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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조지아(=그루지아) 둘러보기 2

by 깜쌤 2008. 8. 28.

 

 기차가 없다면 다음 대안은 장거리 버스다. 조지아 국토를 가로질러 동서로 연결된 긴 고속도로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나는 장거리 버스표를 구하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가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 디두베라는 이름을 확인해 둔 뒤 가는 방법을 물었다.

 

우리 일행중에는 두명의 청년이 있다. 그 중 한명이 S대를 다니는 수재급 청년이어서 기억력과 분석력이 비상했다. 역 앞 가판대에서 산 지도를 보여주며 디두베 장거리 버스 터미널의 위치를 분석해보라고 했더니 거의 정확하게 찍어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이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 되었다. 지하철은 트빌리시 기차역 옆에 붙어 있었다. 사람들이 특별히 바글거리는 장소이거나 영어로 M자를 써두었더면 지하철역 입구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때의 M자는 Metro의 M자이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탄 나는 놀라 자빠질뻔했다. 왜냐고? 너무나 깊은 곳에 지하철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지하철이 아니라 방공호 수준이다. 방공호도 그냥 방공호가 아니고 핵전쟁 대비용 방공호 수준이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탠다면 에스컬레이터 경사각은 45도 정도 이상되는 것 같고 깊이는 한 100미터정도 되는 것 같았다. 위에서 보면 아래가 까마득하고 아래에서 보면 위가 쌔까맣게 보일 정도였으니.......

     

 

 

 

세 정거장을 달리니 다시 땅밖으로 나와버리고 만다. 이것은 또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 사이에 지상으로 올라와 버리다니...... 시내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노선은 그렇게 깊은 땅속에 있는 모양이다. 지하철 사진은 경찰이 찍지 못하도록 하는 것 같았다. 지하철 터널속의 공기는 더러운 편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물론 객차는 구닥다리 고물이었고 실내는 어두컴컴했으며 운행중에 창문을 열어놓고 있어서 소음 발생정도가 심했다. 그나마 빨리 달리니 한번쯤은 경험삼아 탈만하되 권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역에서 내린 우리들은 시장을 거쳐 디두베 장거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시장을 곁에 끼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터미널 분위기는 한마디로 돗떼기 시장과 다름 없었다. 사람들은 바글거리고 매표소는 어디 있는지 찾기도 어려우며 미니버스들과 승합차들이 이리저리 엉겨 질서라고는 찾을 길이 없는 상황이었다. 매표소 찾기가 어렵다. 그런 와중에 생김새가 얄궂은 동양인 4명이 몰려왔으니 돈을 벌겠다는 기사들이 떼거리로 와서 어디가느냐며 모두들 한마디씩 다 물어왔다.

 

"오늘 밤 바투미 가는 야간버스를 찾는다. 버스 매표소는 어디 있는가?"

 

그랬더니 대답은 간단히 돌아왔다.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이 버스를 운전할 것이라는 어떤 사나이 한사람을 찍어주었는데 그와 본격적인 교섭에 들어갔다.

 

"바투미를 가고 싶다.오늘 밤에....."

"이 차가 오늘 밤 바투미에 간다."

"몇시인가?"

"밤 8시출발이다."

"요금은?"

"20라리"

"큰 버스는 없는가?"

"없다. 이게 다다. 우리는 이런 버스로 다닌다."

어설픈 영어를 구사하며 교섭이 이루어졌는데 대화는 단발성으로 끝나고 만다.

"바투미 도착시간은?"

"아침 6시다."

 

그렇다면 버스에서 10시간 정도를 버텨야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소요 시간은 적당하다. 3일 연속 탈것 속에서 밤을 세운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모두들 그 정도는 버텨낼 것 같았다. 나중에 딴소리 하는 것을 막기위해 우선 차 사진을 찍어두었다. 밤중에 다른 조그마한 차를 갖다대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런 형편이니 돈은 미리 지불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구두로 서로 약속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그들이 약속을 안 지키면 우리만 골탕을 먹게 되어 있으므로 온갖 안전 장치를 마련해 두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나와 교섭한 그 사나이를 찍었다. 약속만 해두고 저녁에 안나타나면 우리만 손해이므로 사진을 찍어둔 것이다. 물론 '당신을 믿지 못하니 증거용으로 찍는다'고 하면 안된다. 기념으로 찍는다고 이야기 해두었다. 디카의 매력은 이런 것에 있다고 믿는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연락처를 달라고 했더니 종이에다가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그의 이름은 다토이다. 8시에 버스가 출발한다는 의미인가 보다. 나이가 들면서 생긴 현상 가운데 하나는 기억력 감퇴다. 수재 청년이 옆에서 보좌관 역할을 멋지게 수행해준다고는 하지만 꼭 기억해야할 것은 기억해 두어야 한다. 정상적인 티켓이라면 믿을 수나 있지만 이런 것은 사적인 거래에 불과하므로 저녁에 와보았을때 차가 없다든지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하므로 증거를 남겨두는 것이다.

 

그렇게 못믿고 무슨 일을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내 대답은 간단하다. "여행은 낭만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여행중에는 조심을 해야 한다. 더구나 우리는 배낭여행자들이므로 더욱 더 생존의 문제와 작결되는 것이다. 생존한 이후에 낭만이 존재하는 것이지 낭만이 우선이 아니다. 더구나 나는 리더로서 다른 세사람을 무사히 인천까지 모시고 올 의무아닌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름대로의 대비책은 다 갖추어야 했다.

 

약속을 하고 나니 조금은 허전했다. 아무리 그래도 고속도로를 달리는 장거리 버스가 그런 크기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커다란 대형버스가 들어오는 공간을 찾았는데 한쪽 구석에 그런 버스가 엄연히 폼을 잡고 터억 서 있는 것이었다. 아차, 실수를 했구나 싶어서 순간적으로 후회가 되었다. 큰 차 앞으로 간 나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바투미 가는 버스가 있소?"

"있습니다. 이 버스입니다."

 

손으로 가르키는 버스를 보니 대형버스였다.

 

"나이트 버스는 없소?"

"없습니다. 낮에만 있습니다."

"막차는 몇시에 가오?"

"오후 4시에 출발합니다."

"도착 시간은?"

"밤 10시 넘어서...."

 

그렇다면 우리가 바르게 선택한 것이 틀림없다. 이젠 짐을 맡겨두어야 했다.

 

 

 

 

 일본에는 곳곳에 코인락커가 존재해서 여행객들에게 엄청 큰 편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동전만 있다면 빈통 속에 짐을 넣고 채운 뒤 볼일을 보고 돌아와서 찾아가게 되어 있는 이 시스템의 존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하지만 여긴 조지아다. 독립한 지 20년이 채 안되는 낙후된 이 나라에서 그런 시설을 찾는다는 것은 조금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나라의 수도 한가운데 자리잡은 장거리 버스 터미널에 그런 시설이 없다면? 글쎄다.....  그런 시설이 없으니 우리 같은 여행자는 골탕을 먹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살이라는게 어디든지 거의 다 같은 법이므로 다토씨에게 물어보았더니 두말없이 우리들을 데리고 건물 한구석에 자리잡은 허름한 공간으로 안내해갔다. 이럴땐 문자를 몰라도 그림만 보면 알 수 있다.

 

말이 안통할땐 그림을 그려서 대화를 하라. 그것만큼 멋진 방법도 없다. 손짓 발짓 몸짓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트러블이 발생하여 싸울 땐 유창한, 정말 유창한 우리말로 줄기차게 이야기해라. 그것도 신나게 정신없이 말해야 한다. 정 할말이 없으면 애국가도 외우고 국민교육헌장도 외우고 혼자서 주절주절 지껄이기 바란다. 어설픈 영어로 지껄이지 말라.

 

 

 

 

 워낙 모습이 비슷비슷해서 거기가 거기 같길래 사진을 찍어두었다. 저녁에 와서 짐을 못찾으면 우리만 손해 아닌가? 당연히 영수증은 받아서 잘 챙겨두어야 한다.

화물보관소를 지키는 늙으신 할아버지는 허리가 꼬부라지셨는데 어설픈 영어로 시간을 물어오셨다.

 

"저녁 7시 반에 오겠습니다. 할아버지."

"노우! 7시!"

"왜요?"

"(손으로 곱표를 그으며) 세븐."

 

아하! 7시에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다. 그런 뜻이다. 어르신도 밤에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7시까지 오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오우케이. 할아버지."

 

 

 

 할아버지에게 영수증을 받은 것을 찍어두었다. 영수증을 잃어버릴 경우 증거로 내밀기 위해서이다.

 

 

 

 

 

 배낭 4개를 맡겨둔 뒤 밖으로 나왔다. 밤에 와서 못찾으면 곤란하니까 다시 건물 사진을 촬영해둔다. 이런 식으로 치밀하게 나오지 않으면 여행이라는 것을 하지 못한다. 온갖 경우의 수를 대비해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챙겨두어야 생존이 가능한 것이다.

 

 

 

 

손님들과 종업원들로 바글거리는 정류장을 빠져나와 다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시장을 거쳐 역으로 갔다. 이젠 등도 가벼워졌으니 트빌리시 시가지 구경을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린 다시 지하철 역으로 갔고......

 

 

 

 

 지하철을 탔다. 지금 이 구간은 지상철이다. 

 

 

 

 트빌리시 역까지 간 우리들은 아침에 산 지도를 분석하며 어디에서부터 구경할 것인지에 대해 의논을 했다. 일단 37번 버스를 타고 가서 적당한 곳에 내린 다음 구경을 하기로 했다. 아침에 시내로 들어오면서 중요한 명소를 다 본 것 같았으므로 기억을 되살려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트빌리시 시내버스는 거의가 미니버스인데 모두 다 노란색이다. 노란 택시는 많이 보았어도 노란 시내버스는 처음 보는 셈이다. 재미있는 나라다.

 

 

 

 

 미니 버스이므로 손님이 그렇게 많이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크기는 우리나라 봉고보다 아주 조금만 살짝, 더 크지 싶다.

 

 

 

 

 물론 대형시내버스도 존재한다. 그래도 버스 색깔은 노란색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트빌리시 기차역 한모퉁이에서 조금 떨어진 비스듬한 언덕길 앞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차를 타기로 했다.

 

 

 

 

 이제 트빌리시 기차역을 지나간다. 시내로 구경 가는 것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