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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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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영상수필과 시 1 Photo Essay & Poem

어차피 혼자 걷기 4

by 깜쌤 2006. 5. 6.

 

학교를 나온 뒤 예전 살던 산너머 동네로 발길을 돌려 보았습니다.

1960년부터 살았던 곳입니다.

 

 

 

 

 

 

5,6학년 때는 아침마다 우체국에 들러서

소년한국일보를 얻어 보기도 했습니다.

도시아이들의 생활 모습이 그렇게도 신기했습니다.

 

 

 

4학년때 친구를 따라서 다녀 본 교회 건물이

이젠 폐허로 변했습니다.

새로 좋은 장소로 옮겨가고 남은 터를

누가 창고로 쓰는가 봅니다.

 

 

  

 

떨어져 내린 회 밑으론 흙벽돌이 속살을 드러냈습니다.

 

 

 

 

 

출입구가 두개인 것은

남녀용 출입구가 달랐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왼쪽이 남자용이었지 싶습니다.

오른쪽 입구엔 장작이 쌓여져 있었습니다.

 

 

 

 

 

 

교회를 나와서는 고개를 넘어갑니다.

저 고개를 넘어 와서 학교를 갔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살았던 동네는 고개 넘어 있었던 셈입니다.

돌멩이 투성이였던 길이

이젠 깔끔하게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었습니다.

 

 

 

 

 

길가집 툇마루엔 먼지가 소복했습니다.

이 집 식구들도 모두 떠나버린 것일까요?

 

 

 

 

 

도로 옹벽엔 모진 목숨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길래 잡초같은 목숨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고개를 넘다말고 뒤를 돌아봅니다.

그러고 보니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습니다.

 

하루걸이라고 불렸던 말라리아에 걸렸어도

금계랍이라는 약도 못 먹던 어느날,

너무 많이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는 학교에서 조퇴를 하고

고개를 넘다가 여기쯤에서 바위 위에 쓰러져

두서너 시간을 잤습니다.

지나가던 아줌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집을 묻던 것이 생각납니다.

 

 

 

 

 

저기 밑에 우리 동네가 있었습니다.

이젠 민가가 하나도 없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시커멓게 산처럼 솟아오른 것은 철도용 자갈입니다.

 

 

 

 

동네에서 제일 잔 산다고 소문이 났던 집도

이젠 폐허로 남았습니다.

나는 이 집에 놀러가서

처음으로 책상시계라는 물건을 보았습니다.

그게 4학년 때의 일이지 싶습니다.

 

 

 

 

 

 

제일 아랫방엔 정신이 이상해진 분이

갇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다가

머리를 다쳐서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했습니다.

 

어떤 날은 그분이 지르는

이상야릇한 괴성이 울려나오기도 했습니다.

 

 

 

 

 

 

몇집 안되는 작은 동네였어도 아이들은 많았습니다.

이집 뒷간에 감나무가 있어서

감꽃이라도 주워 먹으려고 자주 들락거렸습니다.

 

 

 

   

 

 

나보다 더 먼 곳에 사는 친구들은 이 길을 따라 갔습니다.

단발머리에 책보자기를 허리에 묶고 다녔던

여학생들도 생각납니다.

 

초등학교 졸업후에 정신 이상이 되어 열 몇살에 죽은 친구도

이길을 따라 집으로 갔습니다.

정말 보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을 하자말자

철도용 자갈 채취장에서 일해야했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자갈 채취장으로 인해 마을도 다 사라지고,

상승기류를 타고 까마득한 하늘 위를 맴돌던

매들도 이젠 다 동네를 떠나갔습니다.

 

내가 살던 집터는 흔적도 없이 자갈더미에 묻혀버렸습니다.  

 

 

 

 

기차가 도착할때마다

사람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던 정거장엔

고요함만이 손님 대신 자리를 차고 앉았습니다.

 

 

 

 

 

플랫폼을 구분지은 측백나무 너머로는 내성천이 흐릅니다.

저 멀리 보이는 학가산 꼭대기에는

밤마다 불빛이 반짝였습니다.

 

 

 

 

 

 

간이역이 되어버린 정거장이지만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역무원 한분과 이야기를 나누어봅니다. 

차한잔 하고 가라며 권해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기가 뭣해서

밖에서 커피를 한잔 얻어마셨습니다.

 

그저 사람사는 세상은 정이 최고입니다.

 

 

 

 

 

역사 옆 빈 공간에서는

일요일 아침마다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

체조를 하고 놀기도 했습니다.

 

화단 돌틈엔 땅벌이 살았기에 모르고 다가갔다가

쏘여서 눈두덩이가 감기도록 부어 오르기도 했습니다.

 

약이 오르자 아이들이 가마니를 덮어쓰고 가서

벌이 쏟아져 나오는 구멍에다가

불붙은 나무가지를 쑤셔넣기도 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겁많은 나는 숨어서 보기만 했습니다.

 

 

 

 

 

볼 책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심심했던 나는 뭐든지 다 외웠습니다.

동네 어른들 성함도 다 외우고 기차 정거장 이름도 외우고

나라 이름도 외우고

한번도 가보지도 못한 나라의 수도까지도 외우고 다녔습니다.  

그게 재산이 되어 지금처럼 돌아다니는가 봅니다.

 

그땐 역무원 아저씨가 

이 쇳덩어리를 들어올려 철길을 바꾸는 것을 보고

너무 신기해 했습니다.

 

 

모퉁이를 돌면 곧 굴이 나왔습니다.

 

 

 

 

 

 

 

끝이 빤히 보여도 너무 길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사는 인생길 같습니다.

죽음 저 편에 무엇인가가 틀림없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몇몇 친구는 산을 넘어 집으로 달음박질쳐서 갔습니다.

그날이 어제 같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