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영상수필과 시 1 Photo Essay & Poem

매화야, 매화야

by 깜쌤 2012. 3. 1.

 

 

평생을 미관말직(微官末職  지위가 아주 낮은 벼슬)으로 살아온 나같은 어리바리가 어설픈 겉멋이 들어 매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젊었던 날에는 매화가 사군자(四君子)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만 알았지 정작 매화를 가까이 할 기회가 없었다.

 

 

 

 

 

퇴계선생이 매화를 그렇게 사랑하셨다는 사실도 몰랐으며 단원 김홍도 선생이 매화나무 한그루에 거금 이천냥을 지불하셨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았다.

 

 

 

 

 

매화 열매가 매실(梅實)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살았으며 매실즙이 배가 아플때 마시면 상당한 효험을 발휘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랬으니 매화 종류를 알턱이 없었다. 백매(白梅)와 홍매(紅梅)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았다.

 

 

 

 

某라는 글자가 있다. 감甘자와 목木자를 합성한 것이다. 매실이 시고 달기 때문에 그런 글자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某는 매화의 옛 글자란다. 나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살았다.

 

 

 

 

매화꽃에서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았다. 그냥 꽃만 피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가끼이 지내오던 어떤 양반이 거의 이십여년간을 매화에 매달려 분재소재 농사를 짓는 것을 보고 매화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그런 뒤부터는 나는 자주 매화농장에 간다. 내가 기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숱한 사람들에게 매화 선전에다가 자랑까지 해가며 살게 된 것이다.

 

 

 

 

'Dung싸놓고 매화타령한다'는 말을 처음 듣고는 피식 웃었다. 참 기묘한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응가를 영어로는 Dung이라 한다.

 

 

 

 

고귀한 매화를 앞에 놓고 별별 시답잖은 소리를 다했다. 나는 일지매(一枝梅)라는 인물을 그리워한다. 작고하신 만화가 고우영의 창작사극 속에 등장하는 의적(義賊)이름이 일지매다.

 

 

 

 

역적간신배의 집을 털고 난 뒤에 매화꽃이 달린 한가지를 던져두고 홀연히 사라지던 일지매! 일지매는 멋을 알았던가 보다.

 

 

 

 

나는 다시 매화밭에 섰다. 내가 남기며 살아온 흔적들이 매화 한송이의 아름다움보다 못했음을 깨닫는다.

 

 

 

 

아무렴, 이 어리바리한 삶을 고결하기 짝이 없는 매화꽃에다 비하리요?

 

 

 

 

윤동주님의 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 살았지만 그게 과연 가능하기나 했을까? 어리석음으로 가득했던 지난 날을 돌이켜보며 나는 다시 매화 향기를 맡는다. 내 인생에서는 어떤 내음이 날까를 생각하면서......

 

 

 

 

 

 

어리

버리

 

 

 

 

 

 

'사람살이 > 영상수필과 시 1 Photo Essay & Poe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화하는 목련  (0) 2012.04.06
다시 호롱불 앞에서   (0) 2012.03.06
설중매 만나기는 헛꿈이던가?  (0) 2012.02.12
외로웠던 날  (0) 2012.02.05
햇살 가득한 남국으로   (0) 2011.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