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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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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3 중국-절강성:화려한 남방(完)

육유와 당완은 그렇게 살다가 스러져갔다

by 깜쌤 2013. 3. 16.

육유가 심원의 벽에 써놓은 시의 사연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번져나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당완도 이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당완도 시를 알고 문학을 아는 여자라 자기의 마음을 담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그 글의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사진 속에 나타난 글 마지막에 당완이라는 이름이 뚜렷합니다.

 

 

              釵頭鳳(차두봉)

                                  당완(唐婉)

  

世情薄,人情惡,雨送黃昏花易落。

세정박, 인정악,  우송황혼화이락

 세상도 야박하고 인정도 사나워서 황혼에 뿌린 빗방울 꽃잎을 떨어뜨렸지

 

曉風乾,淚痕殘。欲箋心事,獨語斜闌

효풍간, 루흔잔。  욕전심사, 독어사란

  밤새 흘린 눈물 흔적 새벽바람에 말리고 내 마음 호소하려 난간에 기대었지.

 

難!難!難!

난! 난! 난!

  어려워, 어려워, 너무 어려워

 

人成各,今非昨,病魂曾似秋千索

인성각, 금비작, 병혼장사추천색。 

  우리 헤어져 그 옛날은 멀어졌으나 그리워하는 이 마음 그네 줄처럼 오락가락

 

角聲寒,夜闌珊。怕人尋問(酷人尋問),咽淚妝歡。

각성한, 야란산。 박인심문(혹인심문), 인루장환

 수졸戍卒들의 호각소리에 밤은 깊어 가는데 내 마음 알려질까 눈물삼키네.

 

瞞!瞞!瞞!

만!   만!   만!

속였어, 속였어, 내 마음까지 속였단 말야 

 

 

중국 바이두에 가서 검색해본 결과 육유와 당완은 외사촌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육유와 당완의 사이가 단순히 사촌간이라는 식으로 써놓은 곳이 많은데 육유의 어머니가 당씨였던 것으로 보아 육유에게는 당완이 외사촌이 되고 당완의 입장에서는 고종사촌이 되는 것이 맞는듯 합니다.  

 

육유의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들의 입신양명에 외사촌과 결혼한 것이 흠이 될 것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신흥사대부 계급이 형성되던 시기였으니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는 것이 젊은이들의 목표였던바 자식의 앞날을 생각하여 어머니로서 독하게 행동한 것이었겠지만 두사람 사이에는 영원히 아물 수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말았던 것이죠.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습니다. 나중에 육유는 관리가 되어 금나라와 투쟁해는데 모든 정열을 바칩니다. 하지만 정작 당완은 이 우연한 만남 이후로 마음속 깊이 스며든 병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결국에는 시름시름 앓다가 젊은 나이에 죽어버렸습니다. 사건이 그렇게 전개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육유와 당완의 사연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심원은 더더욱 유명한 명소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육유도 늙어 그의 나이 예순여덟(68세)이 되었을때 다시 심원을 찾았습니다. 남자나이 70이 가까웠기에 온갖 세상살이 풍파에 시달려 무슨 깊은 감정의 골이 남아있겠습니까마는 육유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나도 살만큼 살아버려 감정이 조금 무디어졌다고는 하지만 시인 육유의 애달픈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습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육유였지만 그는 당완을 생각하며 시를 써서 남겼습니다.   

 

 

 

楓葉初丹槲葉黃

(풍엽초단곡엽황)     단풍잎 붉게 물 들고 떡갈잎 누르게 변하는데.

河陽愁鬢怯新霜

(하양수빈겁신상)     물에 잠긴 해를 보니 시름 속에 흰머리 한스럽구나

林亭感舊空回首

(임정감구공회수)    숲속 정자를 바라보며 지난 감회를 회상하니

泉路憑誰說斷腸

(천로빙수세단장)    저승에선 누굴 의지할까 애끓는 마음 달래 보네.

 

 

 

 

壤璧醉題塵漠漠

(양벽취제진막막)     토담 벽의 빛 바랜 글 먼지 쌓여 희미하고

 

斷云幽夢事茫茫

(단운유몽사망망)     헤아릴 수 없는 정 꿈속인양 아득 하네

 

年來妄念消除盡

(년래망념소제진)     이 몇 해 허망한 생각 모두 다 지워 버리고

 

回向薄龕一烓香

(회향박감일계향)    향로를 가지고 다시와 그 향 사르리라

 

 

 

 

 

육유가 75세 되었을때 그는 다시 심원에 들러 또다른 시를 남겼습니다. 참고로 남이 번역한 글을 가지고 와서 소개합니다. 어리바리하기 그지없는 제 실력으로는 바르게 번역할 능력도 없을 뿐더러 읽어나가기도 벅참을 고백합니다. 참고한 사이트의 주소가 많아 일일이 밝히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夢斷香銷四十年

(몽단향소사십년)    못 다한 꿈 향기 되어 사라진지 사십년

沈園柳老不飛棉

(심원류로불비면)   심원의 버들도 늙어 솜털도 날지 않네.

此身行作稽山土

(차신행작계산토)   이 몸이 죽어가서 회계산의 흙이 되어,   

猶弔遺蹤一泫然

(유적유종일현연)  오직 그대 남은 자취에 눈물만 흘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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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上斜陽畵角哀

(성상사양화각애)  성 위로 해 기울고 피리소리 애잔한데

沈園非復舊池臺

(심원비부구지대)  심씨 정원은 옛날의  누대가 아니로다 

傷心橋下春波綠

(상심교하춘파록)  다리 아래 푸른 봄 물 마음만 상하는데

曾是惊鸿照影来

(증시?홍조영래)  앞서 놀란 기러기 그림자 비추며 날아간다

 

 

심원 담벼락에 새겨잰 글귀 속에는 그런 애끓는 사연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그 현장에 와있습니다. 중국 바이두에서 검색을 해보니 두번째 시 마지막 행의 글자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가 반반쯤 되더군요.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채두봉 시 마지막에 써넣은 육유 자신의 이름이 뚜렷합니다. 나는 내가 살아온 일을 떠올려보았습니다. 나 역시 남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이어서 이 시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같이 간 일행이 눈치챌까봐 슬며시 돌아서기도 했고 먼저가서 시를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는게 다 그런 것인가 봅니다. 남에게 말 못할 사연을 가슴마다 끌어안고 살아가다가 조용히 묻고 떠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길인 듯 합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