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하다. 정소아과의원 건물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이층집이지만 대구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이층 양옥집이기에 그 역사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진골목안에는 구수한 맛을 풍기는 음식점들이 제법 듬성듬성 자리를 잡았다.
그런 음식점들은 꼰대만 드나드는 곳이 아니다. 늙다리 보수꼴통들의 집합소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나는 천천히 골목을 걸었다. 여기저기 살펴가며 세밀하게 보는 것이다.
안내판을 보며 내가 어디쯤에 서있는지 위치를 파악했다.
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진 사회저명인사들의 자택들이 제법 보였다.
김원일씨가 쓴 소설 <마당깊은 집>의 실제무대가 되었던 집도 이 부근에 있는 모양이다.
백록이라..... 흰사슴이라는 말이니 낱말부터가 아주 고상하다.
사슴이라고 하니 노천명시인이 생각났다. 노천명씨도 친일파 인명사전에 올라간 모양이다. 어지간하면 친일파로 몰아버리는 후학(後學)들 내지는 젊은이들의 기개가 가상키는 하지만 섣불리 그리 쉽게 단정하고 판정하고 재단할 일은 아니다.
625를 견더낸 지붕 뒤쪽으로 하늘을 뚫고 치솟은 현대식 건물이 위용을 자랑하는듯 했다. 전쟁후의 그 처절했던 배고픔과 생이별의 아픔과 파괴의 흔적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은 김원일씨의 <마당깊은 집>같은 작품을 어찌 쉽게 이해할 수 있으랴?
안마당에는 소설가의 유년시절이 고스란히 흔적을 남기고 있는듯 했다. 그래도 자료를 손에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젊은이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100년도 더 전인 1907년 2월 21일, 나라빚을 갚기 위해 여성들이 돈을 모은 운동도 이 부근에서 시작된 일이라고 전해진다. 외환위기를 맞아 나라의 살림살이가 휘청거렸을때 제일 먼저 일어나 금모으기 운동을 벌였던 사람들도 여기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진골목을 벗어나면 작은 차도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차도를 건넌 뒤 골목을 따라 계속 걸었다.
깔끔하게 포장된 도로가 산뜻하기만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골목이라는 말 속에는 참 정겨운 의미가 숨어들어있다. 골목식당, 골목대장, 골목길..... 진골목식당은 막다른 골목에 있는 것 같다.
노란 은행잎이 가을의 햇살을 뚫고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한방백숙집 못미쳐 작은 쉼터가 있었다.
황금색 고운 털을 가진 고양이 한마리가 돌의자 틈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을 위한 포토존인가보다.
할머니 한분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고 계셨다.
나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떨어져내린 은행잎을 밟고 가만히 서있었다.
은행잎을 보며 낭만을 찾는 나같은 사람은 돈벌이에는 그저 꽝이다. 누구는 이 은행잎을 보면 혈압강하제 생각부터 한다던데..... 가만히 따지고 보니 돈버는 사람들은 사물을 보는 시각자체가 남다른 것 같았다.
내가 자리를 비워준 쉼터에는 젊은이들이 찾아와 걸터앉았다. 그래, 정말 좋은 일이다.
이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엄마"하고 부르면 젊었던 날의 어머니가 반갑게 뛰어나오실 것만 같다.
골목속에는 정감넘치는 집들이 제법 많았다.
나는 골목에서 전당포를 찾아냈다. 이게 얼마만인가?
전당포는 한때 서민들의 급전(急錢)을 공급해주던 서민은행역할을 했다. 이젠 역사속으로 사라져가는 낡은 유물이 되어간다.
진골목 끝자락에는 현대화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약전골목으로 들어섰다.
길거리 전체에 한약냄새가 배여있는듯 했다.
가게 앞에는 쌓아둔 한약재들이 보였다.
치자열매일까?
이제는 약전골목의 명성이 많이 쇠퇴했다고는 해도 아직도 많은 수의 한약재료상들이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삶의 터전을 가꾸어가는 중이다.
별별 재료들이 다 보였다.
우리는 계산성당과 대구제일교회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여기가 대구 중심가라고 하지만 군데군데 제법 많은 빈터가 보였다.
화강암 기둥위에 올려놓은 한약탕기가 만들어내는 실루엣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몸이 아프셨던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께서는 덜마른 장작이 뿜어내는 매운 연기를 마셔가며 한약을 달이셨다. 나도 한번씩은 부채질을 했었고....... 그랬던 어머니도 이젠 머리가 하얗게 다 세셨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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