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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한가운데 은모래 위로 강물이 흐르는 곳이 있다 1

by 깜쌤 2012. 7. 4.

 

영주에도 서천이 있었다. 시가지나 마을의 서쪽을 흐르면 서천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그렇다. 세상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서로 비슷한데가 있는 것이다. 인간살이의 원리가 그런가보다.

 

    

영주시가지 옆을 끼고 흐르는 이 개울에도 모래가 많았다.

 

 

모래 하천에 중간에 암석지대가 조금 나타나보이는 곳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모래밭 사이로 물이 흐른다고 보는게 훨씬 낫다.  

 

 

기차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제방으로 올라가 보았다. 벚꽃 피는 봄에 왔더라면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을뻔 했다.  

 

제방 바로 밑으로는 영주시가지다.

 

 

무엇을 보관하고 있을까?

 

 

나중에 알고보니 바로 밑으로 보이는 너른 터에 자리잡은 건물은 경상북도 도립 영주 공공도서관이었다.

 

 

여기도 하천 정비사업을 벌였던 모양이다.

 

 

바위가 있는 곳에는 작은 보가 보였다. 4대강 사업때문인지 보(洑)라는 말만 들어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제법 되는 것 같다. (洑)라는 말은 " 물을 대기 위하여 쌓고 냇물 끌어들이는 곳"을 말한다.

 

 

제방이 끝나는 곳에 작은 산이 보였다. 산이라고는 하지만 산자락 일부는 공원으로 꾸며두었다.

 

 

요즘은 하천정비사업을 잘 해두어서 얼핏보면 모든 하천이 깨끗하게 보이지만 시골로 가면 문제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곳곳에 버려진 가전제품들과 비닐쓰레기를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어떤 형태로든 하천 정비사업이 필요한 것이다. 대대적인 청소를 하든지 수거작업을 하든지 해야한다.

 

 

공원으로 꾸며둔 산자락에 멋진 기와집이 보였다.

 

 

삼판서고택이라고 한다. 판서라면 조선시대의 행정기관 수장이 아니던가? 요즘으로 치면 장관이다. 그렇다면 이 집에서 장관급 인사가 세분이나 나왔다는 말이 되는데.....

 

 

나는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여기까지 와서 안들어가보면 언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조사도 해보고 안내문을가지고 확인해본 결과 어디서 옮겨온 건물이었다.

 

 

조선의 통치이념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유학이었다. 그 기초를 놓은 분이 삼봉 정도전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이 집에서 정도전이 출생했다고 전해진다. 충청북도 단양 도담에 가면 정도전이 특별히 좋아했다는 도담삼봉이 있다. 삼봉(三峰)이라는 호도 거기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원래 영주 서천의 흐름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1961년에 영주를 덮친 엄청난 홍수 이후 강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959년 9월 영남지방을 강타한 태풍이 너무나 유명한 사라호 태풍이다. 그 태풍의 피해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던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가막혀서 말이 안나올 정도다. 산에 나무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조금만 비가와도 개울물이 넘쳐흐르던 시절이었는데 엄청난 폭우와 함께 무지막지한 바람이 불었으니 피해가 상상을 넘어설 수밖에 없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영주 부근 시골에 살았던 우리집 부엌에도 물이 들어찼었고 동네가 물에 다 잠겨  황토물 속을 누비며 헤엄을 쳤던 기억이 있다.

 

   

1961년 7월에도 영주지방을 강타한 홍수가 발생했다.

 

 

집중적으로 쏟아진 폭우가 원인이었지만 당시로 봐서 300mm의 강우량은 기록적이었다. 홍수가 안났다면 도리어 이상해진다. 영주시내를 관통하던 서천이 범람하면서 제방이 터지고 말았으니 영주시내 전체가 물바다로 변해버렸다.

 

 

큰비만 내렸다하면 상습적으로 침수가 되던 곳이 영주였으니 그게 문제였다. 항구적인 홍수대책을 강구하던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직접 나서서 영주 시내를 관통하는 하천의 물길을 돌리는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겼다. 지금 보이는 이 곳으로 물길을 돌리면서 제방을 다시 쌓아 새로운 시가지를 만들었다. 나는 지금 그 역사의 현장에 와있는 것이다.

 

 

 

나는 산허리 공원에서 아래를 굽어보았다.

 

 

삼판서 고택과 더불어 저 멀리로 펼쳐진 신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역사적으로 보면 치수(治水)를 잘했던 지도자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임금이나 사천성 성도 부근에 도강언이라는 유적을 남긴 이빙같은 사람은 두고두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상류쪽으로 아름다운 다리가 보였다.

 

 

영주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장소임에 틀림없다.

 

 

하천변에 조성된 잔디밭에는 시민들이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시내 한가운데로 모래밭이 가득 펼쳐진 하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복이다. 영주 시민들은 보기드문 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다. 은근히 부러워졌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