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하라고 자녀들을 다그치기 보다는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도산서원같은 곳에 한번 찾아가보는 것이 낫다. 준비없이 그냥 가서 흘끔흘끔 기웃거리는것보다는 자세히 알고가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고..... 퇴계라는 세계적인 대학자가 이런 곳에서 공부를 했으며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고 저런 영향을 끼쳤노라고 이야기를 해주며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다면 그냥 보는 것보다는 훨씬 더 효과가 있으리라.
서원정문을 들어서서 왼쪽 문으로 들어가면 농운정사 건물이 나온다. 오늘날의 개념으로 보자면 이 건물은 기숙사에 해당한다.
퇴계선생의 본명은 이황(李滉)이다. 滉이라는 글자는 물이 넓고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관은 진성 이씨다. 진성은 오늘날의 청송군 진보(眞寶)라는 곳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7남 1녀 중의 막내로 태어났다. 생후 7개월만에 아버지 이식(李埴)이 사망하는 바람에 12살부터는 작은 아버지인 이우(李堣)에게서 논어를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01년에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지금부터 약 500여년 전 인물이다. 도산서원은 그가 벼슬길을 마다하고 낙향한뒤 고향에 돌아와서 후진 양성을 위해 세운 사립학교라고 보면 된다. 고향인 온혜는 바로 이 부근이고.
처음 지을 당시 서원의 규모는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퇴계선생이 도산서원을 짓기 시작한 것은 그분의 연세 예순때인 서기 1561년이었다. 선생 생존시의 건물은 역락서재와 농운정사, 도산서당, 절우사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농운정사 건물의 모양은 한자로 공(工)자 모양이 되도록 했다고 한다. 제자들이 공부(工夫)에 열중하라는 의미였다고 전한다. 흔히 말하는 '공부'라는 말은 학문이나 기술등을 배우고 익힌다는 뜻을 가진 한자말이다.
건물 하나하나에 제자를 향한 스승의 그렇게 깊은 뜻이 스며들어 있는줄은 미쳐 몰랐다.
농운정사를 나온 나는 도산서당을 향했다. 거기가 거기니 몇걸음만 떼면 되는 곳이다. 정문을 들어섰을때 오른쪽에 바로 보이는 건물이 도산서당이다.
도산서당에 올라가기전 오른쪽 마당 한구석에 작은 우물이 있다.
몽천이라는 이름을 지닌 샘이다.
몽매(夢寐,蒙昧)한 제자를 바른길로 이끌어간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란다. 몽매라는 다 알다시피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 멀리 볼것없이 내가 바로 몽매한 자(者)다. 무지몽매라는 말은 나같은 어리바리한 자를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나는 계단을 올랐다.
많은 분들이 도산서당 마당을 거닐고 있었다. 사립문이 인상적이다. 요즘은 이런 문을 만나본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
구경을 하고 다른 곳으로 나가는 분들도 보였다.
건물 앞마당 한구석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이름하여 정우당(淨友塘)이라 한다.
연이라고 하는 식물이 불교철학의 정수를 함축하고 있다는 설도 있지만 고고한 선비의 차림새를 나타낸다는 주장도 있다. 퇴계선생이 작은 못을 만들고 연을 심어둔 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선비의 고고한 마음가짐과 자세를 따르라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정우당 한켠에는 향나무를 심었다.
도산서당은 작은 건물이다. 당시로봐서도 그리 큰 건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하는데 4년이나 걸렸다니 퇴계선생의 살림살이도 넉넉한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크고 화려한 건물이 아니어서 좋았다. 대학자가 지닌 검소함과 고결한 성품이 엿보이는듯 하다.
도산서당의 오른쪽 방이 완락재(玩樂齋)다. 방안에 '완락재'라고 쓴 작은 편액이 보였다. 선생이 거처하시던 방이다. 나는 마음이 숙연해졌다.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정말 작은 방이다.
나는 도산서당을 나왔다. 매화원이라는 이름이 쓰여진 작은 정원을 지난다. 퇴계선생의 매화사랑은 정말 지극하셨던 모양이다.
매화에 물을 주라고 하신 말씀이 마지막 말씀이 되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도산서원 곳곳에 작약꽃이 보였다.
토담 안쪽에 보이는 건물이 도산서당이다.
도산서당 맞은 편 건물은 하고직사다. 고직사(庫直舍)라 함은 관리인의 집이다. 하고직사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아 상고직사도 있었다는 말이 된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남아있다.
퇴계선생의 인품은 남달랐다고 한다. 인품이 중후하면서도 자애로웠다고 전해진다.
고향에 돌아와서 후학을 기를 건물을 짓고 학문에 정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도산서당과 하고직사 뒤편에는 각각 두채의 광명실이 있다. 광명실(光明室)은 요즘말로 치자면 도서관이라 할 수 있겠다. 현판은 퇴계선생의 친필로 전해진다.
정문에서 똑바로 보이는 문이 진도문(進道門)이다. 진도문 좌우에 광명실이 있는 것이다.
광명실은 누각 형상으로 지어져 있다. 책을 보관하는 곳이니 습기를 막을 필요가 있었기에 누각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서고를 마련한 것을 보면 그분이 학문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학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퇴계선생이 대학자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그만한 학문적인 업적을 쌓기도 했지만 마음자세와 생활자세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보통 사람과는 달랐던 것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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