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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의 봄 3

by 깜쌤 2018. 5. 1.


고요함을 즐기고 싶었지만 그게 맘대로 되지 않았다.



몰려든 관광객들이 만들어낸 소음 때문이었다.



자전거를 탄 건장한 청년이 둑길을 달려나갔다.



나도 여기에서 그래봐야하는데..... 무섬마을을 이루는 집들 가운데 김뢰진 가옥이라고 있다. 김뢰진가옥이 바로 지훈 조동탁선생의 처가가 된다. 지금은 고추로 유명한 경북 영양을 고향으로 둔 조지훈선생의 처가가 이곳 무섬마을이라는 이야기다.



조지훈선생은 지조론을 쓸 정도로 선비정신이 몸에 밴 어른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시 별리(別離)를 떠올렸다.  





별리(別離)
        

         조지훈 


푸른 기와 이끼 낀 지붕 너머로 
나즉히 흰구름은 피었다 지고 
두리기둥 난간에 반만 숨은 색시의 
초록 저고리 당홍치마 자락에 
말 없는 슬픔이 쌓여 오느니―― 




십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 가고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 고운 뫼아리 




발 돋우고 눈 들어 아득한 연봉(連峰)을 바라보나 
이미 어진 선비의 그림자는 없어…… 
자주 고름에 소리 없이 맺히는 이슬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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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임이 가시고 가을이 오면 
원앙침(鴛鴦枕) 비인 자리를 무엇으로 가리울꼬 




꾀꼬리 노래하던 실버들 가지 
꺾어서 채찍 삼고 가옵신 님아……



아내와의 이별을 두고 아내 입장에서 쓴 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하다.  



우르르 몰려가던 관광객들은 무섬마을 이름을 두고 아는체 했다. 섬이 없는 마을이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싶지만 여긴 하회마을이나 회룡포마을처럼 낙동강 줄기가 마을을 휘감아나가는 곳이다.



마을 뒤로 산이 둘러쳐져있어서 여름에 큰물이 나거나 겨울에 폭설이라도 심하게 내리면 이곳은 섬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니 물섬으로 불렸다가 받침으로 붙어있던 ㄹ이 탈락하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무섬이 된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알기엔 그렇다. 오류가 있다면 용서하시기 바란다.




내가 어렸을때만해도 여름에는 걸핏하면 큰물이 났다. 비가 조금 많이 왔다싶으면 강물이 붉게 변하면서 노도처럼 물이 흘러내려갔는데 어른들은 그걸 두고 홍수가 났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홍수가 나면 강가에 살던 친구들은 학교에 오질 못했다. 심지어는 집에 가지못하는 일도 생겼다.



 5학년 때였던가? 비가 많이 왔던 여름 어느날, 갑자기 수업을 중단하고 선생님들이 모두 나서서 아이들을 동네별로 모으기 시작하셨다. 마을별로 전교생을 모아놓고 발밑을 특별히 조심하고 아울러 몸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뒤 떼를 지어 집으로 돌려보냈던 모습이 추억속에 아련하다. 그날 홍수가 났었다.



이런 마을 풍경이 평소에는 금모래 은모래가 가득해서 평화롭게 보이지만 자연의 위력앞에서는 고립되기 일쑤였다.



저 위에서 말을 꺼낸 김에 조지훈 선생의 시를 한편 더 읊조려보자.



제목은 사모(思慕)다. '나는 당신을 사모합니다'라고 할 때의 사모다.



 


사모


           조지훈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랑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웃임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만 잊어달라지만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 그어 
혼자라도 외롭지 않은 밤에 울어 보리라




울다가 지쳐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그리고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글 한편 속에 조지훈님의 시를 두개나 인용했다.



젊었던 날, 나는 그분이 쓴 <주도(酒道)18단>이라는 글을 보고는 무릎을 쳤다.



내가 좋아했던 시인의 처가가 무섬이었기에 감회가 컸다.



마을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 맞은편 샛길을 따라 걸었다.



멀리 학가산이 반듯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이 모습이 보고싶어서, 어쩌면 그리워서 찾아왔던 것이다.



나는 내성천 둑길을 천천히 걸었다.



내친 김에 영주까지 걸어가려는 것이다.



기차시간이 맞아진다면 꼭 그렇게 하고 싶었다.


 

옛 생각이 새록새록 마구 솟아올랐다. 마음이 아련해지기 시작했다.





70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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