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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감포에는 환상적인 깍지길이 있다 5 - 해국길

by 깜쌤 2012. 8. 13.

옛우물이 보였다. 이제는 감포 인근에 댐이 생겨 깨끗한 수도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전에는 이런 우물들이 중요한 식수원이었다.

 

 

솟대 뒤로 보이는 작은 나무 구조물이 우물 지붕이다.

 

 

솟대주위에는 반들반들한 바닷돌들이 소복이 무리지어 쌓여있었다.

 

 

돌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아이들이 없어서 그런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솟대도 그렇고.....

 

 

우물 천장에는 도르레가 달려있다. 거기에 대형 나무 두레박과 나일론 끈달린 검은 플라스틱 두레박이 달려있었다.  

 

 

물이 엄청 차다. 나는 손을 씼었다. 이때 카메라 렌즈에 물방울이 묻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 속에 흐릿한 점이 하나씩 생기고 말았다. 아래에 있는 사진들은 그런 식이다.

 

 

'옛골식당'이라는 이름이 붙은 일본식 2층 건물에는 다물은집이라는 글이 회벽에 쓰여져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일까? 깍지길을 소개해둔 책을 보면 늘 배를 곯기만 했던 조선아이에게 도시락을 제공해준 일본인 여선생의 이야기가 나오던데......

 

 

창틀에는 남이 알리도 없는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매달려있는듯 했다. 세월이 가면 모든게 다 잊혀지는 법이다. 아름다운 사연이든 슬픈 사연이든 웃기는 이야기든 모든게 다 삭아가다가 종내에는 사그라지고 마는 것이다.

 

 

함석으로 덧댄 2층 창문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다. 누가 살고 있는 걸까?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나그네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사랑 이야기만큼 사람 가슴을 울리는게 또 있으랴?

 

 

모두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길, 그게 인생길이다.

 

 

골목끝에는 한 사내가 앉아서 담배연기를 허공으로 날려보내고 있었다.

 

 

이리저리 얽힌 전기줄이 아련한 추억을 감아도는 길, 거기가 해국길이다.

 

 

골목 한구석에는 이제는 사용하지도 못할 것 같은 리어카가 녹이 슨채 그대로 삭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이 리어카가 한때는 그 어느 누구에게 밥을 먹게 해준 소중한 살림밑천이었으리라.

 

 

낮춤한 골목집엔 공부방도 있었다. 시골 아이의 미래가 여기에서 영글어가고 있을것만 같아 나는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학원이라는 곳에는 한발걸음조차 들여놓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심지어는 운전학원에도 안갔다.

 

 

배움을 게을리한 댓가때문에 차도 없이 맨날 걸어다니는 처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것을 스스로 익혔다. 영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글쓰기든.....

 

 

골목길에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묻어나야만 정상이지만 이젠 감포같은 소읍에서조차 아이들 목소리 듣기가 그리도 어렵다.

 

 

그냥 후딱 앞으로 나아가기가 너무 아쉬워서 한번씩은 지나온 길을 확인도 할겸 뒤를 돌아다 보았다.

고개를 돌려 다시 앞을 보았더니 오른쪽으로 육즁한 자태를 지닌 담벼락이 다가왔다. 아무리봐도 생김새가 다르다.

 

 

이건 누가봐도 요새다. 요새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이런 식으로 건물을 지으랴?

 

 

벽 저 위쪽으로 열려진 창문속을 똑딱이 카메라의 줌기능을 이용하여 당겨 찍어보았더니 천장이 둥글게 보였다. 그렇다. 여긴 방공호였던 것이다. 왜인들이 만든 방공호를 겸한 주택이었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아픈 상처가 아직도 이런 식으로 남아있었다. 

 

 

좁디 좁은 골목을 지나 앞으로 갔더니 갑자기 넓어지면서 언덕배기로 오르는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에는 해국이 가득했다. 이 부근 경치는 눈에 조금 익었다.

 

 

계단 밑 골목에는 참나무 의자가 두개 당그러니 놓여 있었다. 의자 위에는 작은 장난감 비슷한 것도 같이 놓여있었는데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포토존 표시가 바닥에 그려져 있다.

 

 

포토존에서 올려다본 모습이 제법 참했다.

 

 

계단을 따라 몇걸음 위로 올랐더니 예배당의 종각이 보였다.

 

 

감포제일교회에 남아있는 종각이다.

 

 

아래쪽으로 감포항구가 보였다. 예전에는 집들이 모두 낮춤했으리라. 예전에는 이 언덕배기에 오르기만 해도 항구가 한눈에 다 들어왔으리라.

 

 

날씬한 몸매를 지닌 아가씨가 긴머리카락을 날리며 건강한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기고 있었다. 해국길은 이런 식으로 살아있었던 것이다.

 

 

나는 교회에서 골목밑으로 난 시멘트길을 따라 내려왔다.

 

 

어느 집 담벼락 한쪽에 '다물은 집'에 관한 이야기가 곱게 그려져있었다. 감포 해국길에 얽힌 사연들은 하나같이 정겹기만 했다. 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다음 사연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