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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6 동남아시아-여행자의 낙원(完)

콰이강을 찾아서 1

by 깜쌤 2006. 10. 18.

 혹시 행진곡 가운데 경쾌한 휘파람이 들어가는 곡을 아시는가? 어지간한 분들은 거의 다 아시지 싶다. 학교다닐 때 아침 조회시간이나 전체모임 시간이면 울려퍼지던 음악이니 모르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지경이다. 이름하여 "콰이강의 다리"라는 곡을 말한다.

 

이제는 죽고 없는 배우들, 이를테면 윌리엄 홀든, 잭 호킨스, 알렉 기네스 같은 분들이 공연한 영화인데 이제는 명작 비슷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 영화의 배경이 되는 강과 다리가 바로 지금 우리가 가고자 하는 도시 칸차나부리(깐짜나부리)에 있는 것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데이비드 린 감독이 만든 영화이니 작품성은 충분히 인정된다. 칸차나부리는 담넌사두악에서 약 두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다. 방콕에 머물게 되면 하루 투어 일정속에 꼭 포함시킬 정도로 유명한 관광명소여서 한번 가보기로 한 것이다.

 

사실 나는 이번에 가면 3번째 방문이 된다. 그러니 안가도 되지만 동행한 사람들을 위하여 가는 것이다. 거길 보고 나서는 방콕으로 갈 생각이다. 그런데 담넌사두악에서는 똑바로 가는 직행버스가 없단다. 그러니 반페(방페)라는 곳까지 가서 내린 뒤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버스를 타고 기분좋게 갔다. 마침 버스 안에서 예쁜 아줌마를 만났는데 칸차나부리를 간다는 것이었다. 어설프지만 영어를 대강 할 줄 알아서 같이 내리기로 했다. 한참을 졸고 있다가 차장이 내리라는 신호를 보내기에 엉겁결에 내려서 짐칸에서 배낭을 꺼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배낭을 헤아려가며 짐을 건내주는데 다섯번째 받는 손길이 없다.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들어 확인을 해보니 청년 하나가 안보였다. 이럴리가 없다. 버스 안에 뛰어올라가서 살펴보았더니 이 친구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여보게, 내려야지."

 

흔들어 깨워서는 황급히 내렸고 버스는 이내 출발했다.

 

"에이, 저도 데려가야지 남기고 가시면 어떻합니까? 제발 좀 대한민국까지 잘 데리고 다니셔야지요." 

 

덕분에 한바탕 웃고 만다. 서로 배꼽을 잡아가며 웃었다. 그렇다, 서울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같이 가야한다. 헤어지면 찾을 길이 없는 것이다. 길가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다가 버스에서 만난 곱상한 아줌마와 함께 칸차나부리행 버스에 올랐다.

 

 

 

한시간 가량도 안달렸으리라. 저 멀리 약간 뾰족한 산봉우리들이 보이며 이내 칸차나부리가 나왔다. 버스에서 내려 아줌마와 이별을 한다. 우리는 다섯명인데다가 여러가지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므로 호텔을 찾는 것은 쉽다.

 

일단 론리 플래닛을 펴서 콰이 강가에 있는 퐁펜 게스트하우스로 가보기로 했다. 썽태우 기사와 교섭하여 일인당 10밧(1바트(=)는 약 30원)을 주기로 하고 썽태우를 탔다. 퐁펜게스트 하우스를 가보니 백인들이 바글거린다. 강가에 있어서 분위기는 좋다.

 

에어컨 방이 하나뿐인데다가 500바트라는 거금을 불렀기에 묵느냐 마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의논을 하고 있는데 객실 담당 아줌마는 마침 찾아온 백인 커플들에게 방을 주어버리는게 아닌가? 

 

우리가 의논을 하는 것을 보면서도 백인들에게 주어버리는 그 처사가 괘씸해서 그 집에는 머물지 않기로 했다. 미련없이 배낭을 매고 나왔다. 게스트하우스는 부근에 널널한 줄을 알고 있으므로 이럴때는 우리가 유리하다. 더구나 아직 한낮 아닌가?

 

이번에 찾아간 곳은 론리 플래닛에 나온 샘스 하우스였다. 역시 강변에 자리잡은 곳인데 이 집은 정원의 숲이 아주 울창하다. 컴컴하다는 기분이 들 정도인데 방은 조금 후지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풍이 있는 방 한칸이 150바트란다. 방 3개를 사용하기로 했다. 일행들이 나는 독방을 쓰라고 배려해준다.

 

일단 배낭을 던져 놓고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콰이강과 철교를 보는게 오늘의 목표이므로 도로를 따라 콰이강쪽으로 올라가본다. 걸어 가면서 도로 양쪽에 좌악 깔린 레스토랑을 훑어보다가 그런데로 괜찮아 보이는 가게를 찾아 들어가서 점심을 시켰다.

 

 

 점심을 먹으면서 보니까 이 가게에도 여장을 한 남자 종업원이 있다. 제법 예쁘장하게 생긴 청년인데 영락없는 여자다. 이 나라는 왜 이런 남자들이 유달리 많은지 모르겠다.

 

종업들의 태도도 친절하고 복무 자세도 좋아보이기에 저녁에 다시 오고 싶었는데 나오면서 보니까 통닭 바베큐를 아주 그럴듯하게 하고 있는게 아닌가? 즉석에서 의논하여 저녁은 통닭 파티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6시에 먹으러 올테니 3마리를 잘구워 놓으라고 부탁한 뒤 전쟁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스 전쟁박물관은 이름 자체부터가 묘하다. Japan, England(영국), Austrailia(호주), Thailand(태국), Holand(화란, 네덜란드)의 앞머리 글자를 하나씩 따서 만든 글자가 바로 JEATH 박물관인 것이다.

 

세계 제 2차대전 당시  말레이지아와 싱가포르는 영국 영토였고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영토였고 일본은 침략국으로서 전쟁당사자였으며 태국은 일본 편을 들어 줄타기 외교의 진수를 보였으니 모든 당사국들이 다 포함된 이름이다. 

 

박물관 속에는 일본군의 만행을 나타낸 사실들은 즐비하지만 태국이 일본에 협력했다는 내용은 입을 싹 닦고 쏘옥 빼버렸다. 어찌보면 태국이라는 나라는 생존을 위해 교묘하게 처신을 한 것이므로 나무랄 처지도 못된다.

 

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서 서구열강이나 일본의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는 태국뿐이다. 그럴 정도로 태국은 동남아시아의 강국이었으며 외교의 대가였고 생존술의 도사인 셈인데 우리는 그런 것도 잘 모르고 은근히 후진국 취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태국은 그리 만만한 나라가 아닌 것이다.

 

입구 부근에는 2차대전 당시 운행하던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 태극기가 약간은 후줄근한 모습으로 매달려 있었다. 국기 상태로 보면 다른 나라 깃발도 다 같은 모습이어서 위안은 된다. 한국 국기가 열강 국가들 국기 속에 떠억 버티고 서 있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들이 여기에 많이 몰려 온다는 뜻이리라.

 

 

 

 태국, 버마(=미얀마) 간의 철도 건설을 위해 사용된 기차라는 안내문이 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도 한대 전시되어 있다. 무슨 외교관이 탔다고 하던가? 아니던가?

 

 

 

 이런데서 태극기를 만날 줄이야..... 여기 걸린 국기는 산뜻했다.

 

 

 

 들어가는 건물 벽면에는 태국의 전통 무기들이 그려져 있었다. 약간은 조잡스러워 보인다.

 

 

 

 궁금증을 가지고 일단 강변으로 가보면 바로 철교가 보인다. 바나나 이파리 사이로 보이는 철교가 콰이강의 다리인 것이다.

 

 

 

 전쟁때 사용된 포탄이 진열되어 있다. 엄청 크다.

 

 

 

 태국의 철도는 표준궤가 아니다. 표준궤도를 쓰는 우리나라보다 폭이 좁은 협궤 철로를 가진 나라가 태국이다. 그러므로 얼핏 봐도 철도시설물은 모두 다 조금 작아보인다.

 

 

 

 이 철도가 2차대전 당시 실제 콰이강에 놓여진 철도라고 한다. 연합군 포로들의 땀과 눈물과 한이 담겨진 철길인 셈이다. 포로에 대한 처우를 잘 모르던 야만적인 일본군이었으므로 포로 학대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힌다는 것은 수치였으며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자기들이 잡은 연합군 포로를 인간적으로 대접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었다.

 

2차대전 당사자였던 소련도 그런 면에서는 일본과 막상막하를 이루었던 모양이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고귀함을 무시하던 나라들이었으니 포로를 죽이고 처벌하는 것은 승리자의 권리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러니 포로들을 동원하여 철도를 건설한다는 구상을 할 수 있었고 실제로 행동에 옮겼던 것인데 바로 그 증거가 태국과 미얀마를 연결하는 철도 건설이었던 것이다.

 

 

 

 

이 지도속에는 태국의 칸차나부리에서 미얀마로 가는 철도 노선이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 이 철도 건설에 연합군 포로들이 동원된 것이다. 일본군은 2차 대전 당시 미얀마의 임펄이라는 도시까지 진격을 했었다. 오늘날의 방글라데시 부근이라고 보면 된다.

 

동남아시아를 석권한 일본군은 임펄에서 영국군에게 패배당함으로써 인도 침략의 야욕을 접어야 했던 것이다. 칸차나부리는 그런 의미가 담긴 도시이다. 사실 우리와는 거의 상관이 없는 도시인 것 같지만 어쩌면 우리나라 위안부나 노무자가 여기까지 끌려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태국 남부에서 발견된 노수복 할머니는 오늘날의 싱가포르에서 위안부로 있었지 않은가? 그 분은 말레이지아를 거쳐 태국 남부에 정착했었고 이국(異國) 하늘에서 한많은 일생을 마쳤던 것이다. 그런 사례로 보아서 우리가 모르는 숱한 조선인의 눈물이 여기 칸차나부리에 배여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전쟁포로는 POW라고 한다. 사진을 잘 보면 원어가 있으므로 읽어보시기 바란다. 어떤 여행기를 보면 이 철도를 건설한 사람들을 UN군이라고 기록해둔 분들도 있는데 그것은 착각이다.

 

 

 

 유엔 자체가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만들어 진 것이므로 착각을 하는 것이리라. 연합군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강변에 서서 보면 강과 철교가 보인다. 현재 눈에 보이는 철교를 콰이강의 다리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철교는 여기 하나만 건설된 것이 아니다. 강 이름도 현지 사람들은 라는 발음과 비슷하게 소리를 내는 모양이다. 콰이는 와전된 영어식 표기라고 한다.

 

 

 

 이따가 우리는 저 다리 위를 걸어서 건널 생각이다. 연합군 포로의 심정으로 말이다.

 

 

 

 

 

 전시물 가운데 실물 모형은 상당히 조잡한 수준이지만 참아가며 볼만하다.

 

 

 

 일본군의 모습이다.

 

 

 

 여러 나라 군대의 철모들이고...... 이 철모를 썼던 분들은 이제 거의 다 고인이 되었으리라...... 

 

 

 

 

 

 

 

 

 

 

  콰이강 위에는 음식점과 숙소로 쓰이는 건물이 몇채 떠 있다.

 

 

 

 강에는 수초가 그득했다. 강물은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맑았고......

 

 

 

 타이프라이터를 본다. 이런 물건들은 이제 골동품이 되었다.

 

 

 

 방명록 한가운데 글을 쓴 분은 자기 할아버지 되는 분이 여기서 목숨을 잃은 것 같다. 태국은 이런 자원까지도 모두 다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 칸차나부리에 가보신 분은 알겠지만 도시 전체에 몰려든 백인들 숫자만 해도 이루 헤아릴길이 없을 정도로 많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은 어떤가? 한국전쟁 당시 참가한 나라들은 유엔군만 해도 16개국이다. 그렇다면 잠재적인 관광객만 해도 엄청나지 않은가? 좁은 안목과 편협된 시각을 가진 자들이 큰 목소리를 내는 나라는 불행한 나라다.

 

 

    

 

 

 

 밖으로 나오면 거대한 상가가 우리 앞을 가로 막는다. 여기에도 중국 화교들이 판을 치는 모양이다. 돈이 모이는 곳에 중국인이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중국 음식점이 있듯이......

 

 

 

 콰이강의 철교가 있는 다리 부근 상가에는 어머어마한 숫자의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제 다 왔다. 우리는 한 15분 정도 걸었던가 보다. 숙소에서도 가까운 거리다.제스 박물관에서는 3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드디어 철교위에 올라가 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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