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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조지아(=그루지아) 둘러보기 3

by 깜쌤 2008. 8. 29.

 

 이제 부터는 도시 탐방에 들어간다. 구해온 자료를 읽어보니까 트빌리시라는 도시 이름은 "따뜻함"을 나타낸 '트빌리'라는 말에서 왔다는데 결국 '따뜻한 도시'라는 뜻이 된다고 한다. 온천이 샘솟는 곳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단다. 자기들 자료에 의하면 기원전 4세기경부터 여기에 사람들이 살았다니까 역사는 제법 오래된 도시임을 알 수 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니까 한자가 보이는게 아닌가? 아니? 여기에서 중국집을 하는 중국인이 있다는 말이지? 자세히 보니까 천복(天福)이라는 글씨가 간판에 들어있었고 갈색등을 달아 놓았다. 갈색은 이 나라의 전통 색깔이라고 한다.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참아야 한다. 지금은 우리가 버스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트빌리시 시내 한가운데는 강이 흐르고 있다. 자료에 의하면 Mtkvari강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크바리라고 하면 될려나? 이름이 요상하기도 하다. 어쨌거나 트빌리시라는 도시는 이 강의 좌우 언덕과 평지에 건설된 것임은 확실하다. 

 

 

 

 

 내가 여행기 속에 사진 한장이라도 더 올리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현장감을 살리고 싶어서이다. 세밀한 장면 묘사로 여행기를 쓰면 좋겠지만 나는 그럴 재주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자세히 문장으로 묘사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고 본다. 지금은 는으로 보는 비주얼의 시대이지 문자로 된 것을 읽고 듣는 것을 즐기는 오디오의 시대가 아니기에 사진 한장이라도 더 올려서 읽는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고 싶다.

 

이 도시는 강을 중심으로 양쪽 언덕위에 발달된 도시이다. 그러니 사진 속에 언덕이 많이 보이는 것이다. 지나다니는 자동차는 새차들보다 헌차들이 더 많았는데 그것이 이 나라의 현재 경제상황을 잘 대변해 주는듯이 보였다. 

 

 

 

 

 37번 버스를 타고 어느 정도 달려왔다고 생각될때쯤 해서 우리는 버스에서 내렸다. 거리를 따라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나중에 성채(시타델)에 올라보는 것으로 도시 탐방을 끝낼 생각이다. 이 나라의 국기는 흰색바탕에 붉은 십자가로 4개의 네모칸을 만든 뒤 다시 그 속에 붉은 십자자를 그린 것이다. 그러니 구별하기도 쉽고 이미지가 쉽게 각인이 되었다. 

 

 

 

 

 

 깃발에 십자가가 그려진 것으로 보아 기독교 국가임을 알 수 있다. 전체인구 가운데 10% 정도는 회교도라고 한다. 나라 인구의 65% 정도는 그루지아 정교이고 나머지는 러시아 정교와 유태교도, 그리고 카톨릭과 개신교도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기독교인들이 전체 인구의 85% 정도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절대다수는 정교신자들임을 알 수 있다.

 

 

 

 

정교(正敎)는 로마제국 시대 때 교회가 동서로 분열되고 난 뒤 오늘날의 이스탄불, 그러니까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여 번성했던 기독교의 일파라고 보면 된다. 동로마제국의 정신적지주가 되었던 것이 기독교 가운데 정교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다. 로마제국이 동과 서로 분리되어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나누이는 것과 교회의 분리는 다른 것이므로 착각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로마제국이라고 부르는 서로마제국은 서기 476년 게르만 민족 출신의 용병대장이었던 오도아케르에게 멸망당하지만 동로마제국은 그 이후로도 약 천년간이나 더 번성해오다가 서기 1453년 5월 29일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게 멸망당하는 것이다. 결국 그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오늘날의 터키가 이스탄불(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하고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고......

 

 

 

 

 

 조지아 공화국은 최근들어 북대서양조약기구라고 알려진 NATO에 가입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조지아 공화국이 나토에 가입을 한다는 말은 러시아로부터 정치적 군사적인 면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일련의 시도들이 다시 한번 21세기 강대국으로의 복원을 꿈꾸는 러시아의 비위를 강하게 건드린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다는 아니다. 그루지아나 아르메니아가 나토에 가입한다는 말은 미국과 서부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 세력이 러시아를 둥글게 포위하는 형상이 되는 것이므로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옛 소련에서 떨어져 나간 발트 3국이 나토에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러시아가 신경이 바짝 곤두서는 일인데 거기다가 그루지아까지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러시아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되는 것이다.  

 

서부 유럽 거리에는 달러화와 유로화의 환율이 은행 외부에 내걸려 있었다. 1달러가 약 1.396라리이니 쉽게 생각해서 1달러는 약 1.4라리 정도이디. 어설픈 실력으로 얼렁뚱땅 계산을 해보니 1라리는 우리돈으로 약 700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건물들은 유럽식이 많았다. 그런 만큼 거리 모습이 그렇게 흉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곳곳에 손대지 못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서 거리 미관이 썩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배가 고파진 우리들은 어디에서 아침겸 점심이라도 조금 먹어야 했다. 비행기 안에서 새벽 참을 먹은 뒤로 배 속에 넣은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새벽에 먹었으니 아직까지 바틸 수 있는 것이리라.

 

 

 

 

 

 우린 길거리 한구석에 자리잡은 작은 빵가게를 찾아갔다. 개인 식미에 따라 서로 다른 빵을 시켰는데 나는 기름에 튀긴 바삭바삭한 빵과 콜라를 시켰다.

 

 

 

 

 무슨 빵맛이 그렇게 싱거운지.......  하지만 조지아 사람들은 그게 맛있는 모양이었다. 콜라는 컵에 따루면 딱 한잔 정도만 되는 작은 병에 담겨 나왔다. 빵맛이 닝닝한 것이 그냥 그게 그맛이었다. 부스러기는 왜 그렇게 많이 떨어져 나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맛있게 먹어치워야 한다. 생존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라도 먹고 나니까 힘이 솟았다.

 

 

 

 

 

 거리는 그런대로 깨끗했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영어가 잘 안된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견딜만 했다.

 

 

 

 

 우리는 이 거리 카페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은 것이다. 빵 한두조각으로 기운을 차린뒤 다시 구경에 나섰다.

 

 

 

 

 맥도널드 가게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 맥도널도 햄버거도 그리 만만한 가격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것으로 보아 인기가 대단한 것 같았다.

 

 

 

 

 

 분수대에서는 물이 흘렀고......  땟국물에 절은 가난한 아이들은 우리들 낯선 동양인 여행자들을 신기한듯이 쳐다보았다.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은 것은 방송용 송신탑일까?

 

 

 

 

 전세계에서 몰려든 온갖 자동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강 건너편 언덕에도 집들이 들어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 한모퉁이에는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을 팔고 있었다.

 

 

 

 

 이 분은 직접 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리의 예술가이든 체제속의 예술가이든 간에 예술가들이 많은 나라는 문화선진국임에 틀림없다.

 

 

 

 

 건물 위에 8.16이라고 써놓은 것이 보였다.

 

 

 

 

8.16이라는 말 속에 어떤 역사적인 의미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짐작하기가 어렵다. 남의 나라 역사에 통달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 아니던가?

 

 

 

 

 

 트빌리시도 따지고 보면 제법 아름다운 도시이다. 조지아도 문화나 자연환경이 그렇게 천한 나라는 아닌 것이다. 나름대로의 역사를 가지고 그런대로 잘 살아오던 나라가 공산주의 소련에 흡수되었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지 싶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