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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5 유럽 남동부-지중해,흑해까지(完)

터키 헤매기 26 - 에베소 7

by 깜쌤 2006. 5. 1.

스콜라스티카 목욕장 옆에는 다시 하드리아누스 신전이 자리잡고 있다. 목욕장 부근에 기둥이 많이 있는 건물 부근이 아마도 사창가 건물이 아닐까하고 짐작한다고 한다. 바닥에서 발견된 모자이크 그림들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런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은 상상을 넘는 것이다. 무엇을 나타낸 것일까 싶어 요리조리 돌려봐도 짐작이 되지 않는다. 단순한 기하학적인 도형일까? 요즘으로 치면 야동(=야한 동영상)정도에 해당하는 춘화(春畵)도 있다고 하는데 내 눈이 엉성해서 그런지 눈에 띄지도 않는다.

 

 

재료는 색깔있는 돌조각일까? 아니면 타일일까?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스콜라스티카 목욕장 부근에 하드리아누스 신전이 있다. 로마시대엔 황제가 죽으면 원로원 결의를 통해 신격화 하기를 다반사로 했으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못된다.

 

둥근 아치가 하드리아누스 신전 입구임을 말해주는 유명한 걸작품이다. 서기 118년에 처음으로 하드리아누스와 아르테미스 여신, 그리고 에베소 사람들을 위해 헌납된 것이라고 하는데 5세기 경에 대대적인 보수를 했다고 전해진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서기 138년에 공사를 끝내고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봉헌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다. 앞쪽 둥근 아치를 받치고 있는 기둥은 코린트식 기둥으로 소문이 나있다.

 

그 뒤를 보면 사각형의 출입문이 있는데 위에 메두사의 머리 조각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잡귀의 출입을 막기 위해 배치했다고 한다. 지금 여기 붙어있는 것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셀추크 시내의 에베소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평생동안 로마제국을 순행하며 제국의 안전을 위해 동분서주한 황제로 소문난 양반인데 영국 북부지방까지 가서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건설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치 한가운데 조각상은 승리의 여신 니케(=나이키 NIKE)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치라는 저 건축기술은 정말 대단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한다.

 

저 육중한 돌덩어리들이 서로 교묘하게 맞물려 공중에 떠 있도록 짜맞추는 놀라운 재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조각의 아름다움은 또 어떻고..... 그런 건축물들이 2천년의 세월을 지탱해낸다는 것은 정말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하드리아누스 신전을 나오면 이제 바로 저 아래쯤에 켈수스 도서관이 다가 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쪼르르 내려가버리면 안된다. 이 부근에서 볼거리가 또 하나 더 남아 있다.

 

 

 

큐레테스 거리를 이제 거의 다 내려온 셈이다. 이제 이 거리를 다 내려와서는 왼쪽으로 꺾어 돌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드리아누스 신전의 모습을 더 소개해준다. 아치를 받치는 코린트식의 기둥과 뒤로 보이는 사각형의 신전입구가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

 

 

 

이 부근에 로마시대의 공용 화장실이 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이 화장실은 수세식이다. 구멍이 파져 있는 곳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대변을 본 모양이다. 그러면 그 밑을 흐르는 물에 의해 오물이 씻겨 내려가도록 된 구조라고 한다.

 

자리가 옆으로 쭈욱 이어진 것으로 보아 로마인들은 화장실을 토론 공간 정도로 생각한 것이 아닐까? 로마인들은 화장실에 앉아서도 철학을 논했던 그런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남녀노소가 연령불문하고 단체로 화장실에 앉아 사진 찍기도 처음이지 싶다.

 

 

사람들이 나오고 난 뒤 화장실의 모습을 새로 찍어 보았다. 수세식 화장실이므로 물이 흘러 들어오는 곳 부근의 자리가 화장실 요금이 비싸고 오물이 나가는 쪽은 요금이 헐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잘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아직도 곳곳에서 발굴 작업중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여기에서 안내착자를 사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을 사왔더라면 더 확실하게 이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을 가지고, 돈 몇푼 더 아낀다고 참고도서를 구해오지 않았으니 아직도 후회스럽다.

 

 

 

드디어 도서관 앞까지 내려왔다. 사진의 오른쪽으로 도로가 꺾여져 있다. 바로 아래 사진처럼 말이다.

 

 

길 끝 오른쪽에 거대한 벽돌 덩어리로 보이는 부분이 바로 대극장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설명드리겠다. 도로 왼쪽편으로 기둥이 늘어서 있는 곳이 바로 상업지구로 쓰인 아고라이다.

 

 

드디어 켈수스 도서관이 위용을 드러냈다. 한창 때는 보관도서 12,000권을 자랑했다는 대형 도서관이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다는 고대세계 최대의 도서관과 비교해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하여튼 대단한 유적지임에는 틀림없다.

 

 

우리가 걸어 내려온 큐레테스 거리의 모습이다. 큐레테스라는 말은 의식 행사가 있을 때 신전에 근무하는 부(副)사제들이 이 거리 양편에 줄을 지어 섰기 때문에 생긴 말이라고 한다.

 

 

이 위쪽으로는 귀족들의 거주 공간이었다고도 한다. 그러길래 평민들의출입이 금지되기도 했다고 하는데.....

 

 

켈수스 도서관의 이모저모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소개해 드리기로 하자.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