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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벌판을 두바퀴로 달렸다 1

by 깜쌤 2012. 10. 13.

집안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기에는 날이 너무 좋았다. 나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 동안 질기게 벼루어왔으면서도 가보지 않은 그곳에 대한 불만때문이었을까? 오늘은 기어이 거기를 자전거로 한번 돌아보고와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경주 남천 옆을 따라간다. 가울 기운이 진하게 느껴졌다. 억새가 꽃대를 엄청 밀어내올렸다. 다음 주일경이면 필지도 모르겠다.

 

 

 

 

오늘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한 모퉁이다. 경주에서 출발하여 봉계까지 간 뒤 골짜기로 들어가서 외와마을을 거친 뒤 박달로 넘어와서 다시 경주시내로 돌아오는 길을 달려보고 싶었다. 자전거 라이딩하기에는 그저 그만인 곳이다. 지도를 눌러보면 큰 화면이 떠오를 것이다.

 

 

삼릉을 거쳐 용장을 지났다. 용장에서는 경주 남산에서 가장 깊고 아름다운 용장골로 올라갈 수 있다. 제자가 운영하는 수석가게에 들러 달달한 인스턴트 커피 한잔을 얻어마셨다. 신라문화제를 앞두고 그는 작품제작에 정성을 쏟아붓고 있었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틈수골을 지나면 내남삼거리가 된다. 나는 내남삼거리를 지나서 계속 달렸다. 내남농공단지 옆을 지나면 폐교가 하나 나온다. 옛날의 노월초등학교자리인데 이제는 한의원을 겸한 노인 수용시설로 변해있었다.

 

 

이렇게라도 재활용되는 폐교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한다. 나는 잠시 운동장에 들어가보았다. 아이들이 뛰어놀았던 운동장의 반은 깨밭으로 변해있었다. 묵밭으로 변하지 않은것이 그나마 고마웠다.

 

 

아주머니 한분이 깻잎을 따고 있었다. 서양인들은 들깻잎을 날것으로 먹는 것을 그렇게 힘들어한다던데...... 봉계까지 가려면 일부 구간은 4차선 도로의 갓길을 달려야한다. 위험하다는 말이다. 위험구간을 벗어난 나는 2차선 도로를 통해 봉계로 들어섰다.

 

 

봉계는 소불고기단지로 유명한 곳이다. 봉계가 그냥 유명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소고기를 적쇠에 얹어서 숯불에 살짝 익힌뒤 참기름 소금장에 찍어먹는 맛은 일품이다. 봉계불고기는 소고기에 왕소금을 뿌려서 구워먹는 식이다. 양념구이를 위주로 하는 언양식과는 그런 면에서 다르다.   

 

  

작은 마을이지만 불고기집이 도로를 따라 수두룩하다. 경상도식으로 말하자면 불고기집이 '천지삐까리요 하앙거석'(많다는 뜻의 말이다)이다. 그 한모퉁이에 1960년대식 시골집이 끼어있었다.

 

 

집앞에는 거적을 깔고 빨간 고추를 말리고 있었고 할머니 한분이 지팡이 대용의 유모차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도로 한쪽에는 과꽃이 마지막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과꽃! 꽃잎을 만지면 빠닥종이처럼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나는 예쁜 꽃이다.

 

 

과꽃이라는 노래도 있다. 물론 동요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노래를 다 잊어버린듯 하다.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노래 자체를 모른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나는 동요를 흥얼거리며 마을을 벗어났다. 이제는 시골도로를 달린다. 무엇보다 한적해서 좋다.

 

 

고속도로를 지나 골짜기 안으로 조금만 접어들면 폐교가 나온다. 두서초등학교 두북분교다. 분교가 되기 전에는 어엿한 본교였으리라. 그러다가 분교가 되고 결국에는 폐교가 된 것이다.

 

 

굳게 닫힌 녹슨 철대문에는 경고판이 붙어있었다.

 

 

나는 폐교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이런 아름다운 시골에서 자라난뒤 도시로 가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 좋으련만 그런 낭만은 이제 꿈속에서나 찾아야 할 일이 되고 말았다. 요즘 아이들의 심성이 거칠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교육정책과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을 통한 인구분산정책과 사회구조의 합리적인 조직에서 실패한 결과물이다.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도시로 몰려간 것은 산업화과정에서 발생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식으로 정치가들이나 관료들은 변명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꼭 맞는 말은 아니다. 도시는 극도로 비대해져 온갖 문제가 발생하는 한편으로 시골에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다.

 

 

나는 폐교앞을 떠나 골짜기를 향해 달렸다. 가을 햇살이 제법 따가웠다.

 

 

진한 분홍색 코스모스가 무리를 지어 피어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던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카메라를 들이댔다. 이런 코스모스도 이젠 보기가 쉽지 않다.

 

 

논벌을 가로지른 고속열차길 위로 기차가 무서운 속도로 내지르고 있었다. 우린 뭐가 그리도 급해서 빠름만을 추구하고 사는 것일까? 느림의 미학과 천천히 살아가는 즐거움은 어디다 팽개치고 이리도 허둥대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논벌 끝머리에 자리잡은 동네 뒷산위로 하얀 구름송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문득 앞을 보았더니 하얀 종탑 끝머리에 십자가를 올린 교회가 마을 한복판에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추수를 앞둔 벌판은 노랗게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서늘한 느낌이 묻어있는 가을바람이 살짝 이마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땀을 훔쳤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