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길을 건넜다. 올해 2월 마지막 날에 왔을때는 대구제일교회가 있는 청라언덕에 올라가보지를 못했다. 그게 아쉬웠었는데 오늘은 드디어 원을 풀게 되었다.
대구제일교회가 있는 이 부근을 청라언덕이라고 부른다. 청라(靑蘿)라는 말의 의미는 푸른담쟁이를 가리킨단다.
이 언덕 위에 세워진 선교사 거주용 주택들은 모두 붉은 벽돌을 사용해서 지었는데 그런 건물을 푸른 담쟁이가 덮고 있는데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미국 동부의 명문대학들이 담쟁이(=아이비)에 덮혀있는데서 아이비리그라는 말이 생기지 않았던가?
청라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연도를 새긴 화강암판들이 깔려있었다. 숫자의 마지막은 1919로 끝난다. 1919년이라면 3,1운동이 일어났던 해이니 의미를 쉽게 유추해볼 수 있겠다.
사진에 보이는 제일교회 옆 계단길은 대구 3.1 운동길이다. 대구 광역시에서 만들어낸 팜플렛에 의하면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청라언덕 노래비 옆에서 시내쪽으로 내려가는 90계단까지는 3.1운동당시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학생들이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서 도심으로 모이기 위해 통과했던 솔밭길이라고 한다."
"대구의 만세운동은 일제의 감시가 심해 3월 1일보다 늦은 1919년 3월 8일 큰장(현 섬유회관 건너편)에서 학생과 교회 지도자가 중심이 되어 일어났다."
"이 솔밭길은 배움을 실천하고 민족의 정기가 배어있는 곳으로 대구시는 2003년에 이곳을 '대구 3.1운동길'로 지정하고 3.운동 당시 모습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사진들을 발굴, 전시하여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그 솔밭길은 이제 다 사라지고 선교사들이 머물던 주택만 남아있다. 청라언덕에는 대구제일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나는 제일교회로 올라가는 작은 오솔길로 들어섰다. 길에는 낙엽들이 소복했다.
오솔길에서 걸음을 멈추고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면 계산성당의 첨탑이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앞으로 그냥 마구 걸어가기에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길이다. 그리 길지는 않은 길이지만 말이다.
좁은 오솔길을 다 오르면 옛날 교회터에서 옮겨지은 대구제일교회 건물이 여행객들을 맞아준다.
위치가 절묘하다는 느낌이 든다.
교회가 서있는 이 곳은 원래 동산(東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었다. 대구에는 유명한 병원이 몇개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이다. 동산병원이라고만 하면 대구 경북사람들은 거의 다 계명대학교병원을 떠 올린다.
동산은 원래 달성서씨 문중이 소유하고 있던 산이었는데 대구제일교회를 설립한 아담스 선교사와 동산병원을 설립한 존슨선교사가 서씨문중으로부터1899년에 매입을 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달성공원으로 알려진 달성토성을 중심으로 보았을때 동쪽에 있다하여 동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나는 제일교회 본당건물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청년들이 모임을 하고 있었다.
예배당 건물을 나온 나는 부근의 시설물을 둘러보았다.
하늘이 푸르렀다. 구름이 지나가면서 무궁무진한 빛의 조화를 만들어내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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