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호텔찾아 3만리 2

by 깜쌤 2005. 6. 17.


                                      <남계공원에서 본 계림 시가지>

 

**저번 글에서 잘못 쓴 것이 있어서 수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일기장을 펴서 다시 확인해보니친절을 베푼 청년이 같이 택시를 탄 것이 아니더군요. 미안합니다>


 운전기사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영어가 조금 되는 양반이었는데 너무 짧아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우리가 목적지를 한자로 적어서 보여 주었더니 거긴 문을 닫았다고 하며 여기저기 전화를 해본다.

 

 '지금 내가 외국인 세 사람을 데리고 가는데 방이 있느냐' 하는 내용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탄 이 택시의 운전기사가 삐끼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가 전화를 바꿔준다. 어떤 여자가 나오는데 제법 영어를 잘 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우린 계림에 방금 도착한 외국인이오. 싸고 깨끗한 여관을 원합니다."
 "몇 사람인데요?"
 "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3인용 방을 원합니다."


 대화를 끝내고 운전기사에게 휴대전화를 넘겨주었다. 이야기를 하며 시내로 들어와 보니 밤이지만 계림시내는 아주 화려하고 깨끗한 것 같았다. 원래 계림반점이 있던 자리 부근에서 차를 세웠다.

 


 "여기가 원래 계림반점이 있던 곳이지만 지금은 저렇게 수리하는 중이오. 내가 다른 호텔을 아는데 데려다 주겠오."


론리 플래닛에 나타난 거리를 지나 가로등도 잘 보이지 않는 으쓱한 골목으로 몇 번 꺾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럴 땐 도로를 잘 기억해두어야 한다. 그 호텔이 마음에 안들면 다시 큰 거리로 돌아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H형, K형! 도로를 잘 기억해 두셔야 합니다. 난 많이 어리버리해서 방향감각이 없는 편이거든요."


기사가 차를 세운 곳은 보기에도 화려한 멋진 호텔이었다. 정문 앞엔 멋진 차림의 도어맨(Doorman)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4성 급 이상의 호텔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여기가지 왔으니 일단은 부딪혀봐야 한다. 차비를 계산하고 배낭을 내려둔 뒤 로비를 지나 카운터에 가서 말을 붙여 보았다.


 "안녕하십니까? 방금 여기 계림에 도착했습니다. 우린 세 사람인데 3인용 방이 필요합니다."
 "3인용 방은 없고요, 침대하나를 덧붙여 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렇게 할 경우 가격은 얼마입니까?"
 "2인용 방이 할인해서 287원, 덧붙여 드리는 침대하나 가격은 120원입니다."


 종업원의 영어가 조금 어눌해서 말이 잘 안 통했지만 그렇게 알아들었다. 그렇다면 400원 아닌가?


 "으흠. 400원이군요. 아시다시피 우린 배낭여행자여서 그런 큰돈이 없습니다. 한번 더 할인해 주시지요. 최저 할인가격이 얼마지요?"
 "이 정도 시설에 400원 이하는 곤란합니다만 특별히 250원까지 해드리지요. 그런데 택시 타고 오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기사는 갔습니까?"
 "당연히 갔지요."

 


                        <상비산 공원에서 본 계림 시가지와 이강>


 난 당연히 가버린 줄 알고 그렇게 대답했는데 얄밉게도 기사가 그때 그 순간에 카운터로 오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짚이는 것이 있었다. '아하, 이 택시기사가 자기 몫의 요금을 요구하기 위해 들어오는구나. 요런 싸가지 없는 삐끼녀석 같으니라고...' 졸지에 나만 거짓말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거다.


 두말없이 돌아서 나와버리고 말았다. 물론 종업원에게는 깎듯이 인사를 하고 나왔지만 기사 얼굴보기가 싫어졌다. 그런데 그 기사가 이번엔 다른 호텔을 알고 있으니 타고 가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 그 택시를 또 탈 리가 있겠는가?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다른 운전가사가 나서는데 그냥 거절하고 배낭을 매고서는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이런 일은 흔히 있는 일이므로 길을 잘 살펴두어야 한다. 컴컴한 골목길을 빠져나올 땐 조금 서글프기까지 하다. 돈 몇 푼 아끼려고 그 고생을 하는가 싶지만 이런 것 자체도 즐기려면 얼마든지 즐겨야 한다. 그게 배낭 여행하는 즐거움이자 비애이기도 하다.


 다시 큰길로 돌아 나온 우리들은 눈에 띄는 대로 들어가 보았다. 사실 계림정도가 되면 길거리에 갈리고 깔린 게 여관이고 호텔이다. 하지만 외국인은 아무 곳에서나 머무를 수 없다는 중국 국내법이 있다. 조금 수준이 낮은 초대소 같은 곳은 원칙적으론 외국인 출입금지이다. 하지만 돈을 밝히는 중국인들은 요즘 들어 그런 곳에서도 얼마든지 손님들을 받기도 한다.


 이번에 들어가 본 호텔은 3인용 방이 없다고 한다. 대신 2인실의 트윈 침대를 줄 테니 3사람이 자면 어떠하겠느냐는 제안을 해 온다. 요금은 방 한 칸에 100원이란다. 올라가서 보니 방이 깨끗하고 샤워 가능한 욕실도 좋았다. 그렇다면 머물러야지. 우린 그 날 한 침대에서 늙다리 남자 3명이 내 천(川)자 모습으로 요령 피워가며 자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