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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3 중국-절강성:화려한 남방(完)

심원안에는 우국시인 육유의 흔적이 가득했다

by 깜쌤 2013. 3. 18.

 

심원 안에 작은 우물이 남아있었습니다. 물이 풍부한 곳이라 어딜 파도 우물이 되겠지만 옛날 우물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한 것 아니겠습니까?

 

 

돌뚜껑의 모습이 묘하기도 하거니와 안전을 생각한 것 같기도 합니다.

 

 

구경을 하러 온 아가씨가 스마트폰을 들고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중국에도 스마트폰의 열풍이 대단한가 봅니다.

 

 

우리는 남쪽 정원으로 향했습니다.

 

 

남원에는 시와 그림을 위주로 조성된듯 합니다. 육유와 관련한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남원으로 들어갑니다.

 

 

안에서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공연시설이었습니다. 누가봐도 어김없는 공연장의 모습이었습니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관중석이 보였습니다. 작은 돌항아리를 집중적으로 배치해서 앉아서 볼 수 있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원을 이용한 공연이라니.....  야간에 심원을 관람할 수 있는 표가 더 비싼 이유를 이제 알듯 합니다. 

 

 

중국인들의 공연기술은 단연 세계정상급인듯 합니다. 규모 자체도 대단하거니와 기술적인 면이나 예술적인 품격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못 건너편이 무대인듯 합니다.

 

 

우리는 더 안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저 앞에 보이는 문을 통해 들어가면 새로운 시설이 나타납니다.

 

 

춘수정이라.....   정원을 만드는 기술도 대단합니다. 곳곳에 필요한 정자를 만들고 기암괴석으로 동산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어떤 공연인지 보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육유와 당완의 사연을 가지고 공연하는 것이 아닐까요?

 

 

배우들의 출연통로인듯 합니다. 이 통로는 무대와 이어져 있었습니다.

 

 

건너편에 조명시설이 보였습니다.

 

 

우리는 춘수정 뒤에 있는 문을 통해 다음 공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육유를 기념하는 무관당이라는 건물이 다소곳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무관(務觀)은 육유의 자입니다. 그러니 건물 이름을 무관당으로 지었던가 봅니다. 그의 호는 방옹(放翁)이었습니다.  

 

 

그림속에 방옹선생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육유의 노년기 모습인듯 합니다.

 

 

심원의 모형도도 무관당안에 있더군요.

 

 

우리는 무관당을 나와 한쪽으로 비켜서서 걸었습니다.

 

 

벽면에 그의 시 작품들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원 안쪽 정원에는 철마빙하라는 이름이 붙은 동상이 보였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애국시인이었습니다. 육유가 남긴 시는 거의 이만여 편에 이른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약 9,200여수가 된다고 합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시를 쓴 최다작 시인이었던 셈입니다.

 

 

철마빙하라는 표현이 그의 시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송을 압박했던 금나라의 군대를 이루는 말을 그는 그런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철마상 앞에 놓여있는 안내판을 보면 늙은 말이 북쪽을 향해 부르짖는 모습을 묘사한 것인데 결국 육유의 애국심을 나타낸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도 쓰다듬어서 그랬을까요? 말등이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고 있었습니다.

 

 

고촌야우!  굳이 번역하자면 한적한 시골의 밤비 정도가 되겠습니다만 육유가 은퇴하여 시골생할을 즐겼던 사실을 나타낸 듯 합니다. 그는 편안하게 놀지 않고 일을 하는 틈틈이 약초를 재배하기도 하고 재배하거나 채집한 약초를가지고 백성들을 치료하기위한 약을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약포를 열어 직접 나가서 일을 했다고 하니 그의 인간됨됨이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던 것입니다. 육유의 수염과 손을 얼마나 만졌는지 광택이 나고 있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육유의 기념관에 해당하는 무관당입니다. 우리는 다시 다른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시와 그림을 모아놓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의 모습을 따라 조각상을 만들어두었더군요.

 

 

육유와 당완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묘사한듯 합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글자의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특히 한자의 예술성을 체득했다고나 할까요?

 

 

담장너머는 민가인 것 같습니다.

 

 

흰꽃을 피운 나무 가지를 잘보면 배배꼬여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석회암으로 보이는 돌표면에도 시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여기는 철저하게 육유의 흔적을 모은 곳입니다.

 

 

관광지가 이 정도는 되어야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토리텔링에 너무 취약한 것이 우리나라가 아닌가 싶습니다.  안풍당 건물 안에도 많은 글귀가 있습니다.

 

 

나는 모택동의 글씨를 보고 감탄을 했습니다.

 

 

문장 말미에 써있는 모택동이라는 이름 석자에도 힘이 넘칩니다.

 

 

산음육씨 족보에 올라있는 육유의 초상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이런 초상이 가장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우리는 남원을 돌아나왔습니다.

 

 

이제는 동원을 가볼 차례입니다.

 

 

하나하나 자근자근 훑어보는 것이 내가 가진 생활습관이기도 합니다.

 

 

원래 정원을 만들고 소유했던 심씨의 이름보다 육유와 당완의 이름이 더 오래동안 기억되어 전해져 오니 차라리 육원이라고 부르는게 나을듯 하지만 이 정원의 이름은 엄연히 심씨원인 것입니다. 줄여서 심원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심원 가운데서도 다시 동원에 들어간 것이죠.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