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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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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아하! 이래서 계림이구나! - 3

by 깜쌤 2005. 6. 22.


상비산 정상에서 상류쪽을 내려다보면 이강을 가로질러 해방교가 보인다. 해방교를 건너가면 칠성공원이 나오는데 거기서 보는 경치가 계림 관광의 백미에 해당한다고 한다. 칠성공원 뒷문부근에 지앙 선생의 아파트가 있다고 했으니 강 건너편 어디쯤 되리라.

 

 상비산 정상에서 남쪽을 보면 수많은 봉우리들이 나름대로의 자태를 자랑하며 열 지어 서있는데 그쪽이 양삭(양수오)방면이 된다.


 유유히 흘러내리는 이강엔 유람선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이강 유람이 그리도 유명하다니 한번 타 봐야하지만 요금을 자그마치 500원 전후로 부르니 이건 숫제 관광객의 주머니를 싸그리 훑어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디 한번 차근차근하게 생각해 보자. 중국인들의 한달 평균 임금이 15만원 정도라고 볼 때 우리 돈 75,000정도의 요금은 근로자 반달 봉급이 아니던가 말이다. 아니 그 어느 세상에 유람선 삯으로 이 정도의 요금을 요구하는 곳이 있단 말인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중국인들의 요금은 100원(한국 돈 15,000원) 정도라고 한다. 자기들은 그 정도의 돈으로 구경이 가능하게 해두고 외국인들에겐 그렇게 많이 요구한다는 말인가?


 외국인들을 모두 봉으로 생각하는 그 뻔뻔스러움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 수밖에 없다. 기분 나쁠 경우 돌아서면 그만이지만 실제로 한번 당해보면 이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싶다.

 

모처럼 큰 맘 먹고 머나먼 나라에서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이런 식으로 공식적인 바가지를 씌운다면 좋아할 사람 누가 있겠는가? 나중에 우린 이강 유람선 타기를 단돈 40원에 해치울 수 있었지만 떨떠름한 기분은 귀국할 때까지 남았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우리들은 가파른 계단을 타고 이강 기슭으로 내려왔다. 이 봉우리를 상비산으로 이름 붙인 문제의 코끼리 코는 보아두고 가야할 것 아닌가? 참 신기하게도 산봉우리 한 부분이 뻥 뚫어져 커다란 동굴처럼 보이지만 앞뒤로 모두 터져 있으니 굳이 동굴이라고 부르기도 뭣하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코끼리 모습이니 자연의 조화가 이렇게 신기할 수가 있는가 싶다. 이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개울 가운데 하나인 도화천을 건너가면 상비산을 가장 잘 관람할 수 있는 관람장소가 나오는데 거기 가서 보면 왜 이 작은 봉우리를 그렇게 부르는지 이해가 된다.

 


이강에는 굵은 대나무를 잘라서 한쪽 끝을 위로 치켜들도록 살짝 구부린 대나무 배가 유유히 떠다니기도 한다. 그 대나무 배를 노로 저어서 이강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사진을 찍도록 유도했다. 자동차와 비행기가 판을 치는 세상이니 그런 대나무 배는 이제 우습게 보이지만 예전 같으면 그게 얼마나 운치가 넘치고 풍류가 넘치는 환상적인 한 폭의 그림인가?


 우린 거기에서 귀에 익은 우리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많은 중국 단체 관람객들 사이에서 우리말이 들리다니...... 중국 관광객들이 명절을 앞둔 시골 장터 난전바닥 장사치 마냥  마구 와글 와글거리는 가운데에서도 우리말은 너무 귀에 익숙하게 잘 들리니 참 신기한 일이다.


 "반갑습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인천에서 왔습니다."
 "저희들은 경주에서 왔습니다."
 "보아하니 배낭여행객들인 것 같은데요..."
 "예. 우리야 그냥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다음 행선지는 어디신지요?"
 "오늘 밤 장가계로 갈 겁니다. 기차 타고 가지요."


 그분들은 우리가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장가계로 간단다. 좋겠다. 단체여행객들이 저렇게 많이 움직이니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장가계 행 기차표를 구할 재간이 있겠나 싶다. 이강을 따라 걸어가다가 해방교를 지나 칠성공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칠성공원에서 내려다보는 계림 경치가 그저 그만이라고 하니 거긴 꼭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가보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서 나타나는 자그마한 구멍가게에 들러 얼음 과자를 하나씩 사서 입에 물었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가게 한 구석에 자그마한 체구의 백인 노인 둘이 앉아있었다. 부부이리라. 


 "어디서 오셨습니까?"
 "프랑스에서 왔습니다."


 말하는 폼이나 차려입은 차림새가 이미 '프랑스 사람이다' 싶었는데 정확하게 맞추고 나니 속으로 흐뭇하기만 하다. 하지만 프랑스식 영어를 구사하니 알아듣기가 어렵다. 이 노부부는 3년 전에 두 달간 한국을 여행해 본 적이 있다고 하며 간단한 우리 인사말 정도는 가볍게 구사했다.


 "중국인들은 부수고 새로 짓는 게 취미인가 봅니다. 멀쩡한 것도 헐고 새로 짓는 걸 보면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만큼 중국의 발전속도가 빠르다는 말이리라. 노부부와 헤어져 다시 거리로 나오니 인정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는 여름 햇살이 뜨겁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