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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5 유럽 남동부-지중해,흑해까지(完)

터키 헤매기 24 - 에베소 5

by 깜쌤 2006. 4. 29.

누가의 무덤은 엉망으로 흐트러진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터키 내의 유적이 워낙 많아서 그럴까 아니면 관심이 부족해서 그럴까?  그도저도 아니라면 의도적인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세가지가 다 합해져서 그런 것 같다.

 

 

 

누가의 무덤을 나온 우리는 다시 도로를 건너 에베소 유적지 입구쪽으로 옮겨갔다.

 

 

입구에는 관광객들을 시내까지 실어나르는  마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이므로 이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셈이다.

 

 

도로 양쪽으로는 초라한 기념품 가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물건은 약간 조잡스럽다.

 

 

전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곳이므로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입장권을 샀다. 군인들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경비를 서기도 한다. 이제 본격적인 유적지 관람에 들어가는것이다. 에베소에 사람들이 처음 정착한 것은 아득한 옛날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의하면 카리아 사람들이 제일 먼저 여기에 거주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며 살았다고 한다.어떤 사람들은 여기 이도시 최초의 건설자는 아마존들이라고도 한다. 아마존이라면 여인왕국을 건설한 사람들이 아니던가?

 

피온산 기슭에 세워진 이 도시는 기원전 6세기경에 이미 번창한 도시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소나무 가지 뒤로 보이는 이 산이 피온산이다.

 

 

사진에 보이는 산이 바로 피온산이다. 이 산 기슭에 작은 연극장이 자리잡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 도시를 방문했을때도 상당히 번창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도시 자체의 역사는 아주 오래 된 것이 틀림없다.

 

지금 보는 바로 위 사진은 오데움(=Odeum)이다. 작은 극장이라고 보시면 된다. 여기 에베소에는 이것 말고 대극장이 따로 있다. 이 극장의 조성시기는 서기 150년경부터라니까 대단하다. 약 1400여명이 들어가 앉을 수 있다는데 주로 연극공연이나 음악회 그리고 시의회 모임시 토론 장소로 쓰였다고 한다.

 

대극장은 헬라시대 때부터 있었다니까 상당히 오래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도시를 만들면서 야간에 연극을 공연할 오락시설을 고안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연극을 위한 극장이었다고 한다. 그들에게 연극은 신에 대한 의식이었다고 한다.

 

연극은 도시 국가 폴리스가 반드시 개최해야할 공적인 행사였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결국 연극장이 만들어지고, 음악당이 세워지는가 하면 경기장과 원형투기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작은 바위 덩어리에 오락용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오늘날 터키인들이 즐긴다는 오락과 비슷하게 보인다. 그런데 말이다, 그 놀이 이름이 생각이 안나서 서재에 있는 책 모두를 다 뒤졌다. 그래도 자료를 찿지 못했다. 덕분에 아침에 쓰던 글을 밤중인 아직도 쓰고 있는 중이다.  

 

 

돌 다루는 솜씨 하나는 기가 막힐 지경이다. 요철 부분에 다른 돌을 끼웠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장식용이었을까?

 

 

피온산 맞은 편에도 산이 있다. 발음이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뷜뷜(=코레소스)산이다.

 

 

우리들은 소극장 밑에서 음향 실험을 해본다. 마이크와 스피커가 없던 시대지만 소리 하나는 상충부까지 기막히게 깔끔하게 전달된다. 좌석 밑으로 토관을 묻어 소리가 깨끗하게 전달되도록 한 극장도 존재한다니 헬라인과 로마인들의 음향에 관한 지식은 상상을 넘어선다.

 

 

아래층 대리석으로 장식된 좌석들은 유지들이나 고위층들이 앉는 특별좌석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 팀은 무대에서 노래를 한번 불러 보았는데 백인 관광객들이 듣고 앵콜을 청해 왔다. 팀 멤버들 가운데 찬양단원 출신들이 조금 섞여 있어서 성부별로 노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지형지물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극장을 만드는 솜씨는 정말 대단하다.

 

 

위에서 보면 극장의 모습이 환하게 드러난다. 영화 <알렉산더>를 보면 헬라 스타일의 극장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립이 암살당하는 그 장면을 떠 올려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태양이 뜨거운데도 피할 공간이 없었다. 소극장을 내려온 우리들은 극장 앞으로 보이는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갔다.

 

 

극장 맞은 편에 있는 뷜뷜 산의 모습이다. 예전엔 이 부근 모두가 도시터로 사용되었던 모양이다. 에베소의 유적지는 규모면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에베소를 능가할 만한 곳은 폼페이 정도뿐이리라.

 

 

 

왼쪽이 뷜뷜 산이고 오른쪽은 피온 산이다. 그리고 저 멀리 작은 산봉우리 앞쪽으로 펼쳐진 평야쪽이 예전의 항구터이다. 이천여년 전엔 바다가 그 앞에까지 들어와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랬던 바다가 이젠 여기서부터 5킬로미터 바깥쪽에 물러가 있는 것이다.

 

 

대리석으로 바닥을 깐 골목길이 요리조리 나 있었다. 에베소는 환락과 상업의 도시로 유명했으니 이런 골목길이 어떤 모습으로 사용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대강 상상은 간다.

 

 

지진으로 무너져 내리고 약탈과 파괴, 방화로 얼룩진 도시라고는 하지만 남아 있는 기둥만 가지고도 번성했던 당시의 모습이 짐작은 된다. 길재 선생의 시조를 읊조린다면 이럴 것이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곳곳엔 터키어와 독일어 그리고 영어로 된 안내판이 서 있어서 보기에 편하게 되어 있었다.

 

 

 

햇빛에 지친 우리 일행은 모두 그늘에 들어가서 쉬고 있었다. 정말 뜨겁다. 그러므로 여름철에 에베소 유적지를 방문할때는 반드시 물을 준비해가시기 바란다. 물은 필수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이 에베소 도시의 중심가 격인 큐레테스 거리이다.

 

 

 

서기 13년 경에 만들어진 폴리오라는 양반의 무덤인 모양이다. 위의 사진 안내판을 찍어 본 모습이다. 시대적으로 보아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라는 건축가를 의미하는 모양이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져)와 아우구스투스 시대때 활약한 인물이니 어느 정도 들어맞지 싶다. 이 분은 인체를 기하학적인 모습으로 비유해서 유명해진 분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극장을 본 모습이다.

 

 

 

이런 아치들을 보면 당시의 도시 모습들이 대강 상상되지 않을까 싶다.

 

 

 

관광객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려 촬영해본 큐레테스 거리의 모습이다. 대리석 기둥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고 바닥은 돌로 포장되어 있었다. 예전엔 이 거리 좌우로 저택들과 공공건물들이 즐비했었으리라.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