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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졸정원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1

by 깜쌤 2015. 7. 10.

 

살면서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한번씩은 내가 너무 무식하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졸정원같은 원림(園林)을 살펴볼때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건물의 유래를 전혀 모르거나 한자같은 것을 잘 읽어내지 못할때 특히 그런 느낌이 커집니다. 워낙  폭발적으로 지식이 늘어난 시대를 살아야하기에 최근들어 더더욱 그렇습니다. 

 

 

 졸정원! 여기가 바로 말로만 들어오던 졸정원의 입구 부근입니다. 매표소는 두군데가 있더군요. 정문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졸정원앞 도로 모퉁이에는 배들이 도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더군요. 배를 타고 접근해보는 것도 멋진 경험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무식한 나는 걸어갈 생각만 했지 실핏줄처럼 소주성내를 얽어맨 운하를 이용해서 배를 타고 가본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습니다.  

 

 

다리 부근에는 배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주에 발을 딛은 사람들은 모두들 한번씩은 꼭 졸정원을 보고가는듯한 분위기입니다. 

 

 

표를 산 뒤 옆으로 조금만 가보면 입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입장료는 70원이었습니다. 우리돈으로 계산하면 13,000원가량 됩니다. 도로에 바글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 입장한다면 하루 수입만 해도 어마어마 할것 같습니다.

 

 

졸정원 입구앞 도로는 돌로 깔끔하게 포장을 했습니다. 

 

 

소주박물관 옆에 있으므로 찾기가 너무 쉽습니다. 

 

 

기기묘묘한 모양을 자랑하는 태호석이 입구부근부터 즐비합니다.

 

 

크고 작은 문을 몇개나 지나야 본격적인 정원공간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만든 정원이 이렇다면 황실 궁궐은 어떻겠습니까?

 

 

나는 난설당 앞에 섰습니다.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면 분명히 어떤 유래가 있을 것입니다. 한학(漢學)에 밝은 분의 블로그를 방문하여 살펴보니 난설당이라는 이름은 이백의 시에서 따왔다고 하더군요.

 

 

난설당을 벗어나면 곧바로 작은 산을 만나게 됩니다. 정원의 규모가 얼마나 광대한지 모르지만 나는 이런 가산(假山)을 만나면서 벌써 압도당하고 맙니다.

 

 

옆으로 눈을 돌렸더니 역시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규모였기 때문입니다.  

 

 

연못과 정(), 누()와 대(), 당()과 헌()이 가득하다더니 빈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규모의 광대함에 질린 나는 별생각없이 걸어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런데서 졸정원에 관한 공부를 다 하려면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다 알다시피 졸정원은 명나라때 왕헌신이라는 사람이 중앙정치에 실망한 후 낙향하여 만든 정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사라는 벼슬을 지낸 것으로 보아 요즘 같으면 감사원이나 검찰청 정도에서 고위직으로 근무를 했던 사람이었겠지요. 서기 1509년의 일이라고 하니까 지금부터 500여년 전의 일입니다. 

 

 

개인이 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했기에 이런 정도의 정원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물론 처음의 모습은 현재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광대한 부지위에 터를 잡은뒤 집들을 배치하고 물길을 내고 돌을 배치하고 나무를 심으려면 엄청난 노력과 경비와 수고가 들어갔을 겁니다. 정원을 조성하는데만 16년이 걸렸다고 하니 대단한 공사였음에 틀림없습니다.

 

 

한눈에 봐도 졸정원에는 물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겨울이어서 그렇지 여름에 찍은 사진들을 보니까 곳곳에 연꽃이 가득하더군요.

 

 

사람들이 들어가기에 따라들어가보았습니다.

 

 

안에는 자수작품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한 작품을 실과 바늘로 수를 놓아서 완성시켰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눈이 피로하면 한번씩은 바깥경치를 살폈습니다.

 

 

중국인들의 재주는 어디까지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터져나오는 감탄사를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엄청난 정성과 노력없이는 그런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어렸을때 누님이 자수작품을 만드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과정속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판매대에서는 가벼운 자수작품도 팔고있는듯 했습니다.

 

 

작은 문 하나에도 이름을 붙여두었는데 그 이름 하나하나도 잘 살펴보면 의미가 깊은듯 합니다.

 

 

중국인들의 데코레이션 솜씨도 이제는 하류가 아닌듯 합니다.

 

 

또다른 곳에서는 졸정원과 관련있는 사진들을 전시해두었더군요.

 

 

졸정원을 다녀간 저명인사들과 경치를 찍은 사진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정치인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졸정원이 만들어고나서 오백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동안 주인이 많이 바뀌었다고 전해집니다. 왕헌신의 아들은 노름을 해서 아버지가 애써 만든 정원을 다른 사람에게 도박빚으로 넘기기도 했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을 거치면서 국가소유로 넘어간 모양인데 중국정부에서 거금을 들여 손을 보고 일반에게 공개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졸정원 안에는 우체국도 있습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그냥 구경을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우표도 팔고 있었습니다.

 

 

작은 그림도 있었고.....

 

 

자수예술관에는 또다른 자수품들을 전시해두기도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대로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보며 발길 닿는대로 걸었습니다.

 

 

이리저리 배치된 건물의 모퉁이를 돌다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산책로를 따라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나는 잔잔한 평화와 기쁨을 느껴보았습니다.

 

 

내가 무능력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런 정원이 내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됩니다. 

 

 

나혼자만이 이런 멋진 정원을 소유하고 산다면 너무 큰 죄악을 짓는 것 같아서 은근히 불안해집니다. 너무 큰 행복은 행복이 아니라는 말에 동의하는 편이죠. 

 

 

이왕이면 모든 사람들과 다 함께 보고 즐기며 나누는 쪽을 택할 것입니다.

 

 

나는 연못 중앙에 만들어둔 가산위 정자에 올라가보고 싶었습니다.

 

 

건물 속에 들어가서 창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는 즐거움이 정말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겨울에 졸정원을 보는 것이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신록이 피어날 때가 제일 좋지 않을까요?

 

 

겨울이지만 곳곳에 초록이 조금 남아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습니다.

 

 

놓치기 아까운 장면들이 많아서 앞으로 걸어나가기가 싫어질 정도였습니다.

 

 

아까 올라가보고 싶어했던 정자가 이제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정자에 오르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밀조밀하게 때로는 시원스럽게 배치된 건물과 물과 길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가슴을 울리는듯 합니다.

 

 

정자에는 나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미리 자리를 꿰어차고 앉아서 경치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