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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싱가포르를 찾아서(未完)

군대도 얻어터지는 나라가 있다는데....

by 깜쌤 2006. 7. 15.

나라나 어떤 개인에게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일이 발생해도 그 사건이 황당한지도 모르고 어처구니없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면 그 개인이나 나라의 운명은 이미 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칭 타칭 동방예의지국에서 이제는 동방무례지국으로 전락했다고 욕을 얻어먹어도 크게 반박할 여지가 없게 되어버린 지구 동쪽에 있다는 어떤 나라에서는 올해에 군대가 민간인 데모대에게 얻어터지는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세상에나......  국가의 안녕과 영토보전, 국가방위를 위해 복무중인 군대가 데모대에게 맞서다가 얻어터져야 하는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원인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꼴이 한심하다 못해 분통이 터지고 허탈하다 못해 실소가 새어 나올 지경이다.

 

 

 

그쯤하고 싱가포르에서 일어났던 유명한 마이클 페이(Michael Fay) 사건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다 아시는 이야기여서 새삼스럽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렇긴 하지만 싱가포르에 관련된 이야기이니까 꺼내보는 것이다. 1993년, 미국국적을 가진 열다섯살의 마이클 페이는 싱가포르에 있는 미국인 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모양이다.

 

세계를 지배하고 호령하는 나라의 백성인지라 눈에 뵈는 게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페이는 싱가포르 알기를 아주 우습게 알았던 모양이다. 미국에서부터 약물남용에 빠져서 부탄가스 정도는 상습적으로 흡입하고 있었던 비행청소년 마이클 페이는 그 버릇을 못 고치고 싱가포르에서 자기 편한 대로 개차반 같은 행동을 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순 장난으로...... 이쯤에서 돌발 퀴즈를 낸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흔히 써먹는 이야기다.

 

"63빌딩 옥상에서 낙하산 없이 다이빙해도 죽지 않는 세 종류의 인간들이 있다는데 누구누구일까?"

 

이런 식으로 물어보면 별별 대답이 다 나온다. 내가 주로 상대하는 대상은 열둘열셋 먹은 어린아이들인지라 그들 나름대로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대답을 한다고 하지만 대답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한계를 넘을 수 없는 것이다. 정답은 아래와 같다. 새 버전은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고 하던데 오늘따라 기억이 안난다. 나도 청문회에 나오는 어느 나라의 높으신 나으리들과 엄청 많이 가진 분들을 슬슬 닮아가는 모양이다.

 

1) 날라리 2) 제비족 3) 비행청소년

 

 

 

마이클 페이는 비행청소년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홍콩국적을 가진 친구와 함께 거리에 주차되어 있는 20여 대의 자동차에 스프레이를 뿌려 낙서를 하는 것도 모자라서 벽돌로 차 유리창을 때려 부수고, 자동차 터이어에 구멍을 내기도 했다. 그 정도는 미국에서 보통으로 하던 짓거리였던 모양이다. 아니면 백인인종차별주의자들이 흔히 내뱉는 말대로 노란 원숭이 떼(=황인종)들이 바글바글 모여 사는 싱가포르에서는 그런 짓을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도 모른다. 페이의 표현을 빌리면 순전히 장난으로 했다고 한다.

 

페이는 심지어는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까지 떼어내서 찢어버리고 ,불태우기까지 했다. 싱가포르 경찰에 걸려든 그는 당연히 체포되었는데 문제는 싱가포르 사법당국이 그에게 태형 6대와 4개월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는 것이었다. 태형이란 쉽게 말해 곤장을 치는 정도의 벌이다. 옷을 벗겨놓고 곤장으로 때리는 것이니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야만적인 처벌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요즘은 학교에서도 아이들을 못 때리게 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가 나서서 형벌의 일종으로 곤장을 치는 것을 허용하는 나라가 있다는 것이 미국 입장에서는 심히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자기나라 백성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기를 쓰고 나서는 미국인지라 당시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까지 나서서 싱가포르의 대통령이었던 옹텡청에게 페이를 선처해 달라고 호소 아닌 호소를 하기도 했던 것이다. 

 

 

 

당연히 미국 언론들의 싱가포르 비난도 이어졌다. 세계적인 영행력을 지닌 뉴욕타임스까지 나서서 태형제도의 야만성을 들고 나왔지만 싱가포르 당국의 반응은 그야말로 요지부동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터넷 자료를 검색해 본 결과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에 싱가포르 보건정보예술장관이었던 조지 예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만일 우리가 미국의 매스미디어 또는 미국정부의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가 싱가포르를 통치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우리는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웃음거리가 돼버릴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1994년 4월, 싱가포르 정부는 기어코 마이클 페이에 대한 태형을 단행하고 만다. 빌 클린턴까지 나서서 떠드는 미국 정부의 체면을 위해 '6대'에서 '4대로' 감형해 주는 선심을 베풀기는 했지만 어쨌든 법을 법대로 집행했던 것이다. 

1999년에는 우리 한국인 관광객 한사람도 성희롱죄에 걸려 태형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 2005년에는 베트남계 호주 청년이 일정량 이상의 마약을 소지한 죄목으로 싱가포르에서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이때도 오스트레일리아 여론은 들끓었고 호주 수상까지 나서서 선처를 호소했지만 결과는 사법 당국의 선고 그대로였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법 집행의지 덕분에 싱가포르 정부의 위상은 하늘로 치솟았고 법은 법대로 엄격하게 집행한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 줌으로써 싱가포르를 만만하게 볼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나는 이런 사건 속에서 드러나는 중국인 특유의 통치술과 백성들의 심성과 사회 저변 속에 흐르는 법가(法家) 사상을 주목해보기도 한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싱가포르는 그런 나라다. 백성들의 불만도 있고 비인간적이라는 비판도 만만찮게 존재하는 나라지만 어쨌거나 그리 호락호락한 나라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적어도 군대나 경찰이 데모대에게 함부로 얻어터지는 그런 나라가 아님은 확실하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