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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벌판을 두바퀴로 달렸다 2

by 깜쌤 2012. 10. 14.

 

황금벌판이라는 진부한 표현외에 달리 또 어떻게 추수를 앞둔 논벌을 표현할 수 있으랴? 나는 젊었던 날 2년간 농사를 지어보았다. 전문적인 농사꾼은 아니었지만 모내기도 하고 추수도 해보았다. 유월 땡볕에 리어카에다가 보릿단을 가득싣고 옮겨와서 타작을 하기도 했고 모내기와 가을걷이는 기본으로 했다. 고된 노동일의 댓가를 나름대로 맛을 본 것이다. 그러길래 가을 벌판을 지긋이 바라보는 감회가 남다르다.  

 

 

개울을 둘러싼 산머리에 하얀 솜털같은 구름이 동동 떠오르고 있었다.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의 심정을 일반인들은 알기 어렵다. 한해동안 죽도록 고생했는데 밤에 몰래와서 남이 애써 농사지어놓은 귀한 작물을 훔쳐가는 도둑들이 있다. 피땀 흘려가며 지은 농산물을 도둑맞은 농부의 마음은 처절할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서는 교회에도 농산물 도둑같은 영혼 낚시꾼들이 설쳐댄다. 시골교회에는 그런 피해가 없기를 빈다. 

 

 

몇년전에는 내 친구 어른의 인삼밭에 도둑이 들어 6년동안 기른 인삼을 모조리 도둑맞기도 했다. 훔쳐간 자들은 살인범이나 마찬가지다. 농부들은 농작물을 자식처럼 아끼기 때문이다.   

 

 

농사꾼은 가을들판을 황금보다 귀한 것으로 여긴다. 수확물의 소중함이 그리도 가치있는 것이지만 도시에 사는 일부 철부지들은 음식물을 마구 내다버리기도 하고, 이익추구에만 눈이 먼 장사치들은 농부들의 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농작물 가격을 마구 후려치기도 한다.

 

 

도로변 시골집 마당에서 닭벼슬만큼이나 붉은 맨드라미를 만났다. 역광으로 햇살을 맞는 닭벼슬을 보면 영락없는 맨드라미다. 

 

 

길은 서서히 오르막으로 변했다. 요즘 농촌마을들은 깔끔하다. 마을앞에 연밭이 보였다. 여름에 왔더라면 멋진 연꽃을 볼뻔했겠다.

 

 

갈림길에서 나는 잠시 망설였다. 어느쪽으로 가야 경주쪽으로 가는 길이 되는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 주효했다.

 

 

골짜기 끝머리에서 초등학교를 만났다. 역시 폐교였다.

 

 

교문은 닫혀있었지만 울타리 한쪽 옆이 개구멍처럼 뚫려있었다.

 

 

역시  분교였다.

 

 

분위기로 보아 폐교된지가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 운동장엔 풀이 가득했다. 잔디가 이렇게 곱게 자라도 시원치가 않을텐데......

 

 

교문옆 감나무에는 잘익은 감이 떨어져 홍시로 변해있었다.

 

 

내가 어렸을땐 퍼런 땡감도 주워서 물에 담궈서 푹 삭힌 뒤에 먹었다. 그날이 어제 같은데......

 

 

나는 학교를 나왔다. 폐교된 학교를 쳐다보고 있으면 마음만 쓰리다. 너무 배가 고팠던 시절, 토란 뿌리를 삶아먹은 날은 가슴조차 아렸다. 그런 아림이 떠올라 마음조차 아리아리해지면서 급기야는 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경주쪽으로 방향을 틀어 언덕길을 올랐다. 숨이 가쁘다.

 

 

멀리 산골짜기 동네로 가는 도로가 산을 굽이쳐 감아돌고 있었다.

 

 

내 발걸음에 놀란 메뚜기들이 논둑에서 마구 날아올랐다.

 

 

여기가 형산강 발원지 부근인가 보다. 이 물이 흐르고 흘러 봉계와 내남을 거쳐 경주시가지를 지난뒤 안강을 거쳐 포항으로 들어가는가 보다.

 

 

이 산 어느 계곡의 물줄기가 형산강을 이루는 시작임에 틀림없다.

 

 

멀리 돌아간 산굽잇길마다 그리움이 녹아들어있는듯 하다. 산모롱이에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이들의 오래전 헤어짐으로 인한 아쉬움이 가득한 것 같다. 갑자기 멀리 시집간 누이가 생각났다. 그리 잘 살지도 못하는 누이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고개를 넘으면 경상북도가 된다. 나는 허우적거리며 고개를 넘었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은 내남까지 이어진다. 거의 한시간을 계속해서 달렸다.

 

 

내남부근에서 칼국수집을 찾아갔다. 주인 아주머니는 나를 알아보시고는 정이 담뿍담긴 미소를 지으셨다.

 

 

그집 음식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어떤 집인지 궁금한 사람만 아래 주소를 눌러보면 된다.

 

                                   http://blog.daum.net/yessir/15865987

 

 

점심을 먹은 나는 경주시내를 향해 달렸다. 도로가에 떼지어 핀 코스모스 한무리가 가볍게 한들거리고 있었다.

 

 

서늘한 기운을 담은 가을바람이 뺨을 스치듯이 지나갔다.

 

 

바람이 스쳐지날때마다 억새가 가볍게 누웠다가 다시 제 몸을 부추기며 슬며시 일어서곤 했다. 

 

 

하얀 코스모스가 가득 핀 도로를 자전거로 달릴 수 있었던 날들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