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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자전거로 청송에서 경주까지 1

by 깜쌤 2016. 6. 8.

 

5월 30일 화요일 아침, 그동안 벼루어왔던 일을 이번에는 꼭 실천으로 옮겨야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약속장소로 갔다.

 

 

트럭에다가 자전거를 싣고 7번 국도를 달리다가 안강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물론 나는 운전석 옆자리, 그러니까 조수석에 앉았다.

 

 

경주시에서 포항시로 넘어가서 기계를 지났다. 죽장을 거쳐 마침내 청송군으로 들어갔다.

 

 

청송군을 가로질러 달리다가 안동시가 시작되는 바로 앞에서 트럭을 멈추었다. 흔쾌히 자전거를 실어주신 기사님께 진심으로 다시 한번 더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드리고 싶다. 항상 고도의 청결을 유지해야하는 특수차량인지라 자전거를 싣고 내릴 때마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서 라이딩을 하시라는 당부를 남기고 트럭은 마사터널을 향해 사라져갔다. 아침 8시 20분에 경주에서 출발하여 여기까지 오는데 약 1시간 30분이 걸렀다. 나는 8시 50분 경부터 자전거를 탔다.  

 

 

나는 청송군 덕계삼거리에서부터 라이딩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목표는 경주 시가지까지다. 

 

 

35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영천으로 이어지고 그런 뒤에는 쉽게 4번 국도를 만나 경주로 갈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기싫었다.

 

 

그렇게가면 경주까지는 80킬로미터밖에 안된다. 나는 일단 현서까지 가기로 했다. 거기서 방향을 틀어 의성군 금성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실제로 내가 라이딩을 한 구간을 나타내면 바로 위 지도처럼 된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확대된다.

 

 

삼거리에서 현서까지는 2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빤히 보이는 곳이니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현서라고 불리는 화목 동네는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 두 분과 끈이 닿는 곳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더 있었더라면 두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그렇게하지 못했다. 

 

 

권정생선생의 외사촌 누님이 되는 분의 증언에 의하면 화목에서 의성까지는 예전에 사람들이 걸어다녔다고 한다. 이오덕 선생과 <몽실 언니> 이야기로 유명한 권정생 선생의 이야기가 궁금한 분은 아래 글상자의 주소를 클릭해보기 바란다.    

 

 

 

화목이라고도 하는 현서면사무소 소재지에서 의성까지는 24킬로미터, 의성군 춘산면소재지까지는 12킬로미터였다. 

 

 

나는 의성, 사곡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조금가다가 춘산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로로 갈아탈 생각이었다. 오늘 내가 달려야할 거리가 만만찮았지만 구경할 것은 찾아봐가며 달릴 생각이었다.

 

 

춘산으로 방향을 바꾸어서 조금 달려가다가 순교자 테마공원이라는 푯말을 발견했다. 

 

 

그냥 지나쳐달리려다가 호기심이 생겨 들어가보기로 했다. 도로에서 약간만 들어가면 되었기에 크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작은 산봉우리 밑에 자리잡은 추모공간이 나타났다.

 

 

순교자 엄주선 강도사 테마공원이란다.

 

 

강도사는 전도사와 같은 말일 것이다. 그분의 사연이 자세하게 나타나있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홈페이지에 첨부된 자료를 소개해본다.

 

순교자 엄주선 강도사 소개

 

출 생: 1919523일 경북 의성군 다인면 봉정동 520

부친: 엄규영 영수의 차남으로 출생

신앙경력: 1935년에 예수그리스도를 영접 예천 상락교회 출석

 

일제 수탈로 부친과 만주 봉천(, 심양)으로 건너가 서탑교회에서 신앙생활 중 해방과 함께 귀국 194912월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43) 19505월 목사고시 합격 1951217일 새벽기도중 공산군에 붙잡히심 화목주민 신중건씨 등과 함께 춘산면 바랑골로 잡혀가심 신중건씨에게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입혀주므로 사랑을 실천하심(외투는 신중건씨가 살아서 돌아와 사모님께 전해주었고 그 신앙과 사랑을 증언해 줌) 인민군 10사단장 김두봉에게 복음을 전하며 신앙회유를 거절하심 공산군의 인민재판 앞에서 신앙을 지키시다 총검과 죽창에 19군데를 찔려 순교.

 

 

 

 

 

현장을 목격한 다른 사람들(동네 주민)의 증언

 

엄주선 강도사 순교 증언자

 

당시 현서면 구산동 소재 장정수, 현서면 소재 김원섭 권창규 김갑봉 제씨가 현장에서 엄주선 강도사님에게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하면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 주겠다고 하자 당시 인민 10사단장 김두봉에게 나는 결코 예수를 버릴 수 없으며 사단장도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지 말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자 화가 난 김두봉은 부하에게 칼을 가져오라고 호통을 처 칼을 가져다주니 다시 한 번 묻는데 그래도 예수를 믿겠느냐고 하자 엄강도사님은 예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셔야 합니다”. 라고 하니 김두봉은 화가 나서 칼로 귀를 베었다.(증언자 오광수(화목동 소재) 마을에 와서 이야기 한 것을 본인은 2 년 전 사망 현재 그 이야기를 들었던 김종태씨가 증언하고 있다.) 계속된 김두봉의 회유에 굴복하지 않자 창으로 상위 가슴부터 배까지 열아홉 차례를 찔러 끝내 강도사님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강도사님은 저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고 용서해 달라는 주님이 기도하신 것처럼 기도를 마치신 후 순교하셨다. 이후 시신은 함께 처형된 성명 미상의 한 사람과 옥정동 바랑골 소재 김씨 성을 가진 성명 미상의 사람과 함께 도랑에 버려져서 솔가지로 덮혀져 있는 것을 본 교회(화목) 박치환 장로, 양재관 장로, 엄규영 영수(부친)가 가서 확인한 후 당시 화목교회 박도선, 양원석, 김상정 집사 등이 가서 시신을 운구하여 경북노회장으로 장례를 치루고 현 테마공원 현서면 화목동 소재에 묘지를 만들어 매장하였다.

 

 

 

 

 

 

그런 순교자가 계신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았다.

 

 

625 전쟁 당시 경북 유일의 순교자가 엄주선 강도사였다고 한다.

 

 

엄주선 강도사 묘소 옆에는 양원석 장로와 이정옥권사 묘소가 함께 마련되어 있었다. 총회자료를 보면 양원석씨는 사건 당시 집사였는데 시신을 운구하여 온 것으로 되어 있다. 훗날 장로가 되어 본인이 섬기던 교회의 순교자였던 엄주선 강도사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하여 엄주선 강도사 옆에 묻혔다는 내용이 다른 자료에 나타나있었다. 

 

 

나는 묘소앞에 서서 아래를 굽어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고개를 넘어가면 춘산이다.

 

 

춘산면 바랑골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중에 저 고개를 넘어 달려보았더니 그쪽은 대단히 깊은 산골짜기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왼쪽을 바라보았다. 저 골짜기를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화목이다.

 

 

골짜기가 제법 풍요롭게 보였다.

 

 

테마공원 한쪽 옆에 자라는 나무마다 하얀 꽃을 달고 있었다.

 

 

청송에는 이 나무가 자주 보였다.

 

 

데이지 계열의 하얀색 꽃이 테마공원 한구석에 가득 피어있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간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도로로 나갔다.

 

 

이런 식으로 구경하다가는 언제 경주까지 가게될지 모르겠지만 가는데까지는 가볼 생각이었다.

 

 

의성은 작약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의성이다.

 

 

나는 서서히 속도를 올렸다.

 

 

기아가 먹히지 않는 자전거여서 기아없이 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정표를 보니 기가찼다. 금성까지 24킬로미터라면 이만큼 더 돌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금성은 탑리를 말한다.

 

 

언덕길이었기에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갔다. 화목과 춘산사이에 지도상으로는 커다란 고개가 존재했다.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오르막길이 나타날 것으로 여기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길가집 개는 나를 쳐다보기만하고 짖지도 않았다.

 

 

낮은 야산마다 과일나무들이 그득했다.

 

 

조용하고 깨끗한 곳이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의성군 춘산면이라는 말이겠다. 고개마루까지 거의 다 올라왔다.

 

 

새로 조성한 과수원이 산비탈 밭에 가득했다. 

 

 

 뻐꾸기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이제부터 내리막길이다. 지도상의 큰 고개는 어디에서 만날지 모르겠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