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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봉성과 법전에서의 기억조차 앗겨버렸다

by 깜쌤 2013. 9. 4.

 

경북 영주에서 강원도 강릉으로 이어지는 철길이 영동선이다. 영주를 출발해서 봉화를 지나면 곧 이어 봉성역이 나타난다. 그 다음은 법전역이다. 봉성역이나 법전역이나 이제는 모두 간이역이 되었다. 간이역이 되어서 그런지 초록 철망이 둘러져 있었다.

 

 

간이역이 되었다는 말은 이젠 기차역에서 더는 여객업무를 취급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기차역을 이용하는 손님이 없으니 열차운전을 위해서만 기차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봉성역은 면소재로부터 약 1.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서있다. 예전에는 면소재지에서 역까지 가려면 약간 오르막으로 되어있는 길을 따라 걸어야했다.

 

 

나는 봉성역으로 들어가보았다.

 

 

역대합실에 안을 보니 역무원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역 플랫폼에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

 

 

선로보수를 담당하는 사무소 부근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영동선의 전찰화가 이루어지고나서부터는 전기시설만이 철로위에 이어져 있다.

 

 

역사에는 태극기와 코레일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옛날에는 기차역마다 근무하는 분들이 제법 많았다.

 

 

 

여기서 내 종조부가 근무를 하셨다.

 

 

나는 친척이 거의 없이 자랐다. 어렸을때 나는 할아버지와 고모, 이모,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삼촌을 못보고 자랐다. 삼촌이 없으니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나 숙모와 백모는 처음부터 없었고 사촌조차 없었다. 가장 가까운 친척이 작은 할아버지였던 셈이다.

 

 

참으로 오랫만에 봉성에서 작은 할아버지의 추억을 더듬는 중이다.

 

 

이젠 기억나는 것이 없다.

 

 

기차가 다가왔다가......

 

 

흔적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갔다. 마치 인생들처럼 말이다. 우리 서민들의 인생도 그렇다. 우리는 그냥 이 산하위를 거쳐간 하나의 존재라는 것 뿐이다.

 

 

나같은 무지렁이가 무슨 삶의 흔적을 대지에 남겨놓을 수 있을까? 무덤하나는 남겨놓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세월이 흐르면 헛것이 되는 법이다. 나는 역건물을 빠져나왔다.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는 역무원에게 거듭 확인하고 이웃 기차역인 법전을 향해 떠났다. 기차역앞에 나있는 길을 따라가면 된다. 작은 고개를 넘어간다.

 

 

법전역 바로 앞으로는 4차선 도로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만 혼란스러워지고 말았다.

 

 

초등학교 다닐때 법전역에는 서너번 와본 기억이 있다. 돌아가신 선친께서 여기에 한 일년쯤 근무를 하셨기 때문이다.

 

 

한때는 젊었던 엄마와 함께 동생들, 누나와 함께 아버지를 뵙기위해 찾아왔던 곳이다.

 

 

나는 도저히 예전 기억을 되살릴 수가 없었다.

 

 

도대체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망각이 이렇게 무서운 형벌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초등학교 때의 일인데 이렇게 기억의 맢뒤가 하얗게 막혀있을 줄이야.... 나는 이 부근 어디엔가 어쩌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흔적이나 체취를 찾아내고 싶었지만 도무지 찾아낼 재간이 없었다. 작은 기억 나부랭이조차도 떠올릴 수 없도록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는 사실이 더더욱 잔인한 슬픔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럴땐 빨리 떠나는게 상책이다. 가슴속으로만 빗물같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