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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5 유럽 남동부-지중해,흑해까지(完)

터키 헤매기 22 - 에베소 3

by 깜쌤 2006. 4. 27.

아르테미스 여신상의 앞부분을 확대해서 본다. 어제 글에서 설명한 그대로임을 알 수 있다.

 

 

모두들 기념 사진을 찍고 난리가 났다.

 

 

도로를 건너 작은 언덕으로 오른다. 성 요한 예배당 폐허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이다. 성 요한 예배당 바로 밑의 폐허를 거닐다가 한바탕 울려퍼지는 풍악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 터키를 왔을때는 음악소리와 함께 행진하는 그런 행렬을 보고 너무 궁금해 했었다.

 

유태인들은 사내아기가 태어날 경우 생후 8일만에 할례의식을 베푼다. 회교도들은 좀 더 큰 후에 한다. 할례라는 것은 오늘날의 포경수술을 의미한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유태인들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과 나중 출애굽(=엑소더스) 이야기를 남긴 모세에게 명령하신 의식이기도 하다.

 

그만큼 할례의식은 중요시하는 것인데 회교도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아주 강하게 받았으므로 할례 의식에 깊은 비중을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내아이가 할례를 받게되면 온 동네에 알려서 아이가 어른이 되어감을 선포하고 축하를 받는 것이다.

 

심지어는 차를 빌리거나 해서 자동차에 태워 결혼식을 방금 끝낸 신랑신부가 탄 차처럼 꾸민뒤에 경적을 울리며 시내를 휩쓸고 다니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상당한 의미가 부여되는 재미있는 행사인 것이다. 

   

 

 

얘는 마차를 탔다. 돈 있는 집 아이라면 승용차를 타거나 트럭을 탔을지도 모른다.

 

  

터키 민족의 전통 의상을 입히고 금장식이 된 흰 모자를 쓰고 행진에 나섰다. 앞으로 어떤 인생이 기다릴지는 모르지만 아름다운 인생을 살기를 빌어본다.

 

 

폐허엔 예전에 만들어진 기둥들만이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잘 알다시피 원래 이 땅은 그리스인들의 땅이었다. 터키 사람들의 땅이 아닌 것이다.

 

약 7,80여년 전에만 해도이땅엔 그리스인들이 많이 살았다. 터키가 새로운 공화국으로 재출발하는 과정에서 그리스와 인구 교환을 합의하여 서로 상대편 국민들을 �아내기도 했다.

 

지중해 연안의 이땅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비잔틴 제국의 영토였기에 그리스 로마 양식의 여러가지 구조물들이 즐비한 것이다.

 

 

대리석에다가 이런 조각을 할 줄 알았던 고대인들의 지혜와 미적인 감각 앞에서는 내 자신이 왜소해짐을 느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건축물들을 만들수 있는 재주와 역량은 함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 성채는 6세기 비잔틴 시대의 것이라고 한다. 그 후에 몇번의 증축과 개축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보이는 모습은 복원한 것이라고 하는데..... 

 

 

 

성 요한 기념 교회로 들어가는 정문의 모습이다. 여기서 말하는 요한은 살로메의 간계에 의해 목베임을 당한 세례요한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천수(天壽)를 누린 요한을 말한다.

 

이 요한은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의 무릎을 베고 누웠던 제자이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실때 예수님으로부터 자기 육신의 어머니였던 마리아를 부탁받은 바로 그분을 의미한다.

 

입구 안 왼쪽에 입장권을 파는 곳이 있다. 기독교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므로 여기에 매표소를 만들어 두었다는 생각부터 해본다. 우린 입장료로 4리라를 지불했었다.

 

요한은 에베소에서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예수께 부탁받은 대로 마리아를 모시고 와서 이 부근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마리아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동네와 집도 남아 있다.

 

여기에서 덜덜거리는 돌무쉬(=터키 지방을 달리는 작은 미니 버스)를 타고 가면 한시간 정도 거리에 쿠사다시라는 항구 도시가 있다. 쿠사다시에서 배를 바다로 나가면 저 멀리 밧모(=파트모스)섬이 보인다. 밧모섬은 오늘날 그리스 영토로 되어 있다.

 

밧모섬은 요한이 로마에 의해 유배당했을 때 유배생활을 한 곳이다. 요한계시록에 밧모라는 섬이름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따지고 보면 이 부근에는 요한과 관계되는 유적이 몰려있다는 느낌이 든다.  

 

 

요한 기념 교회 뒤 저 언덕 위에 성채가 보인다.  

 

 

입구로 들어가서 언덕에 올라서면 경치가 확트이면서 너른 평야가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이 사진의 왼쪽 민둥산처럼 보이는 그 너머에 너무나도 유명한 에베소 유적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베소 유적지까지는 걸어가도 되는 것이다.

 

산자락 저 끝은 예전엔 바다였지만 퇴적작용으로 인해 바다가 밀려나면서 여기에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진과 연속적인 약탈, 그리고 퇴적으로 인한 항구 기능의 마비로 인해 상업과 환락의 도시 에베소는 쇠락의 길을 걸어간 것이다.

 

 

성 요한 교회 유적지 밑엔 1375년경에 만들어진 이사 베이 모스크가 자리잡고 있다. 외부인 출입이 가능한 모양이다.

 

 

 

성 요한 교회는 4세기 경에 세워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는 굉장한 크기의 규모를 자랑했던 모양이다. 나중에는 지진으로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약간의 복원 작업을 거쳐 폐허 속에서 쓸쓸히 버티고 서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 언덕의 이름은 아야솔룩이다. 여기에 서면 사방이 탁트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셀추크 시가지도 보인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셀추크는 작은 시골 읍 정도 되는 동네인 것이다.

 

 

사진 속 포도밭처럼 보이는 곳에는 고대 세계의 7대불가사의로 알려졌던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던 터라고 한다. 이젠 벌판 가운데 기둥 하나 정도가 달랑 남아 있다.

 

 

유적지 규모로만 본다면 성 요한 교회도 예전엔 대단했던 모양이다. 바로 아래 그림처럼.......

 

 

 

 

바닥을 장식한 모자이크화도 화려하다. 색감을 더 정확하게 살려보기 위해 물을 살짝 부은 뒤 사진을 찍었다. 바닥에 노출된 모자이크 사진은 이런 방식으로 찍는다. 알아두면 조금은 편리할 것이다. 나도 외국인 배낭여행자에게 배운 수법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우리들은 사도 요한의 무덤 장소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여기다. 여기에 요한의 무덤터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분이 돌아가신지 벌써 190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리

버리