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말 벌초를 끝내고 난 뒤 할머니가 사셨던 집터를 잠시 찾아가 보았습니다. 사과나무 바로 아래 몇채의 집이 보이는 곳에 할머니 집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위천(威川) 건너편에는 대구에서 안동으로 달리는 도로가 포장이 안된채로 널려 있었지요.
골짜기 저 끝머리에서 구안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한대가 일으키는 보얀 먼지들이 뭉게구름처럼 소복소복 일어서던 모습이 눈앞에 삼삼합니다.
정말이지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흐른듯 합니다.
할머니 혼자서 지키고 계셨던 집은 이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습니다.
너무 많이 변해버렸던 것이죠. 그래도 나는 이길은 기억할 수 있습니다. 뒷산으로 올라가던 길목이었으니까요......
옹기종기 모여있었던 초가들은 다 날아가 버리고 이젠 아름다운 전원주택들이 들어섰습니다.
이 동네에서 선친께서는 할머니와 삼촌과 함께 놀고 뒹굴고 농사일을 하시며 자라나셨던 것입니다.
여름방학때 혼자 할머니 댁에 와서 강으로 놀러다녔던 습지 길들은 이제 모두 옥토로 변했습니다. 장수잠자리와 왕잠자리가 날던 작은 저수지들은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때마다 아무도 아는 이 없는 낯선 동네에 와서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날들이 너무 그립기만 합니다.
손자 혼자 남겨두고 군위장에 가셨던 자그만한 어깨를 가졌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너무 그립습니다. 저 길을 걸어 왕복 40리길을 다녀오시던 할머니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제는 선친도, 할머니도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할머니! 어디로 가야만 그리운 그 모습을 다시 만날 수 있는지요?
그리고 또 아버지는 어디에 가야 다시 만나 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틀림없이 할머니 집터가 여기인데.... 여기인데...... 여기이건만.......
나는 막내동생과 함께 쓸쓸히 돌아섰습니다. 막내동생은 할머니에 대한 기억조차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가을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흘려보낸 세월은 내 머리 위에 남아 머리카락조차 하얗게 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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