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8일 전국이 최고로 춥다던 그날, 아침에 집을 나서서 대구를 향해 갔습니다.
동대구 역에서 내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명덕역까지 가서 3호선으로 갈아탄 뒤 동천 역에서 내렸습니다.
외삼촌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던 것이죠. 나는 성장기에 외삼촌 한분과 친할마니를 본 기억밖에 없습니다. 워낙 친척이 귀한 집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조부, 고모, 삼촌, 사촌, 이모, 외조부, 외조모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으니 만날 수 없었던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가장 가까운 친척이 오촌 당숙이셨기에 한 분뿐이셨던 외삼촌과 외사촌들은 그만큼 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와 나이가 비슷했던 외사촌 한사람은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이 세상을 하직했었습니다. 젊디 젊은 제수씨가 어린 아들 둘을 부여안고 지금까지 잘 살아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지도를 보고 장례식장 위치를 확인해두었던 터라 장례식장까지는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강추위로 고통받는 것은 대구도 예외가 아니어서 개울이 꽝꽝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그런지 조그만 언덕을 걸어 오르는데도 숨이 차 왔습니다.
장례식장까지 다 왔습니다. 십오분 정도만 걸으면 되더군요.
빈소를 찾아가서 상주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마스크를 끼고 상주 얼굴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인 데다가 모두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으니 구별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오래 머무를 수 없어서 한 분뿐인 외사촌 형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곧 돌아 나왔습니다.
장례식장을 나온 뒤 다시 지하철 역을 향해 걸어갑니다.
바이러스 감염과 오염을 막기 위해 최대한 조심을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스스로 자가격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천역 대합실에 올라가서 전철을 기다립니다. 지상에 만들어진 모노레일을 따라 다니는 운송수단이니 지하철이라고 표현하기도 그렇고 전철이라고 보기도 조금 그렇습니다.
모노레일을 따라 달리는 열차가 들어옵니다.
시내에 들어와서는 오랜 만에 얼굴 보는 친구가 사주는 빵과 집에서 가져간 커피로, 그의 사무실에서 잠시 허기를 속였습니다. 추운 날이지만 사무실의 출입문을 활짝 열어두고 창문까지 열어둔 뒤 빵조각 조금과 커피 한모금 마실 때만 살짝 마스크를 내렸다가 올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작년 연말 들에 나갔다가 작은 새의 주검을 만났습니다. 마음이 아파 주검을 농로 한구석에 치워주었습니다. 땅이 얼어붙어서 묻을 수가 없었네요. 새 한 마리의 주검 때문에도 마음이 아픈데 하물며 외삼촌 별세 소식을 덜었으니 안 가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녀와서는 5일간은 집안에만 들어박혀 있었습니다. 스스로 자가격리를 실천한 셈이었네요.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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