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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2 My Way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가녀린 참새 주검을 보고...

by 깜쌤 2022. 11. 11.

시골 집으로 출근하다가....

 

 

 

 참새 주검을 발견했어. 녀석의 가녀린 주검은 내 마음을 한없이 슬프게 한 거야. 문득 고등학교 때 읽어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글이 생각난 거야. 잠시 소개해 볼 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Was traurig macht)

안톤 슈낙(Anton Schnack. 1892 - 1973)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볕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작은 나무 위에는 “아이제여, 내 너를 사랑하노라"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있음을 볼 때, 숱한 세월이 흐른 뒤에 문득 발견된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행동으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 어린 장난, 아니면 거짓말, 아니면 연애 사건이었을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때 아버지는 그로 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 가를 왔다 갔다 하는 그 동물의 번쩍이는 눈, 무서운 분노, 괴로움에 찬 울부짖음, 앞발에 서린 끝없는 절망감, 미친 듯한 순환, 이 모든 것이 더없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휠더린의 시, 아이헨도르프의 가곡,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 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의 손을 보고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일 때, 사냥꾼의 총부리 앞에 죽어 가는 한 마리 사슴의 눈초리, 자스민의 향기. 이 향기는 항상 나에게, 창 앞에 한 그루 노목이 서있던 나의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공원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음악소리. 꿈같이 아름다운 여름밤, 누구인가 모래자갈을 밟고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한 가닥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게 하는데, 당신은 여전히 거의 열흘이 다 되도록, 우울한 병실에 누워있는 몸이 되었을 때. 달리는 기차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스름 황혼이 밤으로 접어드는데, 유령의 무리처럼 요란스럽게 지나가는 불 밝힌 차창에서 미소를 띤 어여쁜 여인의 모습이 보일 때, 화려하고 성대한 가면무도회에서 돌아왔을 때, 대의원 누구 씨의 강연집을 읽을 때. 부드러운 아침 공기가 가늘고 소리 없는 비를 희롱할 때. 공동묘지를 지날 때, 그리하여 문득 “ 여기 열다섯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 잠들다.”라는 묘비명을 읽을 때. 아, 그녀는 어린 시절 나의 단짝 친구였지.

 

많고 많은 날을 도회지의 집과 메마른 등걸만을 바라보며 흐르는 시냇물. 숱한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 수학 교과서.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의 편지가 오지 않을 때. 그녀는 병석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편지가 다른 사나이의 손에 들어가, 애정과 동경이 넘치는 사연이 웃음거리로 읽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마음이 돌처럼 굳어져 버린 것이 아닐까? 아니면 이런 봄밤, 그녀는 어느 다른 사나이와 산책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초행의 낯선 어는 시골 주막에서의 하룻밤. 시냇물 졸졸 흐르는 소리. 곁방문이 열리고 소곤거리는 음성과 함께 낡아빠진 헌 시계가 새벽 한시를 둔탁하게 치는 소리가 들릴 때, 그때 당신은 갑자기 애수를 느끼게 되리라.

 

날아가는 한 마리 해오라기. 추수가 끝난 후의 텅 빈 밭과 밭. 술에 취한 연인의 모습. 어린 시절 살았던 조그만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는 이 없고, 일찍이 뛰놀던 놀이터에는 거만한 붉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데다가, 당신이 살던 집에서는 낯선 이의 얼굴이 내다보고, 왕자처럼 경이롭던 아카시아 숲도 이미 베어 없어지고 말았을 때,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것이 어찌 이것뿐이랴? 오뉴월의 장례식 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 색과 검정색. 그리고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 징 소리. 바이올린의 G 현. 가을밭에서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깃. 자동차에 앉아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 가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때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보름달이 뜬 밤. 개 짖는 소리. 크누우트 함순의 두세 구절.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 철창 안으로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 - 이 모든 것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 이 수필에 등장하는 인물 해설

 휠데린 : 1770-1843. 독일 출신의 서정시인

 아이헨도르프 : 1788-1857. 독일 낭만파의 서정시인. 숲에서 얻은 영감으로 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음 

 크누우트 함순 : 1859-1952.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 방랑 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도주의적 작품을 남김. 1920년 노벨 문학상 수상함.

사족 : 더 자세히 알기를 원하는 분은 아래 주소를 방문해보기 보랍니다. 위에 소개한 수필에 관하여 아주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더군요.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iapowder2000&logNo=222061912691

이 글 속에 등장하는 사진은 동남부 유럽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에서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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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녀석을 묻어주었어.

 

 

시골집 산모퉁이 부근 비탈에 묻어주었던 거야.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