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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영상수필과 시 1 Photo Essay & Poem

봄이 그리운 가을날에

by 깜쌤 2012. 10. 9.

봄날이 아름답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청춘이 화려하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던가? 반월성터 옆 계림에 신록이 움터오르던 날이 어제같은데 벌써 가을이 무르익었다.

 

 

세월의 흐름이 이렇게 빠를 줄을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당연히 몰랐다. 그때는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서 연애도 마음껏 해보고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셔보고 싶었다.

 

 

결국 젊었던 날에는 술독에 빠져 살았다. 술을 깨끗이 끊은 날이 제법 오래되어서 이제는 술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한번 인이 박혀버린 술맛에 대한 추억은 쉽게 되살려낼 수 있다.

 

 

텁텁한 막걸리맛에 반해 막걸리를 찾아다닌 날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마시지 않는 술이지만 술냄새도 깔끔한 것을 좋아한다.

 

 

단내가 나는 화주(火酒)도 싫고 독한 소주냄새도 싫다. 이제는 단정함과 정갈한 냄새에 더 마음이 끌린다. 달달함도 싫고 시큼함도 싫다. 색깔로 치자면 연두색같은 그런 내음이 좋다. 난초향같은 냄새가 곱게 피어오르는 그런 맛이나 냄새라면 좋겠다.

 

 

이제는 물색깔도 탁한 것은 정말 싫어졌다. 하얀색이 바닥에 깔린 밝은 옥색이 좋고 가을하늘처럼 푸른 색이 좋다. 잡티하나 들어있지 않은 절묘한 연한 파랑을 원한다는 것이 맞는 말이지 싶다.

 

 

파아란 하늘에 뜬 하얀 구름 한조각을 쳐다보는 것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희디흰 산호모래가 깔린 열대지방의 옥색 바닷물이 그리워지는 가을날 아침이다.

 

 

폭포처럼 마구 쏟아지는 물은 별로다. 급하게 굽이치며 사납게 흘러가는 물보다가 고요하게 맴돌며 흘러가는 물이 좋다. 퐁퐁퐁 솟아오르는 옹달샘이라면 더없이 만족한다.

 

 

고관대작이 되어 거만을 떨어가며 거드름을 피우는 것도 싫어졌다. 내가 올라보지 못한 자리에 대한 자기변명이 아니다. 

 

 

인간은 그 도모하던 일들이 아무리 많고 거창했을지라도 숨이 끊어지는 순간부터 멈추어지기 마련이다. 내가 꿈꾸었던 일을 남이 이어받아 이루어주리라고 믿는다면 인간살이를 너무 모르는 일이 된다.

 

 

물론 예외도 있긴 있다. 드물긴 하지만 있기는 있다. 하지만 보통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런 일이 정말 드물다.

 

 

지난 봄날, 나는 내물왕릉 부근에 서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벌써 가을이다.

 

 

내가 이루고 싶었던 꿈은 그리 큰게 아니었다. 평생토록 책을 보고 글을 쓰고 강의하며 살고 싶었는데 그 작은 꿈조차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자질과 노력이 부족했었기 때문이다. 타고난 자질에 비해 꿈이 컸을 수도 있다.

 

 

그 꿈이 그리 거창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재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꽃들이 지천으로 깔렸던 곳에도 이젠 철이른 낙엽이 떨어지고 있으리라. 그렇다. 지금은 가을인 것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