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금모래 위로 맑은 물이 얕게 흐르고 낮은 야산이 슬슬 이어지는 이런 강변에 조용히 숨어 살고 싶었다. 남들 눈에 띄지않고 그냥 초야에 묻혀사는게 꿈이었다.
책을 가득 쌓아둔 기와집을 한채 가져보는 것도 평생 소원이었다.
잠시 가져보긴 했었다.
경주 경리단길로 유명한 황남동 안에 작은 기와집을 2년쯤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팔았다. 내 집 주변 사람들이 그리 선하지 않았다. 더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은 그럴만한 사연이 숨어있다.
나는 강변으로 내려갔다.
외나무다리를 건너기 위해서였다.
무섬마을에는 두군데에 외나무 다리가 있다.
외지에서 온 많은 관광객들은 마을 앞의 S자로 휘어진 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만족한다.
나는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사람들이 적게 모이는 곳을 건너보고 싶었다.
마을 끝머리, 곧게 이어진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어렸던 시절 겨울날, 내성천에 놀러가서 한번씩은 건너보았던 다리다.
건너편 강가 산기슭엔 진달래가 피어있었다. 그 모습이 보고 싶어서 봄날에 일부러 무섬마을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유년시절의 추억을 되새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한몫을 하기도 했다.
나는 마을로 들어갔다.
누구네 집이 어떻고 하는 그런것 보다 오늘은 그냥 아무 생각없이 단순하게 있는대로 대충대충 둘러보고 싶었다. 어렸던 시절, 불쏘시개로 쓸 솔잎을 그러모으기 위해 마을 뒷산을 자주 오르내렸었다.
기와집 자그마한 툇마루에 걸터앉아 책을 보는 재미를 누가 알랴?
툇마루에 걸터앉아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와 담소를 나누면 더욱 좋았다.
이제는 마을을 지켜주던 어른들조차 사라져가는 세상이 되었다.
눈에 익은 마당 빗자루...... 댑싸리로 만들었을 것이다.
노아의 대홍수 전설로 유명한 아라랏 산의 후면을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 부근의 꼬르비랍에서는 마주 볼 수 있다. 코르비랍 수도원 입구에서 댑싸리를 본 기억이 있다. 아르메니아 댑싸리를 보고 싶다면 아래 글상자 속 주소를 클릭하면 된다.
그렇게 흔하던 댑싸리조차도 이젠 시골에서 사라져간다.
나무가지로 만들었던 키작은 싸리울타리도 다 사라져가고......
열어둔 사립문을 지나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이름 하나는 절묘하다. <쉬었다가게>. 그런데 여기에서 일리(Illy) 커피를 판단다.
가게 이름은 주인 아들이 지었다고 한다.
나는 가게에서 쉬었다가기로 했다. 일리있는 결정이다.
일리커피 한잔 마시고 싶기도 했다.
일리커피! 이탈리아 브랜드로 알고 있다.
2015년 중국 동부 강소성에 있는 소주 부근의 주장이라는 전통마을을 찾아갔었다. 거기서 운하를 보며 일리 커피 한잔을 마셨더랬다.
오늘은 무섬에서 일리커피를 홀짝인다.
주인 아줌마가 커피를 내려오셨다.
나도 어찌보면 못말리는 속물 인간이다.
그런데도 한번씩은 고고한척 한다.
우습다. 어떨 땐 내가 혐오스럽기도 하다.
쉬었다가게 가게를 나왔다. 키낮은 나무 담장이 정겹다.
이제 마을을 둘러친 둑 위로 올라야한다. 오늘은 마을 안쪽으로 더 들어가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기와집과 초가가 만들어낸 풍경이 정겹기만 하다.
나는 둑에 섰다.
백사장을 살폈다. 흘러보낸 세월들이 아쉽기만 하다.
동네는 고즈넉함 속에 묻혀 있었지만 나혼자 즐기려고 했던 그런 정적도 이내 깨어지고 말았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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