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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자, 떠나자~~ 그루지아로~~ 3

by 깜쌤 2008. 8. 26.

 

 

12시간 정도 날아가는데 맹탕으로 가만 앉아 있으려니 좀이 쑤신다. 책도 보고 잠도 자고 다시 책보고......   그러다가 화장실에도 가 보았다. 물이 마시고 싶어 벨을 눌러도 스튜어디스가 달려오는 것도 아니다.

 

"워터 플리즈~~"

라고 말하면 대답은 간단히 돌아 올 것이다. 손으로 뒤를 가리키면 끝이다. 비행기 꼬리 쪽으로 가보면 물병과 물컵이 놓여 있으니 알아서 따라 먹으라는 말이다.

 

 

 

  

 중국 기차역 매표소 직원의 "메이요우(沒有)!"라고 한마디 하면 상황 끝인 것이나 다름없다. 불친절과 무관심만큼 인간을 절망시키는 것이 또 있을까? 그래도 비행기 내부의 여러 시설마다 영어를 가지고 조금씩 표시해 두었으니 천만다행이다. 안그러면 슬라브 민족 계통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시릴 문자를 읽느라고 죽을 고생을 해야 할 판이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비행기 안 내부시설도 조금은 실망스럽다. 투박하고 거친데다가  사람들은 불친절하니 아에로플로트를 탈때는 그 정도는 감수하고 있어야 한다. 1990년에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소련)이 무너지고 난 뒤 20여년의 세월이 흘러서 나아졌다는게 이모양이니 인간의 의식 구조를 바꾸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이 난다.

 

만약 우리나라가 북한과의 경쟁에 승리하여 우리 주도의 남북통일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북한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바꾸는데는 얼마만한 세월이 흘러야할지 아무도 모른다.

 

 

 

 

 두번째 식사가 배달되어 왔다. 비행기 안에서 식사를 할 때는 내가 앉아 있는 좌석을 바로 세워주는게 예의다. 뒷사람 식탁이 내 좌석 뒤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어떤 음식이 제공되어 올 것인지 그게 궁금했다.

 

 

 

 

 이번엔 파스타였다. 토마토 소스를 얹은 파스타! 그저 먹어두어야 한다. 안 먹으면 나만 손해니까 그저 맛에 관계없이 먹어두어야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사람들이 인스턴트 커피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나는 커피도 챙겨두었다. 소금도 후추가루도 챙겨두었다.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므로......

 

 

 

 

 비행기 테러가 일반화되고 난 뒤부터 나이프와 포크와 숟가락은 모두 플라스틱 제품으로 제공된다. 결국 단순 소모품 정도로 취급받아 낭비되는 것이므로 전세계 모든 항공회사에서 소비되는 1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양은 엄청날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짜증이 일어난다. 선한 제도와 도구를 악용하는 일부 인간들 때문에 안해도 될 행동을 해야하고 안써도 될 물건들을 만들어 써야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우리 인간들이 이런 식으로 악해져 가야하는지 모른다.

 

이제는 휴대용 생수통에 든 생수도 비행기 안으로 들고 들어갈 수 없다. 액체폭약이 발명되었기 때문이다. 선크림이나 치약도 그렇다. 일정한 무게가 넘으면 모두 기내 반입 금지품에 해당되어 압수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비행기를 탈때는 화장품이든 치약이든 모두 소형 물건으로만 챙기는게 현명하다.

 

 

 

 

 나는 항상 쓰레기 크기와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기내에서 제공되는 식사를 하면서 식판위에 온갖 포장용지를 널널하게 깔아두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나는 음식은 절대 남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먼저 내가 다 먹을 수 있는 것부터 손을 대고 남길 만한 것은 챙겨두었다가 나중에 먹는다. 

 

어쨌거나 시간이 흘러 모스크바 공항에 착륙을 했다. 아에로플로트 항공의 조종사 기술이 좋아서 그러는지 아니면 불안에서 해방되어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러시아 비행기를 타면 착륙할 때마다 박수를 치는 묘한 풍습이 볼 수 있다. 물론 다른 회사 비행기를 타도 그런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이 회사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좀 더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준다는 느낌이 든다.

 

 

 

 

 일찍 내린다고 해도 할일이 있는게 아니므로 우리들은 천천히 내렸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그루지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6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서너시간 대기하는 것은 견딜만 하지만  그 정도가 넘어가면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을 보통 트랜스퍼(transfer) 정도로 표기한다.

 

비행기를 갈아탈 손님이라면 굳이 입국을 할 필요가 없다. 입국을 하게되면 출국 절차를 새로 밟아야 하니 번거롭기 그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러시아 같은 나라는 입국시 비자가 필요한 나라이므로 입국을 하려고 하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높다. 사정이 그런 줄도 모르고 무작정 앞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 앞 사람들을 따라가되 입국 절차를 밟지 말고 트랜스퍼라고 써놓은 창구로 가서 절차를 밟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모스크바 공항 안내원은 그런 면에서 아주 친절했다. 트랜스퍼 창구에 가서 항공권을 보여주면 다음 비행기를 탈 게이트를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엄청 기다려야 하니까 게이트가 지정되어 있을 리가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안내원이 미리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당신들은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면세점 안에서 기다리다가 전광판을 잘 보고 게이트를 꼭 확인한 뒤 탑승하기 바랍니다."

 

그녀는 내가 만난 가장 친절했던 러시아 사람이었다. 갈 곳이 없으니 어디가서 쉴 장소를 찾아야 했다. 면세점 위층으로 올라가니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포장용 종이 상자를 구해와서 펴서는 깔고 앉기도 하고 쉬기도 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비행기 안에서 주는 신문지를 미리 확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와 동행한 우리 청년들은 어디가서 포장용 상자를 구해왔다. 능력 좋고, 동작 빠르고 ~~

 

 

 

 

 

 어떤 사람들은 계단에 앉아 멍청하게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휴대용 컴퓨터를 가진 사람이라면 전기가 공급되는 전원을 찾는 것이 급선무이다. 컴퓨터를 연결한 뒤 자기 일을 하면 되니까......

 

 

 

 

 나는 면세점 안을 슬금슬금 돌아다녀 보았다. 예전엔 일본 회사 제품들이 판을 치던 곳에 한국산 전자제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일본회사 제품들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 한일(韓日) 회사간에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다. 누구는 열심히 상품을 팔러다니고 누구는 열심히 때려잡으려 들고..... 하여튼 우리나라는 재미있는 나라이다.

 

 

 

 

 인천공항과 모스크바 공항을 비교하라고 하면 단연 인천 공항이 몇수위다. 시설도 그렇고 운영기법도 그렇고........ 면세점 규모도 상대가 안될 정도이다. 러시아의 이런 안목으로 세계를 호령했다는 것 자체가 우습기만 했다. 지금 중국과 일본이 그럴지도 모른다. 세계인에게 제시할 만한 멋진 이념이나 비전도 없으면서 경제적인 번영을 바탕으로 해서 잘난체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므로...... 

 

 

 

 

 어디에서 많이 보던 비행기가 아니더냐? 하늘색 동체를 가진 비행기는 대한민국 비행기일 가능성이 높다. 앞머리 부근에 선명하게 붙은 이름표는?

 

 

 

 

 우리나라 국적기이다. 대한항공을 싫어하는 한국 사람도 많더라만 어쨌거나 간에 우리나라 회사 비행기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우리는 쇠고기 육포를 꺼내 뜯었다. 동행한 청년이 챙겨온 것이다. 나는 그런 면에 아주 소홀한 사람이다. 음식은 철저히 현지 것을 먹는다는 기본 습관에 충실한 사람이어서 그렇기도 하고 짐을 줄이겠다는 얄팍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장소에 가서 우리나라 사관학교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행기에서 얼굴을 익혀두었으므로 이야기 나누기가 편했다.

 

그들은 방학을 맞아 해외탐방을 나왔다고 했다. 학기중에 해외탐방계획서를 만들어 제출해서 통과되면 국외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정말이지 그런 것은 아주 잘 하는 일이다. 청년들에게 세상 넓은 줄을 깨달아 알게하고 다녀 올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더구나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나라의 예비 간성들임에야....

 

우리가 탈 비행기는 새벽 01시 10분 발이다. 12시 반쯤 되어서 우리들은 철저하게 뒷정리를 했다. 우리가 쉬고 놀았던 부근의 휴지를 깨끗이 줍고 종이상자는 접어서 쓰레기통 부근에 단정하게 정리해 두었다.

 

 

 

 

 

 새벽 한시 10분이 넘어서 비행기는 다시 모스크바 공항을 출발해서 트빌리시를 향해 날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티격태격하는 나라로 날아가는 비행기여서 그런지 사람과 휴대화물에 대한 검사가 아주 철저했다. 검색대를 통과할 때 허리끈을 푸는 것은 기본이고 신발도 벗어야 하며 액체가 든 통은 거의 버려야 했다.

 

3시간 정도를 날아서 그루지아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 구간에는 인천에서 모스크바로 날아가는 비행기보다는 작은 기종을 배치하지만 서비스는 한 수 위였다. 짧은 거리를 날아가는 비행기라고는 해도 그 밤에 간식을 준다. 음식의 질이나 서비스의 품질이 확실히 한수 위였다. 

 

날이 새려면 몇시간 더 기다려야 했으므로 입국절차를 밟고 난 뒤에 우린 입국장에서 기다려야 했다. 은행에 가서 환전도 조금 했다. 50달러를 환전했더니 약 70라리를 주었다. 이나라 돈 단위가 라리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벌써 2일째 이렇게 잠도 못자고 설치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던가? 배달민족의 후손이 아니던가? 몸이 말을 잘 안들을지언정 깡으로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공항을 벗어나기 전에 우리들처럼 입국하여 한 모퉁이에서 노닥거리며 쉬고 있는 노랑머리 청년들과 아가씨들이 어우러져 있는 그룹을 찾았다. 얘들도 틀림없는 배낭여행자들일 것 같아서 말을 걸었다.

 

"청년들 어디서 오셨소?"

"벨기에입니다."

"혹시 이 나라에 대한 정보를 담은 책을 가지고 계시오? 론리 플래닛 같은 책 말이외다. 우린 새벽에 도착했는데 이 나라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하니 물어보는 말이오."

"여기 있습니다. 론리 플래닛!"

 

그렇게 해서 책을 건네받은 나는 중요한 부분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두었다. 자세히 읽어볼 시간이 없으므로 호텔과 교통편등을 적어놓은 부분을 찍어둔 뒤 나중에  읽어보면 되니까 찍어두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바로 위 사진은 트빌리시 시내지도이다. 이 정도만 해도 도움이 된다.

 

 

 

  

 이 사진은 잠자리 형편을 적은 책이다. 바닥권이라도 해도 예산이 만만치 않게 들게 생겼다. 큰일이다.

 

 

 

 

 장거리 버스 정류장에 대한 정보도 들어있으니 대강은 행동반경을 정할 수 있겠다. 중요한 것은 디두베라는 이름이다. 그리스나 터키행 버스도 있는 것 같고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으로 가는 버스도 있는 모양이다.

 

 

 

 

 트빌리시 시내를 하루만에 볼 수 있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걸어서 핵심을 볼 수 있는 방법까지 있으니 이 정도 정보라면 어느 정도는 유용하겠다.

 

 

 

 

 이제는 시내로 들어갈 일만 남았다. 남의 나라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가지지 않은채 입국하여 무작정 버티려는 우리들의 만용도 보통이 넘는다.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기다. 벌써 이틀째 잠을 못자서 그런지 청년들이 비실거리기 시작했다. 나를 믿고 이 멀리까지 따라와준 청년들에게 미안함이 가득해지자 마음은 안스럽기만 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