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건성의 대부분은 아열대성 기후를 보인다. 그러니 겨울에도 푸른 잎을 단 식물들이 무성하다. 제주도만해도 야자수 종류의 식물이 보일 정도인데 대만 맞은편에 자리잡은 복건성이니 오죽하랴?
앞 글에서 하문이라는 도시도 섬에 있고 고랑서도 섬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고랑서는 한자로 鼓浪屿로 쓴다. 앞에 있는 鼓(고)라는 글자는 북을 의미하고 浪은 물결이나 눈물같은 것을 의미하는 말이며 屿는 섬을 의미하는 말이니 뜻을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구랑위 정도로 소리를 낸다. 지도를 클릭하면 더 확실하게 자세히 볼 수 있다.
섬이름의 유래는 나중에 섬에 가보고 나서야 확실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닷가에 만들어놓은 아담한 녹지에는 시민들이 나와서 나름대로의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바닷가에는 바람이 부는 법이다. 바람이 부는 곳에 연날리는 사람이 모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중국 노인들도 외로운 모양이다. 노인들 옆에는 개들이 한마리씩 자리를 꿰어차고 있었다.
고랑서에는 붉은 지붕을 가진 집들이 빼곡했다. 누가 봐도 유럽적인 냄새가 풍겨온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 남쪽나라를 상징하는 부겐빌리아 붉은 꽃이 한겨울에도 가득 피어있었다.
이제 건너편 섬에 가려면 매표소를 찾아야 한다.
어떤 종류의 배가 건너다닐지 괜히 궁금해졌다.
고랑서와 하문시가 있는 하문도 사이의 바다는 물살이 센 모양이다. 지금은 밀물때이지만 썰물때는 제법 많이 물이 빠지는 것 같았다.
매표소를 찾아나섰다. 부두가 여기저기 많이 보였기 때문에 페리보트 부두를 정확하게 찍어내야했다.
강사장은 언제 이런 장면을 잡았는지 모르겠다. 눈도 밝다.
매표소라고 생각되는 곳을 찾아 들어갔는데..... 알고보니 장주로 가는 페리보트의 티켓을 파는 곳이었다.
매표소 앞 도로는 번잡하기 그지 없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드디어 찾았다. 하문륜도마두라고 씌여진 곳 맞은편이다. 하문은 도시 이름이고 륜도는 페리보트를 의미하는가 보다. 마두(码头)는 부두일테고.....
수표처가 보인다. 고랑서로 건너갔다오는 왕복 요금이 8원이다.
매표소 앞은 수많은 사람들로 메워져 있었다.
장주로 가는 사람, 금문도 부근으로 유람을 떠나는 사람, 고랑서로 건너가려는 사람들이 몰려 어수선하기도 했다.
버스 정류장 부근은 버스에서 쉴새없이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로 인해 상당히 붐볐다.
8원을 주면 초록색 플라스틱 코인같은 것을 준다. 배를 탈때는 개찰구에서 검표기에 대었다가 가면 된다.
이제 배를 타러 간다. 반대쪽 통로에는 섬에서 돌아나오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개찰을 한 뒤 바다위에 걸쳐놓은 잔교를 잠시 걸어야 한다.
페리보트는 이내 사람들로 가득찼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1원의 추가요금을 내어야 한다.
2층 입구에서 현금을 주면 종이티켓을 주기도하고 어떨 땐 승무원이 직접 받으러 오기도 한다.
2층에서 보는 하문도의 경치도 제법 참했다.
하문도와 고랑서 주위에는 작은 섬들과 육지가 감싸고 있다. 그 사이에 펼쳐진 바다 물길을 노강이라고 부른다. 바다를 강으로 부르다니.... 하기사 육지 속에 있는 커다란 호수를 바다로 부르기도 하는 사람들이 중국인들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노는 한자로 鷺라고 쓴다. 鷺는 해오라기 '로'자인데 백로같은 새를 의미할때 쓰는 한자다.
눈앞으로 섬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바다를 건너는데는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출발하자마자 도착한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하문도의 스카이라인이 아름다웠다.
우리는 천천히 내리기로 했다.
손님들이 빠져나가자 페리보트 안에는 적막감이 찾아들었다.
우리도 따라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져 내리듯이 배를 빠져나간다. 썰물빠지듯 한다. 그러길래 인파(人波)라는 말을 쓰는 모양이다.
우리는 저 건너편에서 건너온 것이다.
한번씩은 뒤돌아보는 여유를 가져야 하는게 여행의 기본요령이기도 하다. 앞만 보고 가버리면 두고온 멋진 경치를 놓치는 수가 많다.
우리 뒤에도 몇 사람이 따라내린듯 하다. 건너편이 하문이 있는 하문도이다.
고랑서는 구랑위 정도로 발음한다고 했다. 이 글에서는 고랑서라는 용어와 구랑위라는 말을 섞어 쓸 생각이다.
대륙에서는 드물게 보는 번자 글씨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고랑서!
많은 사람들은 내리자마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우리라고 어디 예외랴?
나같은 배낭여행자는 될수 있는 한 많은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 기억을 되살리는데 효과적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없던 시기에는 사진 한장 찍는 것도 신중해야만 했다.
부두를 나온 우리들은 섬 내륙부를 향해 걸었다. 구랑위는 그리 큰 섬이 아니다.
정말 작은 섬이지만 볼거리가 가득한 묘한 섬이다.
우리 앞을 턱 가로막은 건물은 유럽식 집이었다. 화풍빈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 옆에는 미국영사관터가 남아있다.
고랑서에는 관광용 전동차와 경찰차를 빼고는 자동차가 굴러다니지 못하게 되어있단다. 그 외 바퀴달린 것으로는 짐 운반용 손수레 정도가 굴러다닌다. 심지어 자전거조차도 금지되어 있을 정도다.
섬에는 옛날 유럽식 건물들이 수두룩하다. 황인종들만 빼면 유럽의 어느 작은 도시라고 해도 되겠다.
우리는 호텔을 찾아 돌아다녔다.
용산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커다란 동굴속에 들어갔다가 이내 돌아나오기도 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파놓은 것일까? 너무 궁금해서 중국 바이두에 접속해서 지식검색을 해보았더니 대만의 포격을 대비한 방공호용같다는 설명도 있었다. 대만이 점령하고 있는 금문도와 워낙 가까운 곳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굴안은 엄청 길고 제법 넓었으며 크기도 했다.
용산동을 돌아나온 우리들은 호텔을 구하기 위해 언덕으로 올라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와 같은 입장에 있는 관광객들도 많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관광객들이 제법 많았다.
슬슬 해가 넘어가는 것 같았기에 마음이 급해서 부두 인근 언덕에 있는 풍금박물관 부근에서 머물기로 했지만 여유가 있는 분들이라면 섬 깊숙이 안으로 더 들어가서 찾기 바란다. 섬 전체에 호텔과 여관은 널려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랑서의 물가는 엄청 비싸다. 살인적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하여튼 많이 비싸다. 그러므로 하문에 보금자리를 정해두고 고랑서는 슬슬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우리는 약간의 낭만을 맛보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지만......
그래서 이 여관 저 여관을 슬슬 둘러 보았다.
공통점은 비싸다는 것이었다.
어지간하면 300원을 불렀다.
집집마다 깨끗하긴 했다.
어떤 집에서는 개가 오후부터 늘어져 자기도 했다. 개팔자가 상팔자라더니....
이런 집은 전망 하나는 끝내준다.
이리저리 찾아다니던 우리들은 양산존부라는 집을 찾아들어갔다.
양산존부라.....
수호지에 등장하는 양산박과 관련이 있으려나?
3층짜리 옛날 건물이었는데 밖에서 보기에는 제법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하룻밤을 묵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들어가서 교섭을 해보았더니......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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