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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조지아(=그루지아) 둘러보기 1

by 깜쌤 2008. 8. 27.

 

 비행기가 착륙할 때 바깥을 보았더니 활주로 높이보다 도시의 불빛이 높았다. 그것은 언덕 위에 도시가 존재한다는 말일텐데 날이 밝고 나서 확인을 해보니 거의 틀리지 않았다. 공항 건물 밖으로 나와서 영어가 통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트빌리시 기차역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37번 버스인데 7시부터 운행된다고 했다. 요금은 0.4라리란다. 운행시간 간격은 30분이라니 첫차를 타고 시내에 들어가야만 했다.

1라리는 우리 돈으로 700원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왜 벨기에 청년들이 공항에서 죽치고 버티는지를 이해했다. 쟤들도 첫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6시 50분이 되어 공항 밖을 보니 벌써 버스가 도착하고 있었는데 벨기에 아이들은 모두들 배낭을 매고 정류장 부근에 나가서 모여 있었다. 그러니 정보수집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도 밖에 나가서 버스에 올랐고 간신히 좌석을 잡을 수 있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보통 국제공항은 시내에서 수십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게 당연한 일이다. 그 정도 거리라면 이삼십분은 기본적으로 간다는 이야기이므로 좌석에 앉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트빌리시 공항은 시설이 좋은 편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시설 하나만큼은 모스크바 공항보다 낫지 않았을까 싶다. 활주로 숫자나 면적은 모자랄지 모르지만 운영 시스템이나 시설은 한수 위라고 보여졌다.

 

 

 

 어지간한 나라같으면 공항까지는 전철이나 지하철로 연결되어 있는게 보통이지만 후진국이나 그럭저럭 살아가는 나라들은 그런 시설을 바라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조지아(=그루지아) 공화국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지 얼마 안되는 나라이지만 최근 들어서부터 경제가 급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지아 공화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옛 소련식의 그루지아라는 나라 이름을 영어식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조지아로 부를 생각이다. 조지아라고 하니 미국을 이루는 조지아주(州) 이름과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지리 실력이 상당하신 분이다. 마가렛 미첼 여사가 쓴 유명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무대가 되는 지역이니 역사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상당히 널리 알려진 곳이지만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곳은 나라로서의 조지아를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영어로 표기하면 철자가 같다.

 

 

 

 

 위의 사진 넉장은 조지아의 관문인 공항을 찍은 것들이다. 버스편을 알아볼 때 건물 밖으로 나와서 찍어두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비행기에 짐을 실을 때 비닐 테잎으로 꽁꽁둘러 완벽하게 감쌌다. 아마 검색대를 거치는 동안이나 짐을 싣는 과정에서 물건을 빼내는 사례가 많은 모양이다. 우리도 못살 때 그런 일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태국에서 당한 일인데 한국으로 내 배낭을 실어 보냈더니 맥가이버 칼이 사라진 적이 있었다. 그런 경우를 두번이나 당하고 나니까 습관적으로 도둑질하는 녀석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범인은 공항 관계자들일 것이다. 고객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중대한 범죄행위가 아니던가? 잘사는 나라 사람들 것을 한개쯤 가진들 어떠랴하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관광객들이라고 해서 외국인들이라고 해서 다 부자는 아닌 것이다.

 

 

 

 

 공항내의 기념품 가게 모습들이다. 자기나라 특색을 잘 살려 물건을 구비해 두었지만 하나 살 형편이 못되었다. 가난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는 일종의 미니버스였다. 자그마한 버스 속에 많은 사람들이 탔으니 출발지부터 만원버스가 된 셈이다. 그런데 유리창은 너무 안 닦아 두었다. 사진을 찍으니 단번에 먼지들이 자잘한 점으로 나타났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공항 부근의 건물이다. 무슨 용도로 쓰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공항 부근이  너무 황량하게만 보였다. 나라 형편이 대강 짐작되었다. 신생독립국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여기는 그 유명한 소련의 독재자였던 스탈린의 고향 나라이기도 하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를 너무 푸대접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37번 버스는 시내 주요부를 다 들러주는 것 같았다. 아침 출근 시간이 되어서 그런지 정류장마다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려고 대기중이었다. 현지 사람들은 얼굴 모습이 이상한 우리 동양인들을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조지아 군인이라고 생각되는 청년은 복잡한 차중에서 내리더니 운전석으로 걸어가서 요금을 지불했다.

 

"으흠, 요금은 버스 운전 기사에게 직접 내는 것이구나"

 

시스템을 모를때는 그저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남이 하는 행동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탄 버스는 트빌리시 시내에 자리잡은 성채(시타델)를 끼고 달렸다. 나중에 저 성채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할 예정으로 있다.

 

 

 

 

 몇군데의 명소를 거치는 동안 정보에 밝은 벨기에 청년들이 한곳에서 우르르 내렸다. 따라 내리려고 하다가 참았다. 우린 일단 트빌리시 중앙역까지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워낙 이나라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역에 가서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고 거기에서 중요한 정보와 지도를 얻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역까지 가려고 한 것이다. 

 

공항 인포메이션 센터는 9시에 문을 연다니까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시내에 빨리 들어가려고 했었다. 공항 서점에서 지도를 사려고 물어보았더니 가격을 너무 세게 불렀다. 후진국일수록 공산품과 책값이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다.

 

몇번이나 내리려고 망설이다가 끝까지 버티고 앉아 있었더니 드디어 버스는 트빌리시 기차역에 도착했다. 역건물은 아주 웅장했지만 기차역 속에 들어가 보았더니 그렇게 휑할 수가 없었다. 표를 파는 창구는 10개 정도가 되었지만 아주 비능률적인 것 같았다. 우리가 그렇게 애타게 찾아나섰던 인포메이션 센터는 콧배기도 보이지 않았고......

 

 

 

 

배낭을 벗어서 대합실 의자에 내려두고 청년 한명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역건물 인근에 상주하고 있는 경찰에게 물어보았다. Map이라는 낱말조차 못알아들으니 대화가 될리가 없지만 그래도 기념촬영용 사진을 찍는데는 성공했다. 그들은 폼을 내서 포즈를 잡아 주었다. 결국 신문 가판대에 가서 트빌리시 지도를 한장 구했다. 구한 지도를 경찰에게 보여 주었더니 모두들 환하게 웃어준다. 

 

다시 역대합실에 들어왔더니 우리 팀의 청년이 한국인 청년들이 저기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만히 보니까 표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한국인 청년들이 보였다. 여기서 한국인들 만나다니 이런 일이 다 있는가 싶었다. 서둘러 찾아가서 말을 걸었다.

 

"청년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왔습니까?"

"바쿠에서 오늘 왔습니다. 우린 바쿠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이스탄불에 가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바쿠라면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수도가 아닌가? 석유로 유명한 바쿠에서 왔다니 대강 이해가 되었다. 그들은 지금 조지아와 터키의 국경도시인 바투미를 거쳐서 터키로 넘어간 뒤 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로 이동하려는 것이었다. 바투미까지 가기 위한 기차표를 구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여행정보가 너무 없어서 우리도 바투미까지 가는 기차표를 구할까말까 하고 망설이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천만다행이었던 것이 그때 왜 갑자기 바투미로 빨리 나가고 싶어졌는지........ 하지만 나는 정확하게 안다. 아래 지도를 보기 바란다.

 

 

   

 

                                              <조지아 기차역 앞에서 구한 지도책자 속에 들어있는 지도임>

 

 

 이 청년들은 붉은 선을 따라 이동하려는 것 같다. 문제는 기차표이다. 나는 갑자기 인천공항에서 본 텔레비전 뉴스가 생각났다. 자꾸만 이 나라에서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 나라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는 것도 불안하고 영어를 아는 사람이 적다는 것도 불안했으며 이 나라에서 빠져 나가려고 하는 청년들을 만난 것도 내 마음을 바꾸는 변수가 되었다.

 

"그래, 우리도 빨리 이 나라를 떠나서 터키로 가야겠다. 결심했다. 그렇다면 빨리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런 것을 육감(六感)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성령님의 감동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기독교인인 나는20여년에 걸친 신앙생활 체험과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의 생활체험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생각과 내 생각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다시 영어판 론리 플래닛 터키편을 꺼내 국경을 넘는 방법을 찾았다. 조지아 공화국에서 터키로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비행기를 타면 되지만 우리는 그럴 형편이 안된다. 아래 지도를 다시 보시기 바란다.

 

 

 

 

 

 노란색 선은 걸어서 터키로 넘어갈 수 있는 노선을 표시한 것이다. 현재 우리는 트빌리시에 있다. 기차를 타든지 버스를 타든지 해서 흑해 연안의 도시인 바투미까지 가서 국경을 넘을 수도 있고 론리 플래닛에서 비장의 무기로 권하는 발레(Vale)에서 터키로 국경을 넘을 수도 있었다.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해서 넘어야 했다.

 

역 대합실에서 기차표를 구하는 줄을 보니까 줄어들 기미도 보이지 않았는데다가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 같아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청소를 하는 아줌마에게 물어보았다.

 

"바투미 티켓!, What number?"

 

이 한마디만 하면 되었다. '바투미 가는 표를 구하고 싶다. 몇번 창구로 가면 되는가'라는 정도의 의미로 말한 것이다. 상대의 영어가 능숙하지 못할 때는 핵심만 이야기하면 된다. 일이 잘 되려고 했는지 이 아줌마가 나보고 따라 오라는 것이다. 나는 아줌마를 따라 역 바깥으로 나갔는데 놀랍게도 기차역 한쪽 구석에 또 다른 매표소 창구가 있는 것이다.

 

"Batumi or Vale" 정도로 종이에 써서 창구 직원에게 보였더니 친절한 여자 아줌마 직원은 모두 "풀"이라고 이야기를 해왔다. 그리고는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Sold Out! August 10"

 

8월 10일까지 발레행 기차와 바투미 행 기차는 표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차표 사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다시 대합실로 들어왔더니 바쿠에서 넘어온 청년들은 그때까지도 매표소 창구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티켓 발매 상황을 이야기해주고 난 뒤 나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로 했다.

 

기차표가 없다면 바투미로 가는 장거리 버스표라도 빨리 구해야 한다. 그게 조지아 공화국에서 속히 빠져 나가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과연 바투미 가는 버스가 있기나 한 것일까? 나는 괜히 마음이 바빠지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