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무섬을 가보고 싶었다.
9시 16분에 경주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 기차에 올랐다.
혼자서 가는 여행이다.
평창올림픽에서 컬링 신화를 섰던 갈릭시스터즈의 고향 의성을 그냥 지나쳤다.
안동역을 지나쳐 계속 북상했다.
안동댐 밑은 아직도 벚꽃이 한창이다. 4월 13일 금요일이었다.
기차는 영주댐 밑에 자리잡은 미림마을 부근을 지나가고 있었다.
내성천 상류의 줄기가 영주 서천과 합류하는 지점을 지나치고 있다. 그 많던 모래는 이제 다 사라져버렸다.
11시 50분이 넘어서 영주역에 도착했다.
내가 어렸을 때 기억하던 예전의 영주역은 까마득한 옛날일이 되었다.
한때 이 기차역을 두고 신영주역이라고 불렀던가?
나는 영주 시내버스 터미널을 향해 걷는다.
정류소 부근 김밥집에서 김밥 두줄을 샀다. 김밥집 아줌마는 일년에 딱 한두번씩만 찾아오는 나를 용케 기억해주신다.
오늘은 용혈마을로 가는 20번 버스를 타기로 했다. 12시 30분에 출발한다.
그동안 내가 애용했던 미림마을로 가는 버스는 12시 40분에 출발한다.
서천옆을 따라가는 도로에 가로수로 심은 벚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
20번 버스는 문수역이 있던 마을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문수역도 이제는 여객업무를 맡지 않는다.
버스는 산골마을을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나왔다. 나는 용혈 입구 부근의 정류장에서 내렸다.
서천과 내성천이 만나는 지점에는 깨끗하게 갈아놓은 밭이 있었다. 나는 이런 풍경을 사랑한다.
버드나무에 물이 올라 노릇노릇하게 변하고 있었다. 합류지점 부근의 그 많던 내성천 모래는 이제 다 사라진듯 하다.
그동안 끊임없이 긁어가고 퍼내갔다.
나는 무섬마을 뒤로 들어가는 기존의 도로를 놓아두고 강변으로 들어가는 다른 길을 택하기로 했다.
일반 관광객들은 무섬마을 앞에 걸린 시멘트 다리를 이용하는게 일반적이다. 납들고개 마을에는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 있었지만 이젠 이름조차 다 잊어버렸다.
위에서 언급했던 미림마을까지는 약 십리길이다.
무섬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내성천이 한바퀴 크게 감돌아나온 지점이다. 나는 이 부근에서 둑길을 따라 마을 뒤로 들어갈 생각이다.
멀리 학가산이 보인다. 어렸던 날, 내가 살던 집에서는 밤이면 학가산 정상의 라디오 중계탑에 반짝이던 불빛을 볼 수 있었다.
내성천은 무섬마을을 거의 한바퀴 감돌아흐른다.
이렇게 연두와 연한 초록이 지천으로 깔린 풍경을 보고 싶었던거다.
옛날 내성천에서는 강중간에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을 상상할수 없었다. 오직 모래와 모래톱과 얕고 맑은 물뿐이었다.
귀한 버드나무들이 잘려져 누워있었다. 왜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공사를 한다면 자세한 안내판이 있어야하는 법이고 그런 것 없이 함부로 베었다면 찾아서 처벌해야한다.
농사용 폐비닐이 강변에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기가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햇살에 반짝이던 아름다운 모래가 정말 많은 곳이었는데 다 사라지고 없었다. 몇년전에도 줄기차게 퍼내가더니 결과는 이런 황폐함 뿐이다.
물길이 감돌아나가는 맞은 편 산에 연두색으로 치장한 신록이 돋아나고 있었다. 나는 이런 풍경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 산하가 병들어가는 것같아서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하다. 나는 그동안 세계 여러 곳을 배낭메고 제법 돌아다녔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내성천 상류의 이런 그림같은 풍경은 지구 위 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었다.
가치를 모르면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 법이다.
금모래 은모래가 햇살에 반짝이고 버들가지까지 파릇하게 우거진 이런 풍경이라면 그 자체로 희귀한 관광자원이 된다.
내손에 디지털 카메라가 들어오고 나서부터 나는 일년에 한두번씩 내성천을 찾아와 어설프나마 그 변화해가는 모습을 찍어두었다.
십년전만 해도 환상적이었던 풍경이 그 사이에 너무 심하게 훼손되었다.
내성천 상류에 영주댐이 건설되면서 풍광이 크게 변해버린 것이다.
나는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며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작년가을에 떨어진 낙엽에 둘러싸인 곳집이 나타났다. 곳집은 물건을 보관하거나 쌓아두기 위해 만든 집을 의미한다.
시골마을에서는 장례식에 쓰는 상여같은 물건을 주로 보관하는데 밤에 곳집 옆을 지나가는 것은 머리칼이 쭈삣서는 무서운 일에 속했다.
그래서 전래동화같은 것을 보면 밤에 곳집에 혼자 들어가서 물건을 꺼내오는 놀이가 사나이의 담력을 시험해보는 시금석이 되기도 했다.
나는 마을 뒤편 야산 기슭에 앉아 시내에서 구해온 김밥을 꺼내 들었다.
김밥 두줄을 입안으로 우겨넣으며 마을을 살폈다.
방천둑에 우뚝 선 장승들이 마을에 접근하는 잡귀신의 출입을 막는 역할을 하는듯 하다. 예전에는 없던 것이다.
장승의 원래 역할은 사라진지 오래고 이젠 관광용으로 전락했다.
나는 솟대끝에 올라앉은 오리들의 환영을 받으며 둑길을 걸었다. 천천히.....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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