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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비오는날 슬쩍 들어가본 무섬마을 2

by 깜쌤 2013. 9. 1.

 

무섬마을이 좀 뜬다 싶으니 별별 잔치를 다 벌이는 모양이다. 백사장에는 그런 흔적들이 가득했다. 나는 반대편까지 가보았다가 다시 돌아왔다.

 

 

둑에서 바라본 마을은 언제봐도 조용하고 아담하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

 

 

기와집과 초가가 적당하게 섞여 균형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이 마을의 좋은 점은 사람이 살고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마을이라도 사람이 살지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런 마을은 전시용 껍데기에 불과하다.

 

 

마을 바로 앞을 감돌아 흐르는 강이 있다는 것은 더욱 더 멋진 일이다. 멀리 학가산이 보였다.

 

 

모래바닥에 막대기를 꽂아둔 것은 무슨 뜻일까? 내 작은 상상력으로는 얼핏 생각나는 놀이가 없었다. 어렸던 날, 내가 살았던 집에서 보면 학가산이 선명하게 보였었다. 밤에는 라디오 송수신탑에 반짝이던 불빛까지도 보였었는데..... 그때만 해도 하늘은 한없이 푸르고 높았으며 물은 더 없이 맑기만 했다.

 

 

나는 둑길에서 마을을 살폈다. 만장처럼 늘어뜨린 작은 게시판에는 무섬마을과 관계되는 시를 담아놓았다. 백일장을 했던 모양이다.

 

 

마을 앞을 두른 둑길 끝부분에는 무섬마을기념관이 있다. 거기는 한번 들어가본 곳이라 이번에는 가보지않았다.

 

 

대신 기념관과 지척에 있는 초가를 살펴보았다. 초가앞 빈터에는 코스모스들이 가득 자라고 있었다. 꽃이 피는 가을이면 대단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리라.

 

 

원래 우리 조상들은 초가마당에는 잔디를 깔지 않았다. 예전 우리 형편에 잔디가 깔린 집을 구경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고 귀한 일이었다.

 

 

잔디는 무덤 주위에 심는 것이지 일반 민가 마당에는 심는 법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당에 잔디가 깔린 초가집은 이색적인 느낌을 주었다. 툇마루가 정겨웠다.

 

 

초가(草家)라고 할때 가(家)자는  이미 집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초가집이라고 하면 이상한 말이 되어 버린다. 요즘은 그냥 모두들 초가집이라고 쓰긴 하지만 말이다. 주인장이 안계셨지만 시골집의 정취를 느껴보기 위해 잠시 툇마루에 슬쩍 앉아 주변 경관 구경을 하다가 일어섰다. 주인장께 죄송스러웠다.

 

 

인근에 있는 다른 초가를 들여다보았다. 옛날 우리들 마당은 이런 모습이 정상이었다. 비가오면 마당에는 작은 골이 파였다. 풀들은 아무렇게나 마구 자라났고 바닥은 미끄러웠다. 가을철 타작시기가 다가오면 마당에 나있는 풀도 새로 다 뽑고 반질반질하게 만들어 두었다. 그래야 타작일을 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널빤대기로 만든 부엌문! 이런 모습이 가난한 서민들의 집모습이었다. 방앞에 달아둔 툇마루는 겨울철에 해바라기하기에도 좋았다. 모들 모여앉아 윗옷을 벗어서 이를 잡기에도 좋았다. 어떨 때는 아이들 내복까지 벗겨서 이를 잡아주기도 했다. 머리나 옷에 붙어사는 말이다.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노릇이지만 사실이 그랬다.

 

 

마당 한쪽에 심어둔 대파는 싱싱하게 자라나건만 초가의 지붕은 내려낮고 있었다. 빨리 손을 봐야할텐데.....

 

 

이웃에 자리한 기와집은 손질이 잘 되어 있었다. 마당에는 백일홍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가장 멋진 한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열려진 정지문 사이로 할머니 한분이 점심을 하려는지 쌀을 안치고 계셨다. 그러더니 곧 안으로 들어가셨다. 마당 한켠에 가득한 백일홍이 왜 그리 소담스럽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안으로 들어가신 할머니는 이내 높은 툇마루로 나오셨다.

 

 

이집은 경복궁 중건때 활동하신 목수가 지은 집이란다. 할머니께서는 마루에 꽂힌듯 우뚝 서있는 기둥을 어루만지며 설명해주셨다.  

 

 

과연 명문 집안의 집답다. 서울에서 활약한 명성 자자한 대목이 내려와서 지은 집에 사시니 그럴만도 하다.

 

 

특이하게 툇마루 끝에서도 오를 수 있게 해둔 집이다. 돌계단이 높았다.

 

 

할머니께서는 열심히 마루를 닦고 계셨다. 우리는 작별인사를 드리고 다음 집으로 갔다.  

 

 

집안은 하나같이 정갈했다.

 

 

한눈에 봐도 정갈하다.

 

 

오헌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청이 있는 이집은 지난번에 왔을때도 세밀하게 살펴본 집이다.

 

 

멋과 예술을 아시는 분이 고아한 모습으로 사셨으리라. 대청에는 분합문이 높이 걸려있었다. 내리면 닫힌 공간이 되고 올리면 탁 트이게 만든 문이다. 한옥의 대표적인 아름다움과 기능을 보여주는 시설물이다. 

 

 

신발 벗어놓은 것 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렇다. 선비는 마음자세부터가 달랐다. 신발 벗어놓은것에도 표가 나게 되어 있다. 영주를 대표하는 낱말은 선비다. 선비정신! 참 멋진 말이 아니던가?

 

 

한옥의 멋가운데 하나는 툇마루다. 그게 없다면 한옥이 가진 멋이 반감되어 버린다.

 

 

 이런 분위기는 내가 추구하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아궁이가 단정하게 닫혀있었다. 주인장의 성품은 이 한가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양반의 법도를 지키기 위해 자결을 택한 양반집 새색씨의 사연이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외간남자의 손길이 자기몸에 닿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음을 선택한 새색씨의 사연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담위에는 박이 익어가고 있었다. 그랬다. 박이 이물지 말라고 박밑에는 짚을 말아서 깔아주었었다. 어떨땐 또아리를 만들어서 받쳐주기도 했다. 연한 박껍질을 손톱으로 할퀴기만 해도 상처가 났다. 그 정도로 껍질 연한 것이 박이다.

 

 

담장 밑에는 대파가 자라고 있었고 담장 위에는 나팔꽃이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서 한낮에는 시들어버리는게 나팔꽃의 운명이다.  

  

 

비에 젖은 골목길에는 고요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나는 이런 분위기가 좋다. 번잡하지 않은 가운데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단아함과 고요함! 우리는 마을 뒤에 자리잡은 전망대로 향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