홀랑 올라타버리고 만 것이다.
결국 이들이 달라는데로 다 준 셈이 된 것이다. 이런 경유는 거의 백발백중 바가지 요금이다. 갑자기 배가 아파온다. 이제 내려가서 항의할 수도 없고...... 돈을 주기 전에 철저히 알아보고 흥정을 했어야 하는데 지금 당장 출발한다는 소리에 속아서 그냥 정신없이 올라탄 것이다.
터키에 가서 여기에서 해협투어를 가시고자 하는 분들은 특별히 조심하기 바란다. 절대 그들의 상술에 속으면 안된다. 형제 국가이므로 한국인을 특별대우 할 것이라는 환상은 처음부터 버리시기 바란다.
생존의 문제가 걸린 체험 삶의 현장에 무슨 형제국 백성을 찾을 여유가 있다는 말인가? 여기는 서부유럽 국가들처럼 정가가 있는 세상이 아니다.
눈앞에서 빤히 드러날 거짓말을 하고도 낯색깔 하나 안 변하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다. 터키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분들께는 아주 죄송한 이야기지만 너무 터키인들 욕을 한다고 생각하시지 말기 바란다. 하지만 이들도 우리 한국인들처럼 일단 얼굴을 익히고 알게 되면 사람 대접하는 것이 달라진다.
그런데 지금 당장 출발한다는 배가 왜 이리 안가는가 말이다. 당장 배가 출발할 듯이 시동을 걸고 부두에서 살짝 벗어나는 척 하며 다시 손님을 부른다. 그러면 사람들이 또 허둥지둥하며 한떼가 올라타고..... 배는 다시 또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예전 1970년대 시골길을 달리던 버스들이 써먹던 수법이 아직 여기에 건재하다. 만원 버스가 곧 출발할듯이 부르렁거린 뒤 사람들이 올라타면 다시 더 기다리는 수법 말이다. 어디 한두번 당해본 우리들이던가?
드디어 바가지를 덮어씌운 할배의 사진을 찍었다. 이 양반이다. 조심해야 한다. 한시간 가량 내가 배위에서 관찰한 결과 이 흰모자 팀의 수단은 보통이 넘는다. 표를 발급하는 것은 거의 못보았다. 오로지 현찰만을 받고는 사람들을 태우는데 받는 돈이 사람마다 거의 다 다른 것 같았다. 우리같은 어리버리한 배낭여행자들은 이들의 봉이고 밥이다.
아, 짜증난다. 자그마치 한시간 반을 기다려서야 배가 출발했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누구도 나서서 늦게 출발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빨리빨리이즘과 속전속결에 능한 우리 배달민족의 기질로는 "인샬라" 한마디에 만사가 느긋한 이들과는 함께 상종할 처지가 못되는 것 같다.
하지만 한때 우리도 시간지키기에 대해서는 이 사람들과 비교해서도 만만치 않은 존재들이지 싶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오죽했으면 예전에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존재했었을까? 부끄럽기 그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광이 지배하는 터키이다. 터키에서는 터키법을 따라야 한다. 별수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러기를 한시간 반이나 하고 나서야 배가 출발했던 것이다.
아, 열불난다. 바가지 요금을 쓴 것만 해도 억울한데 귀중한 시간을 한시간 반씩이나 날렸으니 어찌 신의 경질(=신경질)이 나지 않을 수 있으랴. 정말이지 아주 살짝 기분 나쁠뻔한 정도를 너머 환멸을 느낄 정도였다.
부두에서는 목청 찢어지는 듯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락그룹이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하게 여겼었는데 자세히 보면 그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분들이다. 살아가기 위해 노래를 부르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적선을 바라고 사는데 뭐라고 할 처지가 못된다. 그분들은 몇년째 이 장소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침내 배가 출발했다. 이젠 바다에서 골든 혼(Golden Horn)과 육지를 보게 되므로 사진이라도 부지런히 찍어두어야 한다. 사진에 보이는 저 다리가 탁심지구와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갈라타 브릿지이다. 다리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었고 다리 밑엔 레스토랑들이 즐비했다.
잘못하면 레스토랑 의자에 앉아 식사를 즐기다가 낚시바늘에 낚이는 수도 있지 싶다. 오늘 저녁은 저기 가서 먹어볼까 싶다. 골든 혼에서 갈라타 브릿지 밑에 앉아 식사한다는 것은 근사한 경험이 아니던가?
다리 아래쪽 레스토랑들이 자리잡지 않은 가운데 부분으로는 유람선들과 수상버스들이 지나가게 되어 있다. 콘스탄티노플 공방전때 여기에는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에서 왜군 해군의 진입을 막는 쇠사슬을 쳐두었듯이 쇠사슬을 걸어 이슬람 군함들이 골든 혼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했던 모양이다.
배에서 보면 그랜드 바자르(=대시장)쪽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원이 자리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름하여 슐레이마니예 사원이다. 첨탑과 둥근 돔이 그려내는 선들의 아름다움이 일품이다. 이 사원은 이스탄불에선 두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부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관광객들과 장사치들이 섞여서 대혼잡을 이루는 곳이다.
우리는 이층 갑판에 앉아있었는데 우리 좌석 맞은편에 손녀 둘을 데리고 탄 할아버지가 보였다. 큰 손녀의 얼굴 윤곽이 너무 또렷하고 예뻐서 살짝 찍어보았다. 확실히 미인이다. 얘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이슬람 여자 아이들은 생리가 시작되면 히잡을 둘러써야한다고 한다. 그때부터는 가족과 남편외의 남자들에게는 피부를 노출시키면 안되는 것이다. 그게 옳은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의 관습이고 이슬람 율법이기도 하다. 얘는 초등학생 정도로 보인다.
그래, 우리는 간다. 해협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다. 아르고호를 탄 이야손처럼 모험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 여성들로만 이루어졌다는 아마조네스 군단을 찾아서 배를 타고 가는 것이다. 아마존 왕국은 흑해 부근 어디엔가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야손은 순전히 사람들 힘으로만 가는 갤리선을 타고 황금양털을 찾아서 길을 떠났겠지만 수천년 시차를 두고 태어난 우리들은 편안하게 동력선을 타고 관광 목적으로 길을 떠난다.
부두를 벗어나기 위해 배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면서 만들어내는 파도가 높기만 했다. 그렇게 수차례를 반복하더니만 드디어 부두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해협으로 살짝 나가기만 했는데도 눈 앞으로 톱카피 궁전이 보이고...
4개의 첨탑으로 둘러싸인 아야 소피아가 보이고....
마지막 오른쪽으로 블루 모스크가 보였다. 그러니까 골든 브릿지 쪽 바다에서 보면 톱카피 궁전, 아야 소피아, 블루 모스크가 줄을 선 모습으로 나란하게 보이는 것이다. 톱카피 궁전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설명할 예정이다.
이런 절경을 보며 우리는 떠나갔던 것이다. 우리 배 이름이 아르고 호가 아니었던 것이 아쉽지만 내가 이야손이 아닌 것은 더 다행한 일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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