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보이는 건물은 대구제일교회 100주년 기념관이다.
기념관 옆에는 커다란 나무가 한그루 턱 버티고 서있다. 제법 늙은 나무라는 사실이 단번에 느껴진다.
현제명나무라고 이름이 붙여진 고목이다. 수종은 이팝나무다.
음악가 현제명씨는 소년시절에 대구제일교회에서 성가활동을 했었다고 한다. 그가 이 이팝나무 밑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하고 짐작하여 현제명나무로 부르고자 한다는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나는 본당 건물옆에 있는 주차장으로 나아갔다.
주차장 난간에 기대서면 시내가 환하게 내려다보인다.
구암서원이 예전에는 이 밑에 있었던 모양이다. 제법많은 기와집들이 보였다.
대구시내 한복판에서 기와집 동네를 만날 수 있다니 그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만든지 오래되어서 임시로 손을 본 집들도 제법 보였다.
언덕위에서 왼쪽을 보면 흔히들 에스엠(SM)이라고 부르는 성명여중과 신명고등학교 건물이 보였다. 예전 신명여고는 2004년부터 남녀공학으로 되면서 신명고등학교로 부른다.
내가 아는 한분도 저 학교를 다녔다. 학창시절에 한번씩은 <동무생각>이라는 한국 가곡을 불러보았을 것이다. <동무생각>이라는 곡이 어떤 책에는 사우(思友)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시를 쓰신 분은 노산 이은상선생이다.
동무생각
1.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더운 백사장에 밀려드는 저녁 조수 위에 흰 새 뛸 적에
소리없이 오는 눈발 사이로 밤의 장안에서 가등 빛날 때 |
노랫말은 이은상 선생이 지었어도 가사의 사연을 안고 사신 분은 작곡자이신 박태준 선생으로 알려져 있다. 박태준선생이 대구계성학교를 다닌 것이 1911년에서 1916년 사이인데 늘상 자기 짚앞을 지나다니던 하얀 피부를 지닌 신명여학교 학생을 짝사랑했다고 한다.
나중에 박태준선생이 마산창신학교 교사로 근무할때 알게 된 시인 이은상에게 실토를 했고 그 사연을 들은 이은상 선생이 노랫말을 만들어주어서 백태준 선생이 곡을 붙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 여학생이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아마 이 길을 지나 학교로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경북여고 교화가 백합인 것을 근거로 하여 박태준 선생이 짝사랑한 여학생이 경북여고학생이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동무생각>의 발표시기가 1922년인 것을 가지고 판단하건데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북여고는 1926년경에 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경북여고 홈페이지에도 1926년 3월 27일에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大邱公立女子高等普通學校)로 설립 인가를 받고 그해 4월 15일에 개교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박태준 선생이 짝사랑했던 여학생은 신명여학교를 다닌 것이 거의 확실한 것 같다.
일제강점기 중반에 해당되는 그 시기에 대구계성학교나 신명여학교를 다닌 분들이라면 당시로서는 굉장히 앞서갔던 분들이라고 여겨진다. 보통사람들은 학교 문앞에도 못가보았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제일교회 건물을 한바퀴 돌아가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선교사들이 살았던 붉은색 벽돌집이 몇채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제는 완전히 한물 갔지만 한때는 대구사과가 전국을 휩쓸었다. 사과를 대구 사람들은 능금이라고도 불렀는데 대구 능금이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선교사들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고 전한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하기로 하자.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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