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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6 동남아시아-여행자의 낙원(完)

치앙라이 - 보석을 찾아서 2

by 깜쌤 2006. 11. 18.

 치앙마이치앙라이는 서로 다른 도시다. 치앙마이는 태국 북부지방 최대 도시이고 치앙라이는 치앙마이에서 다시 버스로 3시간 정도 더 가야하는 산악도시인 것이다. 이젠 서로 구별이 되지 싶다. 우리는 지금 치앙마이 기차역에 도착한 것이다.

 

며칠 뒤 치앙마이에서 자유중국 타이페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하므로 우리는 먼저 치앙라이를 다녀오기로 했다. 마지막 도시를 비행기가 이륙하는 곳으로 정하는 것이 여행의 순리가 아니던가?

 

 

 치앙마이 기차역 대합실 한구석에는 여행자를 위한 멋진 안내소가 있다.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해주기도 하는 곳인데 우리도 당연히 여기에서 참고자료를 얻었다. 자세히 보니 삐끼들은 역구내로 못들어오게 경찰이 통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자료를 구해서 역밖으로 나가려고 하니 우리를 노리고 있던 썽태우 기사가 덤벼들었다. 그래서 재빨리 대합실 안쪽으로 다시 들어오고 만다. 삐끼들이 그런 동작을 하는 우리를 보고 웃음을 터뜨린다.

 

"나도 이젠 그 정도는 알고 산다네. 삐끼 양반들~~"

 

삐끼들 출입은 경찰들이 제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옳은 일이다. 손님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한 세심한 배려가 아니던가?

 

 

 

 치앙마이 기차역으로 나온 우리들은 일단 썽태우를 타고 치앙마이 아케이드로 가기로 했다. 치앙마이 아케이드란 치앙마이 장거리 버스 정거장을 의미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그렇게 부른다.

  

 

 썽태우 기사와 교섭한 우리들은 도합 100바트를 주기로 하고 썽태우를 탔다. 치앙마이 아케이드로 가는 것이다. 여기 치앙마이 지방의 썽태우는 거의 모두 다 붉게 칠해서 구별하기가 쉬웠다.

 

 

 썽태우를 뒤에서 보면 이런 모습이다. 운전수 옆 조수석에 앉아도 되지만 보통은 뒤에 탄다.

 

 

 치앙마이 아케이드에 온 우리들은 대합실로 들어갔다. 일단 화장실도 다녀오고 버스표부터 구해야하기 때문이다. 치앙마이 아케이드 외관은 보라색으로 칠해두어서 별스런 느낌이 들었다.

 

 

 

 표를 사서 나가면 버스를 타는 곳이 보인다. 버스 터미널의 구조라는게 모두 비슷한 것이 아니던가?

 

 

 이른 아침이다 싶은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줄을 서서 표를 구한다. 치앙라이행 대형 에어컨버스는 아침 8시 반에도 있고 9시반에도 있었는데 8시반차는 여분의 좌석이 별로 없어서 9시 반차를 타기로 했다.

 

요금은 180바트니까 5500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 만약 당신이 방콕에서 버스를 탔다면 거의 예외없이 치앙마이 아케이드에 도착할 것이다. 여기에서 시내 중심가까지는 약 3킬로미터 정도 된다고 하니 걸어갈 생각을 하지 말고 대기하고 있는 붉은 색 썽태우를 타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할 것이다.

 

교섭이 잘 안되어 성질이 팍팍 오르면 걸어가도 된다. 물론 쌍소리를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열대지방의 뜨거운 햇볕 속에서 걸어보면 땀범벅을 하게되고 얼마 안있어 신경질이 저절로 나게되어 있으니 욕설은 덤으로 술술 나올 것이다.

 

  

 표를 구하고 나니 약 한시간 가량이 남았다. 그렇다면 어디가서 국수라도 한그릇 먹고 가는게 낫다. 안그러면 멀미를 할 수도 있으니까..... 빈 속으로 버스타서 고생할 일이 있을까?

 

 

터미널 건물 바깥으로 나간 나는 국수를 한그릇 사먹고 들어온다.

 

 

우리 일행 두사람도 국수를 후딱 해치우고 들어간다. 시간이 디어 개찰을 하고 나가보니 버스 짐실이칸이 벌써 만원이다. 할수없이 우리는 버스 뒤쪽 문을 열고 배낭을 올렸다. 제일 마지막 좌석 뒤에 짐을 쌓아두는 것이다. 대형버스여서 그런지 안에는 화장실까지 있다. 9시반이 되자 버스는 출발했다. 이젠 태국의 북단 치앙라이로 가는 것이다.

 

우리 좌석은 버스 제일 뒷쪽이었는데 우리팀 청년의 좌석에 어떤 여자가 앉아서 백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청년과 이야기를 심각하게 나누는 것 같아서 내가 끼어 들었다.

 

"아, 저는 말이죠, 치앙라이까지 가는데 제 좌석은 저어기 앞자리입니다. 잠시 이 아가씨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어서 여기 앉아있는데 한 15분 정도만 봐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나는 우리 청년에게 물어보았다. 물론 그는 찬성이다. 더구나 백인 총각의 좌석이 앞쪽이어서 멀미 할 일이 없으니 더욱 더 잘된 일이다.

 

"예,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말입니다, 우리도 치앙라이까지 가므로 쭈욱 이야기를 나누며 가시지요."

 

 

 

 평지를 달리던 버스는 한 20여분 뒤부터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강원도 여름 경치를 생각하면 거의 틀림없다. 먼 산에는 비구름이 걸려있고 골골마다 안개가 솟아 오른다. 확실히 태국 북부는 안개가 솟아오르는 지역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론리 플래닛의 표현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내 뒤에 앉은 여자는 스페인 출신이고 남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이다. 여자는 스페인식 영어를 구사했고 남자는 정통 영어를 구사하는 것 같았다. 대화는 주로 카르마와 윤회 뭐 이런 것이다. 여자는 불교 철학에 아주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런데 얘네들은 약 3시간 가량을 줄기차게 떠들었다. 괜히 자리를 바꿔주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줄기차게 이야기를 나누어갔다.

  

  

 두시간 가량을 달린 버스는 벌판으로 내려와서야 비로소 휴게소에 들러 쉬기 시작했다. 계속 산중으로만 달려서 그런지 색다른 맛이 난것까지는 좋았다.

 

중국 남부 징홍(=경홍)에서 라오스 국경을 넘을 때 하루종일 버스 안에서 줄기차게 달려본 적이 있다. 그때의 경치와 여기 경치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라오스의 옛 수도인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엥까지 달리는 버스는 산마루로 이어진 도로를 달렸다. 하루종일 산꼭대기로만 달렸던 경험은 흔하지 않았던 일이기에 그때의 추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도 여기는 버스가 좋아서 편안하기나 했지만 라오스에서의 종일 버스 이동은 싸구려 구닥다리 버스로 한 것이어서 고통이 심했었다. 한 이십여분 가량 쉬면서 원기를 회복한 우리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을 계속했다. 내 뒷자리 아가씨와 젊은 총각은 계속해서 윤회와 카르마 이야기를 해댔다.

 

 

 

 휴게소 뒤로 펼쳐진 건물은 60년대의 우리나라 시장 건물과 똑 같은 모습이다. 양철 지붕이 오랜 세월에 사그라져가면서 진한 나무색으로 녹이 슬어가고 있는 저런 모습은 이제 추억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스크림과 청량음료수를 파는 냉장고 옆에는 삶고 있는 옥수수 통에서 새어나온 수증기가 칙칙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쪽에는 소세지 비슷한 것을 불에 굽기도 했고......

 

 

 

 우리가 탄 버스 속에는 백인 손님들이 많았다. 승객의 반 이상이 백인 관광객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한시간 가량을 더 달려서야 버스는 너른 평지로 나올 수 있었고 이윽고 저 멀리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아늑한 느낌이 나는 치앙라이에 도착했던 것이다. 

 

약 세시간 반가량이 걸린 셈이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들은 짐을 찾아내리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드디어 치앙라이까지 온 것이다. 참 오기도 많이 왔다. 계속 북으로 달리면 국경을 넘어 미얀마를 지난 뒤 곧 이어 중국 남부 시상반나 지방에 이를 것이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그런 여행을 한번 해보련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간다는게 정말 너무 아쉽기만 하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으니 이젠 우리가 묵을 호텔을 구해야 한다. 세사람을 터미널에 남겨두고 두뇌회전이 빠른 청년을 데리고 게스트하우스 탐색 작전에 나섰다.

 

론리 플래닛에 의하면 도시 북쪽을 흐르는 강 부근에 게스트하우스들이 몰려있다고 나와있지만 터미널 부근에도 호텔들이 모여 있는게 정상이 아니던가?

 

 

 

 터미널에서 나와 왼쪽으로 모퉁이를 돌자 시티홈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룸렌트라고 했으니 방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게스트하우스가 의외로 깨끗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찾아가 보았다. 내 짐작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널찍한 공간속에 더블베드가 있고..... 침대 위에 놓여져 있는 공책이 내 일기장이다.

 

 

 

 에어컨과 선풍기, 텔레비전과 욕실이 있는 방이 300바트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방 3개를 빌리기로 했다. 일인당 6000원 정도면 묵을 수 있다는 말 아니던가?

 

 

 

 욕실도 넓고 깨끗했다.

 

 

 옷장도 있으니 금상첨화다. 돌아나온 우리는 일행을 데리고 가서 체크인을 했다. 확실히 우리는 하는 일이 잘 되는 팀이다. 게스트하우스 입구를 보니까 레바논 식당이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점심은 태국에서 중동 스타일로 즐겨보리라. 나는 우리 일행을 꼬드겨 레바논 음식을 먹기로 했다. 태국 북부에서 중동 스타일의 음식을 먹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만 여기가 그 유명한 치앙라이가 아닌가?

 

"일구야, 치앙라이에서 안되는게 어디있니?"

 

나는 졸지에 웃찾사에서 어느날 갑자기 뜬 개그맨 오해성씨가 된 기분이다.

 

 

 

 테이블 수는 적지만 일단 들어서고 보니 내부가 아주 깔끔했다. 태국인 젊은 부부가 경영하는데 요리사가 레바논 사람이었다.

 

 

 

 주인의 양해를 얻어 내부 사진을 찍었다. 디자인과 색감이 보통 넘는다.

 

 

 

 어쭈구리? 제법이다. 진한 밤색 의자와 탁자가 귀품을 풍긴다.

 

 

 

 도로쪽으로도 탁자를 놓아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잡았다.

 

 

 

 우린 지금 안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 탁자는 도로쪽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고.....

 

 

 

 입구에 레바논 음식이라고 크게 표시를 해두었다. 치앙라이 가시거든 한번 들러보기 바란다. 터미널 부근에 있으니 찾기도 쉬울 것이다. 노바(=초신성) 레스토랑이다. 음식은? 다음 편을 기대하시기 바란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